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보면서 궁금했습니다. '희망과 대안'이란 조직에 몸을 담았으면서도, 내년 지방선거에 적극 참여하려고 하면서도 정치 안 한다고 손사래를 치는 그를 보면서 궁금했습니다. 사실상 정치에 한 발 걸쳤으면서도 "왜 날 끌어내려 하느냐"고 뒷걸음질 치는 그를 보면서 궁금했습니다. 그의 고민 지점이 뭔지 궁금했습니다.
때마침 물었더군요. '풀뿌리 민주주의 희망찾기' 대담자로 나선 그를 향해 한 시민이 요구에 가까운 질문을 던졌더군요. "서울시장 등에 직접 출마하라"고. 역시 손사래 치는 박원순 이사를 향해 다른 시민이 또 물었더군요. "모두가 당신을 원한다면 어찌할 거냐"고. 박원순 이사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정계 진출 제안에 해외로 도망갈까 생각했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분야에서 성취를 이룬 사람이 정치권에 갔다 본인은 물론 그나마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자산 하나를 잃는 경우도 있었다."
2.
잘 모릅니다. 박원순 이사의 면면을 잘 알지 못합니다. 시민단체 활동가로서의 박원순과는 달리 정치가로서의 박원순이 적합한 인물인지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평할 수 없습니다. 그를 향한 정계 입문 권유가 타당한지, 그가 정계에 입문한다고 해서 변화를 이끌지 평할 수 없습니다.
다만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합니다.
박원순 이사에게 '강권' 해야만 하는 우리 사회 일각의 갑갑증을 확인합니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기존 정치인에 대한 염증을 확인합니다. 우리 사회 일각의 이런 심경이 박원순 이사라는 매개 인물을 통해 표출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박원순 이사가 손사래 치는 이유를 확인합니다. 그의 말대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자산 하나를 잃는 경우"를 여러 번 목도한 경험을 되새깁니다. 사회 자산을 잠식하는 우리 정치의 정치풍토를 확인합니다.
▲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프레시안 |
3.
우리 정치는 간절하게 새 인물을 원합니다. 새 인물이 들어와 새 바람을 일으켜 주기를 갈망합니다. 우리 정치는 간단하게 헌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새 인물이 들어와도 어느 순간 기존 정치질서에 편입시켜 버립니다. 구질서를 깨려면 새 인물이 들어가야 하는데 새인물은 구질서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박원순 이사 같은 개별 인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명망가 몇 명이 정계에 입문한다고 해서 새 바람을 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감히 전망할 수 있습니다.
세력이어야 합니다. 몇몇 명망가가 아니라 조직된 세력이 정치판에 뛰어들어야 새바람의 풍속을 높일 수 있습니다.
4.
하지만 이 또한 새 모델이 아닙니다. 이전에 여러 사례가 있었습니다.
재야세력이 들어갔습니다. '젊은 피'로 평가받으면서 세를 이뤄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386세력이 참여했습니다. 세대교체를 이루겠다며 열을 지어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재야세력은 계파에 흡수되면서 '기존 정치인'의 대명사 비슷하게 돼 버렸고, 386세력은 실종되다시피 했습니다.
더 이상 없습니다. 재야세력처럼, 386세력처럼 조직된 세력이 더는 없습니다. 어떤 이는 '이제는 테크노크라트 시대'라고 주장하지만 테크노크라트는 조직돼 있지 않습니다. 세력이 아닙니다.
5.
어쩌면 '박원순의 선택'이 맞을지 모릅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조한 그의 말에 풀뿌리 세력 양성이 포함돼 있다면 그의 선택이 맞을지 모릅니다. 그가 홀로 정계에 입문하는 것보다 그가 수십의 풀뿌리 세력을 키우는 게 더 생산적일지 모릅니다.
정치권에 새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조직된 세력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된 세력이 현존하지 않는다면 만들어야 합니다. 재야세력이 실패했고 386세력이 실패했다고 해서 그냥 포기할 게 아니라면, 그들의 전철을 되밟지 않으려면 주춧돌부터 세워야 합니다.
박원순 이사는 지금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다만 방도가 다른 것일지 모릅니다. 개인이 일군 '사회적 자산 하나'를 다수가 향유하는 '정치적 공동 자산'으로 확장시키기 위해 박원순만의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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