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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색인…공동체 외면하는 그들은 비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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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나는 회색인…공동체 외면하는 그들은 비겁하다"

[인터뷰] '소통 전도사'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회색인.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이 단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어느 한 쪽의 편에 서지 않는 이들에게 우리는 '무책임함, 비겁함, 소심함' 등의 딱지를 붙여 그런 식으로 지칭했다.

그런데 이 회색을 자신의 색깔이라며 선뜻 집어든 이가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이제 회색인들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고, 회색 영토의 힘을 넓혀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장이라도 '회색 열풍'을 몰고올 기세다.

그는 바로 시사평론가로 잘 알려진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다. 그는 최근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위즈덤하우스 펴냄)란 제목의 책를 내고, 이 '회색론'을 주창했다.

그의 이름 뒤에 붙여진 '낯선' 직함은 그의 근황을 알려주는 또 다른 징표다. 최근 이 대학원 미국법학과 교수로 임용된 그는 내년 3월부터 강단에 서서 '소통 전문가'를 키울 예정이다.

사실 그는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잘 알려진 정관용 교수는 지난해 갑자기 TV와 라디오에서 사라졌다. 수년간 진행하던 한국방송(KBS) <심야토론>, <열린토론>에서 돌연 하차 통보를 받았다.

모두들 그의 하차 이유를 두고 술렁였지만, 정작 본인은 굳이 문제삼지 않았다. 그렇게 묵묵히 떠난 그가 1년여 만에 '소통'의 전도사, '회색'의 달인이 되어 다시 돌아온 것이다.

회색과 소통. 대체 이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까? 지난달 30일 정관용 교수를 만나 물었다.

▲ 토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묵묵히 떠난 정관용 한림대학원대학교 교수가 1년 여만에 '소통'의 전도사, '회색'의 달인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 ⓒ프레시안

"방송 토론 보고 '토론'을 착각하더라"

프레시안 : 우선 책을 펴낸 계기가 궁금하다.

정관용 : 10년 전, 책을 한 권 쓰고 난 뒤 12년 동안 매일 생방송을, 6년 동안 매일 토론 프로를 진행했다. 그땐 다른 일을 전혀 못 했는데, 방송을 쉬니까 이곳저곳에서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왔다.

청중들이 토론과 소통에 대해 참 관심이 많더라. 요즘 또 불통의 시대라고도 하지 않나. 아무래도 다른 분들보다는 그런 부분에 대해 좀 더 많이 생각했던 내가 책을 하나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 현장에서 느꼈던 답답함도 많았고.

프레시안 : 가장 하고 싶었던 얘기가 무엇이었나.

정관용 : 작지만 중요한 이슈는, 국민이 방송 토론을 보고 토론에 대해 착각을 하더라는 거다. 방송 토론은 아주 특별한 토론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방송 토론을 진행한 사람으로서, '방송 토론은 토론이 아니다'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강연 할 때 '토론하는 마음가짐이 뭡니까,' 하고 물으면 대부분 '상대방 생각을 바꿔놓는 것'이라고 답한다. 정작 그렇게 토론을 안 하시는 분들이…. 그게 오해고 착각이다. 그렇게 마음가짐을 갖는 한 제대로 된 토론이 될 수 없다.

즉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은 사실 방송 토론처럼 토론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치 '토론'하면 그런 것인양 오해를 한다. 그것부터 바로잡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대중은 자기 편만 자극하는 토론자를 싫어한다"

프레시안 : 방송 토론을 오랫동안 진행했는데, 방송 토론은 '토론'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싫어하게 된 것인가?

정관용 : 방송 토론의 길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출연자들의 잘못된 인식도 방송 토론이 척박해지는 이유 중 하나인데, 즉 출연자들이 토론에 나오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 그런데 그 목적을 위해서라도 중간에 있는 국민을 조금이라도 자기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자기 편을 자극하고 흥분시키는 토론을 한다면 그것은 실패한 토론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꽤 있다. 그게 마치 인기있는 양 일부 언론에서 다루는 것도 잘못됐다. 사실 대중은 그런 사람을 싫어한다.

즉, 방송 토론은 소통의 기능보다는 그 나름의 목적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구조적 특징과 한계를 정확히 알고 보자는 것이다.

▲ "방송 토론은 소통의 기능보다는 그 나름의 목적이 있다. 구조적 특징과 한계를 정확히 알고 보자는 것이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방송 토론 문화는 변하고 있나?

정관용 : 확실히 좋아지고 있다. <심야토론>이 처음 생겼던 때가 1987년인데, 그땐 토론 도중에 출연자가 화내고 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토론 프로를 처음 진행했을 때부터 돌이켜봐도, 좋아지는 쪽으로 가고 있다. 그건 맞다.

그런데 상황이 격렬해지다보면, 그런 쟁점을 다룰 때는 평상시 좋은 태도를 보이던 인사들도 후퇴한다. 정치적으로 치열한 각도에 서 있으면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반영되는 것이다.

그러나 잘하는 토론자도 많다. 그런 사람이 다수다.

프레시안 : 모범 사례로 참고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정관용 : 앞으로 토론 진행을 안 할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칭찬한 사람이건 비판한 사람이건 내 옆에 앉을 가능성이 있고, 그 맞은편에 앉은 사람도 칭찬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중립적 중재자로서의 위상에 손상이 갈 수 있다. 강연에서도 항상 나오는 질문이지만, 아직은 실명을 거론할 수 없음을 이해해달라.

"강제로 소통시키는 신묘한 방법은 없지만…"

프레시안 : 책의 첫머리에 '많이 무기력하다'고 적었다. 실제로 책을 통해 진단한 한국 사회의 현실도 암울하다.

정관용 :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 사회는 소통하지 않고선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는 상황과 단계에 와 있다. 그래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역사적으로 이제 소통해야만 하는데, 너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권력 투쟁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강제로 소통하게 만드는 신묘한 방법론은 없다. 그러나 나같이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고, 갈등이 심화될수록 그런 사람은 늘어나고 있다.

상황이 답답하다고, 싫다고, 가만히 있지 말자는 것이다. 극단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그러지 말라는 반응이 많이 나올 수록 상황은 변한다. 뾰족한 방법론은 없지만 분명히 그렇게 갈 수 있다. 그런 힘이 강하다는 믿음이 분명히 있다.

▲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정관용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프레시안
프레시안 :
이른바 '회색 지대'를 넓히자는 것인가?

정관용 : 회색 영토는 이미 넓은데 중심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군데군데 정치권과 언론에 큰 각성을 촉구하는 얘기가 많다.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정치와 언론의 전부인양 장악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양측 모두를 무시해버리자, 생산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힘을 실어주자는 얘기다.

프레시안 : 그러나 정작 인기를 끄는 것은 극단적인 목소리다.

정관용 : 정치와 언론 분야의 양극화, 젊은 층의 정서적 쏠림 현상이 결합되면서 최악의 상황을 빚고 있다. 독하게 튀어야 인기를 끈다고도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표피이지 한국 전체 국민의 민심의 저류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저류에 천착하는 정치와 언론을 지향해야 한다.

양비론을 비겁하다고 말하는데, 편을 가르고 진영을 짜서 자기 진영을 키우는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이야말로 비겁한 사람이다. 공동체의 미래를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진영 논리보다는 진실과 참, 과학적 팩트가 무엇인지에 천착하는 언론과 정치로 바뀌어야 하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중심으로 통용될 수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그러다보면 궁극적으로는 인기도 얻게 된다고 보는가? 어차피 정치와 언론, 모두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면이 있지 않나?

정관용 : 그런데 연연하면 안 되지. (웃음) 얼핏얼핏 끄는 표피에만 매달리면 한계가 있다. 그것으로 제한된다. 결국 정치와 언론도 가운데 있는 다수를 잡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즉각적인 인기는 아주 활성화되어 있는 양쪽의 일부 그룹으로부터 오는 반응이다. 그 인기에 매몰될 수록 가운데로 오려는 노력을 안 한다. 그만큼의 한계를 안는 것이다. 그만큼의 자기 몫 외에 더 이상 대중적 지지를 얻기 어렵다.

프레시안 : 그런 결론은 토론을 진행하면서 얻은 것인가?

정관용 : 원래부터 좀 그런 성격이다. 또 경력을 보면 알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다양한 영역, 여러 지대를 넘나들었다. 그리고 토론을 진행하면서 더더욱 절실하게 그런걸 느꼈다.

"토론 문화도 고도 압축 성장을 할 것"

프레시안 : 소통이 중요하다 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들부터 토론을 피한다.

정관용 : 세대 간 간극이 굉장히 크다. 50대 이상 세대는 철저한 권위주의 시기에서 교육을 받았다. 민주주의가 피어나지 않은 시기에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토론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체험을 못한 것이다. 그 분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거다.

반면 현재 젊은 세대들은 어려서부터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에서 자랐다. 물론 아직 토론식 교육은 제대로 안 되지만 달라진 사회 분위기만큼 달라진 마음가짐으로 성장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 사회가 암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제가 고도의 압축 성장을 한 것처럼 토론 문화도 고도 압축 성장을 할거다. 현재의 20~30대가 50~60대가 되면 확실히 우리 사회는 달라질거라고 본다.

프레시안 : 소통과 토론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는 것인가?

정관용 : 긴 호흡에서 보면 분명 그렇다. 젊은 층에게는 긴 호흡으로 인식을 공유하자고 말하고 싶다.

프레시안 :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의 젊은 세대는 인터넷의 자극적인 문화에 길들여져 있기도 하다.

정관용 : 일시적 현상일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구 시대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못할 신인류고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은 선명하고, 격렬하고, 극단적인 걸 좋아하면서도 예의가 없거나 규칙을 어기는 것에는 발끈한다. 소통에 있어서 젊은 층이 그런 면에서 구시대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서 희망을 본다. 다시 강조하지만, 문제는 많아도 좋아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 "희망을 본다. 다시 강조하지만, 문제는 많아도 좋아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프레시안

"소통의 이론과 기술 체계화해서 '전문중재자' 키우겠다"

프레시안 : 미국법학과의 교수로 임용됐다. 시사평론가, 토론 진행자라는 경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하다.

정관용 : 소통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나의 또 하나의 실천이다. 요즘 국내외적으로 각종 갈등과 분쟁이 많아지고 있다. 그것을 푸는 방법을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체계화하고 싶다. 스피치커뮤니케이션 기본부터, 상호 설득, 협상, 중재의 조정, 갈등 해결에 이르기까지 소통의 이론과 기술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해서 우리나라에 확산시켰으면 하는 생각이다.

미국에는 전문중재자(professional mediator)라는 직업이 있다. 말그대로 갈등이 있는 사안에 가서 그걸 풀어내는 사람들이다. 법률적 갈등 해결 절차도 있지만, 법적 분쟁까지 가지 않은 상태에서 갈등과 분쟁을 풀어낼 수 있는게 필요하다.

또 비지니스 영역에서는 '협상'을 많이 한다. 여기에도 필요한 이론과 기술이 있다. 우리 학과는 미국법과 함께 각종 분쟁과 협상 해결의 전문가를 양성하겠다는 목적으로 신설한 과목이다.

사실 이런 전문가에 대한 필요성은 사회에서 많이 느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코스가 정착된 사례가 없다. 스피치커뮤니케이션, 협상론, 분쟁 해결 과목 등은 개설돼 있지만 하나의 코스로 묶어서 체계적으로 시도해본 경우는 최초다. 법학, 커뮤니케이션학, 심리학, 행정학, 정책학 등이 다 어우러지는, 흔히 말하는 통섭적 학문이자 실용적 학문이다. 앞으로 관련 전문가들을 많이 모아서 체계화해보려 한다.

프레시안 : 말하자면 '전문적인 회색인'을 양성하는 코스라고 봐도 되나?

정관용 : 회색인의 자세를 넘어서 중재에 관해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실제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려 한다.

필연적으로 그런 체계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져서 민주주의의 성숙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립적 자세뿐만 아니라 이론적 바탕을 가지고 현장에서 갈등이 풀어낼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다면, 그들이 바로 리더가 아닐까.

프레시안 : 앞으로의 계획은?

정관용 : 언제든지 좋은 기획으로 뜻이 맞으면 방송 활동도 계속 할 것이다. 방송 활동과 후학 양성을 병행하고 싶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독자와 아쉬워하는 시청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관용 : 10년 전 낸 책의 제목이 <우울한 세상과의 따뜻한 대화>였다. 여러가지로 복잡하고 우울한 일이 산적한 사회이지만 전반적으로 따뜻함이 넘쳐나는 사회를 만들자. 한 사람, 한 사람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좋겠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토론도 잘 될 것이다.

▲ "중립적 자세뿐만 아니라 이론적 바탕을 가지고 현장에서 갈등이 풀어낼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다면, 그들이 바로 리더가 아닐까."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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