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ㆍ기아차의 육상운송사업을 담당하는 글로비스가 해상운송사업권마저 따냈다. 지난달 30일 글로비스가 공시한 내용에 따르면 글로비스는 앞으로 2년간 총 3559억 원 규모의 현대차 완성차 해상운송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지난해 글로비스 매출의 11.6%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다.
그런데 글로비스 대주주가 정몽구 회장 일가 소유의 회사라는 점 때문에 이 계약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3일 이번 계약이 "회사기회 유용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사건"이라며 "현대자동차 이사회에 해상운송사업 계약의 재고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회사기회의 유용이란 회사의 유망한 사업기회를 지배주주 및 특수관계인이 차지해 회사가 누릴 이익이 지배주주로 전가되는, 사실상 부의 증여가 이뤄지는 현상을 말한다. 글로비스는 정 회장 일가가 100% 출자해 설립됐다. 지난 2005년 상장된 현재 최대주주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 정몽구 회장은 각각 31.9%와 24.3%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부당지원행위 또?
글로비스의 회사기회 유용 문제는 이미 법원에서도 부당지원행위로 인정된 바 있다. 지난 8월 21일 서울고등법원 제6행정부는 현대차ㆍ기아차ㆍ현대모비스ㆍ글로비스ㆍ현대제철 등 5개 사가 공정거래위원회를 대상으로 제기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취소소송에서 "글로비스에 대한 사업물량 몰아주기는 부당지원 행위"라고 판결했다.
공정위는 앞서 지난 2007년 9월 현대기아차그룹 4개 계열사들이 글로비스에 거래물량을 몰아줘 회사 가치를 급성장시킨 것을 '부당지원 행위'로 규정, 631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번 글로비스의 현대차 해상운송 계약도 이전 판결에서 논란이 된 부당지원 행위라는 게 경제개혁연대의 판단이다.
경제개혁연대는 "글로비스의 지난해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4.21%에 달하는 반면, 삼성전자의 물류운송을 담당하는 삼성전자로지텍은 0.31%에 불과하다"며 "비슷한 사업을 영위하는 두 회사의 차이점은 지분구성 뿐"이라고 꼬집었다. 또 "정 회장 일가가 글로비스의 대주주로 남아있는 한, 현대차의 이익이 글로비스를 거쳐 총수 일가에 넘어가는 회사기회 유용 문제는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차가 출자한 회사의 이익은 빠져
현대차의 이익이 희생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현대차가 일정 자금을 설립해 만든 해상수출운송회사가 이미 따로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지난 2002년 12월, 노르웨이 해운업체인 빌헬름센과 공동출자로 유코카캐리어스라는 해상수출 전담회사를 만들었다. 그간 유코카캐리어스는 현대ㆍ기아차의 해상 수출물량의 100%를 운송했다.
그런데 유코카캐리어스의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9월말 현재 유코카캐리어스는 기존 계약이 종료되는 올해 말까지만 해상수출물량 운송을 독점하며, 앞으로는 단계적으로 운송물량을 축소키로 계약해놓았다. 내년 말이 되면 약정수송량의 75%만 운송하게 되고, 오는 2016년부터 2019년 말의 경우 "현대차와 기아차는 회사가 약정수송량의 최소 60%를 '수송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한 게 계약 내용의 전부다.
이를 두고 경제개혁연대는 "이번 현대차와 글로비스 간 계약은 앞으로 2년 간 축소될 유코카캐리어스의 운송물량 축소분을 글로비스가 전담하게 됐다는 의미"라며 "현재 문제되는 회사기회 유용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글로비스를 통해 정 회장 일가가 얻은 부당이득을 현대차에 반환하는 것만이 회사기회 유용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의혹 제기에 대해 글로비스 관계자는 "불공정한 계약을 한 게 아니다"라며 "나름대로 사업을 오래 준비했고, 충분한 검증과정도 거쳤다"고 해명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 딱히 할 말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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