이완구 충남지사가 3일 도지사직 사퇴를 선언했다. 세종시 수정 추진에 반대하는 소신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역 주민들에게 세종시 건설을 위해 "묘지까지 파달라고 호소하고 다니던 내가 세종시 취소됐으니 다시 이장하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그의 말은, 일견 절절하기도 하고 일리도 있어 보인다. "다음 도지사 선거에 출마할 생각도 전혀 없다"며 결기도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다.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 추진을 막는 것이, 9부2처2청을 이전하는 원안을 사수하는 것이 충청도민들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판단을 내렸다면 '지사직 사퇴'가 옳은 선택이었을까?
이 지사는 "앞으로 당내에서 토론도 하고 싸우겠다"고 내부 투쟁을 선언했지만, 무관의 정치인이 현직 도지사의 투쟁력보다 낫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정부의 세종시 수정 드라이브에 흠집 내고 들끓는 충청 민심에 기름을 붓는 정도의 효과라면 몰라도 정부가 '이완구 사퇴 때문에' 세종시 방침을 돌이킬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게다가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인데 사퇴 후 무얼 할 것이냐는 물음에 "외국에 나가서 볼 것도 보고 머리도 식히고 공부도 하겠다"니, 한가해 보이기도 한다.
이 지사가 국회 기자실에서 사퇴를 선언한 직후, 그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은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도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용기와 결단"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사실 정부가 한 약속이자 법률에 의해 진행 중인 세종시를 백지화하는 것까지 충남지사가 책임을 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자유선진당 김창수 대변인은 "이 지사의 충정을 이해하지만 충청남도 행정을 책임진 단체장으로서 도민의 민생현안을 살피면서 세종시 백지화를 저지하기 위한 행동을 끝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현재 진행형인 세종시 백지화 음모가 철회되지 않을 경우 사퇴해도 늦지 않다"고 덧붙였다.
야당의 이런 논평에는 이 지사의 사퇴에 모종의 노림수가 있다고 보는 경계심이 반영돼 있다. 일각에선 이 지사의 사퇴를 중앙정치로 무대를 옮기기 위한 수순밟기로 관측한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이후 뚜렷한 정치주자가 없는 충청권에서 맹주의 위상을 확보하고 이를 종자돈 삼아 여권 재편기에 모종의 역할을 준비하려 한다는 것이다.
"탈당은 없다"는 이 지사의 단호한 태도가 이런 의심을 부추긴다. 세종시 원안 사수를 위한 배수진이라면 지사직 사퇴보다 한나라당 탈당의 파급력이 더 큰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선진당 박선영 대변인과 진보신당 김종철 대변인 말이 설득력 있다.
박선영 대변인은 "세종시 수정에 반대하려면 사퇴보다 한나라당 탈당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철 대변인도 "이완구 도지사가 이 대통령에게 진정으로 적극적인 항의 의사를 표하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를 관철키려고 했다면 먼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도지사로서 주민들을 결집시켜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나라당을 탈당하지 않고 도지사직은 사퇴하는 행동은 정치적인 미래를 생각하는 정략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로 이 지사는 사퇴 선언 이틀 전인 1일 충청 지도층 인사 500여 명을 초청해 '사퇴 출정식'을 방불케 하는 자리를 가졌고, 사퇴 선언에 직전에는 국회 기자실을 돌며 기자들 손을 일일이 맞잡았다.
이 지사의 정치 전력을 돌아봐도 그가 충청도민의 염원을 위해 한 몸 던질 만큼 무모한 당랑거철의 풍모는 아니다. 그는 15대에 신한국당 간판으로 국회에 입성했으나 16대에는 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겨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대선을 코앞에 둔 2002년 말에는 자민련 원내총무라는 중책을 역임한 몸으로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겨 그해 '철새 대이동'의 시발이 됐다. 정치 흐름에 예민한 후각을 가진 노회한 정치인 쪽에 가깝다는 것이다.
하기에 그의 도지사직 사퇴는 세종시 논란이 이미 '정치 게임'으로 변질됐음을 웅변한다. 이명박, 정운찬, 박근혜, 정몽준, 정세균, 이회창, 심대평…. 세종시 논란과 관련해 이들이 쏟아내는 숱한 '우국충정'도 사실 정치 게임 아닌가? 세종시는 무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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