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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에 돈벼락 안겨준 '폐차보조금제', 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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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에 돈벼락 안겨준 '폐차보조금제', 결말은?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①] '조삼모사' 폐차보조금과 노동자

요즘 언론에서는 경제가 바닥을 치고 회복기에 접어들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 근거로 자주 얘기되는 것이 세계 각국의 자동차 판매량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판매량이 크게 증가한 것은 아니지만, 공황이 몰아닥친 지난해 말에 비해서는 자동차 판매가 늘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를테면 올해 유럽의 자동차 수요는 공황의 한파로 15%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독일은 지난 8월까지 26.8%의 판매 증가율을 보였다. 당초 예측과 달리 유럽 전역에서 자동차 판매가 활기를 띠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말부터 서유럽을 중심으로 10여 개국에서 도입된 "폐차 보조금" 덕분이다. 낡고 오래된 차를 버리고 신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정부가 보조금으로 차량 가격을 할인해주는 것으로, 국내에서 시행되고 있는 '노후차 세제지원' 제도와 비슷하다. 유럽에서는 지난해 말 독일이 가장 먼저 이 제도를 도입했다. 올해 들어 영국·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서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국내 대표적인 자동차 메이커 현대·기아차도 소형차 i10, i20, i30 등 이른바 i-시리즈가 각광받으며, 올 들어 유럽에서만 무려 30만대 넘게 차를 팔았다. 문제는 이 제도가 나라별로 차이는 있지만 올해 연말로 거의 종료된다는 사실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실시됐던 폐차 보조금 정책에 힘입어, 국내 대표적인 자동차 메이커 현대·기아차도 소형차 i10, i20, i30 등 이른바 i-시리즈가 각광받으며, 올 들어 유럽에서만 무려 30만대 넘게 차를 팔았다. ⓒ연합뉴스

'경제 위기' 아래 세계 자동차산업, 폐차 보조금으로 연명하다

유럽에서 제일 먼저 폐차 보조금 제도를 도입한 독일은, 9년 넘은 차를 신차로 바꿀 경우 2500유로(약 400만 원)를 지원하는 정책을 펼쳤다. 독일의 경우 이 제도의 시행 기간을 따로 설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보조금 총액을 50억 유로로 제한했다. 이 50억 유로는 이미 지난 9월 초 모두 소진돼 제도가 종료됐다.

독일에 이어 영국 정부는 10년 이상 된 차를 폐차하고 새 차를 구입하면 정부가 1000파운드, 자동차 업체가 1000파운드 등 모두 2000파운드(약 400만 원)를 할인해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를테면 현대차 i10의 가격은 7000파운드 정도인데, 이 제도를 활용하면 4995파운드에 구입이 가능하다. 영국 정부는 애초 폐차보조금 정책을 연말로 종료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도가 중단되면 자동차 수요가 대폭 감소할 것을 우려해 내년 3월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프랑스도 영국과 마찬가지다. 애초 연말까지만 운용하려던 폐차 보조금을 일정 기간 연장할 예정이다. 자동차 수요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다. 다만 현재 1000유로인 보조금 액수를 단계적으로 낮추기로 했다.

스페인·이탈리아·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 등에서도 작게는 1000유로에서 많게는 5000유로까지 보조금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에서도 연말까지만 한시적으로 제도를 운영하기로 했다. 다만, 스페인·이탈리아에서는 이 제도의 연장을 놓고 정부가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도 폐차 현금 보상제도가 한 달 간 시행되었는데, 중고차를 폐차하고 연비가 좋은 새 차를 살 경우 승용차는 3500달러, 트럭은 4500달러를 '바우처' 형태로 보상해주는 형식이었다. 7월 24일 시행된 지 일주일 만에 10억 달러의 재원이 모두 소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에 미국 정부는 추가 재원을 마련해 실시 기간을 연장했고 지난 8월 24일 최종 종료되었다.

한국 역시 '노후차 세제지원' 형식으로 2000년 이전에 등록된 차를 폐차하고 새 차를 살 경우, 최대 250만 원까지 세금을 감면해준다. 애초 개별소비세 인하와 함께 올해 6월 말로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자동차 수요를 유지하기 위해 올해 연말까지로 연장됐다.

'반짝' 수혜 입었던 현대·기아차

폐차보조금 정책이 실시된 나라들에서는 거짓말처럼 자동차 수요와 판매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서 얘기하면, 이 정책이 종료되면 시장은 다시 얼어붙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폐차보조금 정책이 종료된 독일과 미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9월 초에 폐차보조금 정책이 종료된 독일에서는 10월부터 자동차와 부품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동차 업계 사장님들은 유럽 각국 정부에 보조금 정책을 연장해 달라고 엄청난 로비를 벌이고 있기까지 하다.

가장 다급해진 자동차 메이커는 현대·기아차이다. 올 들어 시행된 유럽 각국의 폐차보조금 정책의 최대 수혜자가 바로 현대·기아차였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다른 메이커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소형차에 집중했기 때문에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현대·기아차의 독일 시장 판매 증가율은 무려 19.8%인 반면, BMW 등 대표적 독일 메이커의 판매는 20.3% 감소했다. 하지만 독일의 폐차보조금 정책은 9월 초 끝나버려, 앞으로 시장 상황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 ⓒ한겨레 인용
미국에서도 오바마 정부가 시행한 폐차 현금보상 정책이 지난 8월로 종료되자, 9월 자동차 판매량 자체가 급감했다. 8월의 125만8944대에서 9월에는 거의 절반 수준인 74만4566대로 뚝 떨어진 것이다. 10월 판매량이 9월에 비해 소폭 증가한 것은 도요타와 빅3 등 전통적 강자들이 뒤늦게 소형차를 싼 값에 내놓으며 점유율을 높였기 때문이다.

독일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현대·기아차는 폐차 현금보상 정책이 한창이던 8월에 점유율 8%로 최고치를 찍은 후, 9월부터 점유율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10월에는 6%대로 떨어져 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차를 산지 1년 안에 실직하면 되사준다"는 파격적인 어슈어런스(Assurance) 프로그램과 폐차 보조금 정책을 활용한 미국 시장 판매 전략이 이제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된 것이다.

미국과 독일 외에도 올해 말이면 거의 모든 나라들의 폐차보조금 정책이 종료된다는 점이 핵심이다. 내년의 자동차 시장 상황은 이제야말로 '불황의 시작'에 서게 되는지도 모른다.

폐차 보조금 제도가 언젠가 끝날 수밖에 없는 이유

물론 자동차업계 사장님들이 열심히 뒷구멍으로 로비를 하고 있어서, 몇몇 정부는 보조금 정책의 연장을 결정하거나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제도가 지속될 수는 없다. 아니, 지속된다고 해도 다음의 이유 때문에 점차 그 효과는 줄어들게 된다.

첫째, 그 막대한 정부 보조금은 다 어디에서 나올까를 봐야한다. 그 돈은 정부 예산, 즉 노동자의 세금으로부터 나온다. 이렇게 보조금을 쏟아 부으면 정부는 어마어마한 빚더미, 즉 재정적자를 감수해야 하는데 결국에는 노동자들에게 뒷감당을 시킬 것이 뻔하다. 하지만 노동자들 호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뭘 감당할 것 아닌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 거품이 터지면 모라토리엄 밖에 남지 않는다.

둘째, 폐차 보조금을 통한 자동차 판매 증가는 "미래의 수요를 오늘에 당겨서 쓴 것"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내년에 차를 사려고 했던 사람들이 정부 보조금을 준다니까 서둘러 올해에 구입한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소비자 대다수가 올해 차를 바꿨으니, 아무리 보조금을 얹어준다 한들 1년도 안된 차를 폐차하고 새 차를 뽑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폐차 보조금 덕에 돈방석 앉은 사장님들, 보조금 중단되면?

유럽과 미국·중국에서 시행된 폐차 보조금 덕에 현대·기아차 그룹은 매분기 순이익 최고기록을 갱신할 정도로 돈벼락을 맞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3분기 영업이익만 5867억 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461%나 증가했으며 당기순이익은 9791억을 기록했다. 기아차는 3분기 당기순이익만 4020억으로 '사상최대'치를 기록했으며, 3분기까지 누적 당기순이익은 8464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90억 원)보다 무려 22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뿐이 아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도 올해 들어 현대자동차 계열사 주가가 급등하면서 11월 3일 현재 보유주식 지분가치가 연초 1조7659억 원에서 4조2434억 원이 되었다. 주식 재산만 무려 2.4배가 늘어난 것이다. 정몽구 회장만이 아니다. 30대 그룹 총수의 상장사 보유 지분 가치를 지난달 30일 종가 기준으로 평가한 결과, 지분가치 총액은 19조5011억 원으로 연초의 12조6407억 원보다 54.3%(6조8604억원)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들 세금으로 실시된 폐차 보조금 덕에 돈벼락을 맞은 기업들과 사장님들, 보조금이 중단되면 자기 재산이라도 좀 내놓을까? 천만의 말씀! 그때가 되면 그들은 전혀 다른 폐차 보조금 제도를 실시할 것이다. 이미 쌍용자동차에서 실험한 바 있고, 지금 대림자동차·캐리어·발레오공조코리아 등의 사업장에서 실시하고 있다.

이들 사업장은 낡고 노후한 차를 버리고 새 차로 대체하면 보조금을 얹어주듯이, 십수 년 일해 온 노동자들을 버리고 젊고 값싼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면서 희망퇴직·위로금을 얹어주고 있다. 신종플루보다 더 잔인한 '신종 폐차 보조금' 제도인 셈이다.

기존의 폐차 보조금 제도가 차량 가격 할인을 뜻한다면, 신종 폐차 보조금은 그 대신 노동자들의 인생과 생존권을 할인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깎아달라고 깎아지는 것인가? 노동자들이 가진 건 몸뚱아리 밖에 없는데?

'인(人)사이드 경제' 연재를 시작하는 오민규 씨는 전국비정규직노조 연대회의 정책위원이다. 노동 운동가로 현장 노동자의 곁에 있는 그는 노동자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각 산업과 우리 경제의 본질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언제나 노동자가 생존권을 위협받곤 하는 현실은 정말 불가피한 것일까? '인사이드 경제'는 독자들과 함께 너무 쉽게 가려져 버린 진실을 찾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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