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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은-금감원 신경전에 모피아만 웃는다

[김상조 칼럼]금융감독체계 개편, 이대로 좌초할 것인가?

두바이 국영기업의 모라토리움 선언 등 세계경제의 앞날은 여전히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최악의 순간을 넘긴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최근 각국 정부의 관심사도 (경제정책의 정상화를 위한 출구전략과 함께) 이번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된 금융감독체계의 개편으로 옮겨가고 있다.

새로운 유행어, 거시건전성 감독

금융감독체계의 개편도 다양한 이슈들을 포괄하고 있지만, 그 핵심 중 하나는 이른바 거시건전성 감독(macro-prudential regulation)의 도입이다. 기존의 감독체계가 개별 금융회사의 미시적 건전성 제고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시스템 전체의 위기를 감지하고 예방하는 데는 무력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했다는 반성이다. 이에 거시건전성 감독의 필요성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는 확고하게 형성되었다. "이제 우리는 모두 거시건전성 감독주의자다."(We are all macro-prudentialists now.)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다만, 거시건전성 감독의 수단이나 집행 체계가 아직 명확하게 정립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각종 국제기구와 주요국 정부 차원에서 활발한 검토와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마침 관련 이슈에 대한 심포지엄이 지난 주 23일(서울대 금융경제연구원 주최)과 25일(한국금융학회·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공동주최)에 연달아 열렸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위 심포지엄의 자료집들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필자는 이 두 심포지엄에 모두 토론자로 참여하였다. 소감은? 답답하다 못해 황당하고, 절망적이다.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학습능력 부재를 다시 한 번 절감할 뿐이었다. 이것이 오늘 이 글을 쓴 동기이다.

한은과 금감원의 신경전, 결국 둘 다 루저(loser)

거시건전성 감독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현재까지 얻어진 가장 확실한 합의점 중 하나는 중앙은행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상시에 통화신용정책을 집행하면서 위기시에 최종대부자 기능을 수행하는 중앙은행이 시스템 리스크의 가능성을 진단하고 예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요구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거시건전성 감독이 중앙은행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개별 금융회사, 특히 대형 금융회사의 부실 가능성에 대한 실시간 정보가 반드시 필요하고, 따라서 이러한 정보를 갖고 있는 미시건전성 감독기구와의 협조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지만, 한국에서 이 이슈는 이미 1라운드가 종료된 상태다. 지난 4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법안소위가 '여야 합의로'(!)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마련하였다. 한국은행의 목적 사항에 물가안정 외에 금융안정을 추가하고, 위기시의 긴급유동성 지원제도를 개선하면서, 이에 필요한 선에서 한은이 금융회사를 직접 조사할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참 드문 일이지만, 국회가 정부보다 한발 앞서 나간 것이다.

당연히 호떡집에 불이 났다. 5월부터 기획재정부 주도로 금융당국간 정보공유·공동검사 활성화를 위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결국 9월 MOU가 체결되었다. 법개정을 통해 한은에 직접조사권을 주는 대신, MOU로 정보공유를 확대하는 선에서 일단락된 것이다. 또, 6월에는 청와대 국민경제자문회의 내부에 TF를 설치하여 한국은행법 개정을 검토하였는데, 역시 9월에 제출된 TF보고서의 결론은 '아직 시기상조다. 내년에 금융감독체계 전체의 개편을 검토한다.'는 것이다. 법개정이 능사는 아니라지만, 이번 한국은행법 개정 1라운드는 태산명동에 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태산이 떠나갈 듯 요란을 떨더니, 튀어나온 것은 쥐 한 마리 뿐)하는 관료적 의사결정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기재부가 한은의 권한 강화를 달가워하지 않는 거야 당연하겠으나, 더욱 가관인 것은 한은과 금감원의 미묘한 신경전이다. 대놓고 싸우지도 않는다. 25일 한국금융학회가 주관한 심포지엄의 주최단체 구성을 보라. 금융위와 금감원은 들어왔는데, 당사자인 한은은 주최단체는커녕 토론자로도 참여하지 않았다. 사춘기 소녀들처럼 까칠하다. 금감원이 한마디 툭 던지면, 한은이 한마디 쏘아붙이는 식이다. 이러니 한은과 금감원 간의 협조체계 구축은 기대난망이다. 두 공적 민간기구(한은과 금감원 둘 다 정부조직법상의 기구가 아니라, 무자본 특수법인 형태의 민간기구이다)의 신경전 속에 어부지리의 웃음을 짓고 있는 모피아(기획재정부·금융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은과 금감원이 힘을 합쳐도 당하지 못한 판에, 밥그릇 싸움으로밖에 비치지 않는 신경전에 매몰되어 있다니…. 답답하다. 둘 다 루저가 되기 전에, 제발 정신 차리기 바란다.
▲ 한은과 금감원의 신경전에 결국 웃는 것은 모피아다. 사진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오른쪽 부터).ⓒ뉴시스

외환시장 규제 강화? 그 속뜻은…

요즘 금융당국의 조치 중에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하나 있다. 외환시장에 대한 규제 강화가 그것이다. 예컨대, 지난 23일 예고된 '은행업 감독규정' 변경안을 보면, 은행의 외화유동성 비율, 안전자산 보유, 중장기 외화대출 재원관리 비율, 외화유동성⋅외환파생 리스크 관리기준, 보고의무 등의 다양한 측면에서 규제를 대폭 강화하였다. 또한 25일 심포지엄에서 금융위 고위관계자는 내년 서울에서 열릴 G20 회의 안건으로 외환시장 규제, 특히 신흥국의 역외선물환시장(NDF시장)에 대한 규제 강화 방안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외 의존도가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y)에서 외환시장이 시스템 리스크의 주요 원천 내지 전달통로가 된다는 사실은 경제학자에게는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작년 말과 올해 초에 원-달러 환율이 1,600원선까지 급등했을 때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된다. 따라서 시스템 리스크 방지를 위한 거시건전성 감독체계 논의에서 외환시장에 대한 규제 장치를 강화하는 것은 생략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모피아가 하는 일이라면 일단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것이 습관이 된 필자에게는 이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금융당국이 외환시장 규제 강화를 들고 나오는 속뜻이 있기 때문이다.

25일 심포지엄에서도 금융위 고위관계자가 명시적으로 언급했듯이, 현 정부는 최근 한국경제가 겪은 위기 상황은 근본적으로 외부충격에 기인한 것이라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미국에서 난 불이 한국으로 번진 것뿐이라는 것이다. 즉, 현재 우리나라의 금융감독체계에는 큰 문제점이 없으며(아니, 오히려 위기의 확산을 막는데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고칠 게 별로 없고, 단지 불이 번진 통로인 외환시장만 잘 단속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요약하면, 외환시장 규제 강화론은 위기의 원인을 우리 내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 돌리면서, 현재의 금융감독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속뜻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황당하다. 모피아! 정말 대단하다. 이처럼 당당하게 자기책임을 벗어던지고 기득권 유지를 주장하다니….

금융감독체계가 정권의 자존심 문제?

그러면, 모피아는 뭘 지키려고 하는 것인가? 이는 역으로 금융학자들이 뭘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를 보면 된다. 그 핵심은 금융위다. 작년 초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제일 먼저 손댄 것이 정부조직법이다. 그 일환으로,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을 동시에 수행하는 금융위가 탄생하였다. 엑셀러레이터(금융정책)와 브레이크(금융감독)를 함께 가진 이상한 기관이 출현한 것이다. 일본을 제외하면, 이런 정부조직 체계를 가진 나라는 없다.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시기에 엑셀러레이트를 밟아 위기를 자초할 위험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금감원은 금융위의 지휘⋅감독을 받는 금융감독의 단순 집행기관으로 전락시켜, 모피아에 의한 관치금융의 폐해는 더욱 심화되었다. 또한 금융정책도 둘로 나누어, 국내금융정책은 금융위가 맡고 국제금융정책은 기재부가 담당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국제화 시대에 국내금융정책과 국제금융정책을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한마디로, 현재의 금융위(-금감원)-기재부 체계는 일말의 경제적 합리성도 찾을 수 없는 완전한 실패작이다. '작은 정부' 실현을 위해 정부조직법상 부처 숫자를 줄여야 한다는 정치적 판단이 이런 괴물을 만들어낸 유일한 논거였다. 이것이야말로 시스템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는 최대의 위험요소이며, 이를 개선하는 것이 우리나라 금융감독체계 개편의 핵심이다. 이건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이념적 성향을 떠나, 거의 모든 금융학자가 현 금융감독체계 개편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모피아는 이 핵심부분은 절대 손댈 수 없다고 이미 선언했다. 필자의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25일 심포지엄이 끝난 후 필자가 개인적으로 금융위 고위관계자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금융위의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기능을 분리할 건가?' 답은, '현 정부 임기 내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니, 할 수 있는 거라곤, 한은-금감원 간 정보공유 MOU를 강화하고, 외환시장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것뿐이다. 명분이야 현 감독체계에 큰 문제가 없으니 고칠 것도 없다는 것이지만, 진짜 이유는 현 정권의 첫 작품인 정부조직법을 손대는 것은 자존심상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절망적이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정권의 자존심 문제인가?

학습능력 부재, 이것이 위기의 씨앗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할 때도 있다. 실수가 문제가 아니라, 그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게 문제다. 정권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정권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국민이 살기가 어려워진다.

출범 초의 정부조직법 개정, 그에 따른 현 금융감독체계 설계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모든 금융학자가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자존심으로 국정을 운영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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