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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고성장 저사회권' 국가…국제 사회 우려에 귀 기울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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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고성장 저사회권' 국가…국제 사회 우려에 귀 기울여야"

정부, 유엔 권리위 보고서 무시…시민단체, 거센 반발

"경제규모가 크면 뭣 하나. 사람이 사람대접을 못 받는데…."

25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 모인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쏟아낸 말이다. 하루 전, 유엔 경제·사회·문화 권리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가 이들을 모이게 했다. 당시 보고서에서 유엔 권리위는 한국 정부의 인권 실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드러냈다.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 대응은 법무부가 25일 오전 발표한 보도자료가 전부다. 이 자료에서 법무부는 "우리의 법·제도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심의 기간 동안 상주 인원만 40명이 넘는 대표단을 보내 유엔 권리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던 한국 정부로서는 눈에 띄게 조용한 반응이다. 이런 대표단 규모는 역대 어느 나라보다 많은 수였다. 결국, 정부의 조용한 반응은 이번 보고서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유엔 권리위의 보고서를 무시하겠다는 단호한 의지 표현이었다.

"인권위 권고 무시하듯 유엔 권리위 보고서까지 무시하면 큰 코 다친다"

56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이날 오후 부슬비를 맞으며 거리에 나선 것은 그래서였다. 이들은 이번 보고서를 계기로 "정부 각 부처와 사법부,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인권 실태 개선을 위한 광범위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모인 활동가들은 "유엔 권리위의 보고서는 급격히 퇴행하는 한국의 인권 현실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입을 모았다. "아시아 지역에서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통해 세계 12번째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저소득취약계층에 대한 사회권 보장을 제대로 실현하지 않고 있다"는 유엔 권리위의 지적에 대해서도 깊이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이번 보고서가 가진 의미를 평가 절하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대한 비판은 다양했다. 황필규 변호사(공익변호사그룹 공감)는 이번 보고서에 담긴 권고를 아무런 효력이나 강제성이 없는 조치로 이해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유엔 산하 기구가 공식 권고안을 냈다는 것은 국제법을 기반으로 소송이 가능하다는 의미"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 활동가는 "현 정부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해왔다고 해서, 유엔 권리위의 권고까지 같은 방식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권위 비상임 위원(국제인권자문위원장) 자격으로 지난 10~11일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해 유엔 권리위의 한국 관련 심의를 지켜봤던 조국 서울대 교수는 이날 한 인터뷰에서 "국제적 차원의 국정감사"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유엔 권리위 보고서의 목적을 "한국 정부에 드라이브를 걸기 위한 것"이라고도 했다. 정부가 유엔 권리위의 권고를 만만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용산 참사, 국제 사회 이슈 됐다"

이 자리 모인 이들의 활동 범위는 사회복지, 이주노동자 인권, 청소년 인권 등 거의 모든 인권·복지 영역을 아울렀다. 이들은 유엔 사회권 위원회 권고안 가운데 자신들의 활동 분야에 해당하는 내용을 지목한 뒤 정부가 이를 수용하도록 촉구했다.

이영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무처장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는 게 보통"이라며 "고용주의 허락 없이는 일터를 바꿀 수 없는 고용허가제의 맹점 탓"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결혼이주여성이 겪는 인권 침해도 심각하지만, 정부는 일방적인 동화정책만 내놓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도 정부가 유엔 권리위의 권고에 따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개선하도록 촉구했다. 유엔 권리위는 보고서에서 "빈곤율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사회안전망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었다. 기초생활수급자 관련 기준을 정비해서 사회복지의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권고도 뒤따랐다. 홈리스, 비닐하우스 거주자, 보호시설 수용자 등 최소한의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을 기초생활보장제도 안으로 편입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날 모인 활동가들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조희주 용산 철거민 참사 범국민 대책위원회 공동대표였다. 유엔 권리위는 보고서에서 용산 참사에 이례적으로 큰 비중을 뒀기 때문이다. 조 대표는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곧 1년이 된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유엔사회권위원회가 이 문제를 언급할 정도로 국제적 이슈가 됐다"며 "한국이 주거권 후진국이라는 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는 한시 바삐 용산 참사에 대해 사과하고, 피해자들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가 용산 참사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지적은 최근 방한한 아이린 칸 국제 앰네스티 사무총장도 했던 것이다.

▲ 56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25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정부가 유엔 권리위 보고서를 수용하도록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레시안

"'업무방해죄' 남용 등 파업권 제약에 맞서야"

한편, 이날 오후에는 참여연대, 통합공무원 노동조합 등 시민사회단체의 비판 성명도 빗발쳤다. 유엔 권리위 보고서를 무시하는 정부를 향한 비판이다.

공무원 노조는 "저급 사회권 국가 망신살, 정부는 반성하라"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한국을 '고성장 저사회권 국가'로 규정했다. 그리고 "공무원의 노동조합 가입 권리와 파업권에 대한 제한이 ILO(국제노동기구) 협약에 어긋난다"는 유엔 권리위 보고서 내용을 상기시켰다. 이어 공무원 노조는 노동인권에 대한 현 정부의 저열한 인식을 확인시켜 준 사례를 조목조목 열거했다. 공무원 노조 사무실 강제 폐쇄, 민중의례 참가자에 대한 중징계 요청 등이 이런 사례다.

조국 교수도 이번 보고서에서 특히 주목할 대목으로 "꼭 필요한 수준을 넘어선 공권력 행사와 업무방해죄 적용으로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약화시키고 있는 점"을 꼽았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자유권 영역에서 한국이 돌파해야 할 것이 국가보안법이라면 사회권 영역에선 업무방해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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