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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적나라한 심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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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적나라한 심연 속으로

[공연리뷰&프리뷰] 연극 '테레즈 라캥(Therese Raquin)'

▲ ⓒ프레시안

투명한 아크릴 판으로 만들어진 벽과 그 앞에 놓여있는 무채색의 큐브들. 극도로 미니멀한 무대 위로 육중하게 드리워진 침묵 속에서 극은 진행됐다. 손가락 끝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몸짓으로 농축해낸 연극 '테레즈 라캥'은 정제된 압축과 상징으로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인물의 신원이나 사건의 정황들은 배우들의 압축된 대사와 몸짓으로만 표현된다. 라캥 부인과 테레즈는 하나같이 검은 옷차림을 한 채로 집 안에 자리한다. 이들의 검은 옷은 상복을 연상케 하며 살아 숨 쉬는 사람의 생기가 증발된, 메마른 건조함으로 가득하다. 라캥 부인의 까만 옷은 평생을 아들 까미유의 수족노릇에 몸 바쳤던 그녀의 불행한 삶을 암시하는 듯한 반면, 테레즈의 검은 옷은 욕망을 규격화된 일상에 가둬버린 듯한 음험함이 느껴진다. 테레즈의 치마 아래로 엿보이는 빨간 구두는 그녀의 잠재된 욕망을 암시한다.

휠체어와 의족으로 무장한 까미유는 창백한 낯빛과 히스테릭한 음성으로 병자의 예민함을 극대화한다. 라캥 부인에게 엉겨 붙는 까미유와 그를 떼어내는 부인의 과장된 몸짓은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천륜 아래 빚어진 애증의 실체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군복 차림의 로랑은 건장한 체구와 또렷한 음성으로 병약하고 신경질적인 까미유과 대비를 이룬다.

테레즈의 잠재돼있던 욕망을 일깨운 로랑의 육체는 걷잡을 수 없는 본능의 심연 속으로 테레즈를 끌어내린다. "그들은 인간이라는 동물들이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테레즈 라캥'의 서문에서 에밀 졸라가 밝힌 것처럼, 이들의 행위는 인간 본연의 본능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하늘 위로 높이 치켜뜬 테레즈의 시선과 초점을 잃은 로랑의 시선은 육욕의 절정을 있는 그대로 노출시킴과 동시에 영원히 합치될 수 없는 그들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까미유를 죽이는 나룻배 장면에서는 배우들의 몸짓으로 모든 정황이 표현된다. 흔들리는 팔과 휘청거리는 다리는 물살의 강도에 따라 움직임이 변화돼, 로랑이 까미유를 살해하는 지점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테레즈의 옷에 달린 빨간 깃털은 그녀의 정욕과 까미유의 피를 떠올리게 한다.

몸짓으로 절규하는 라캥 부인은 아들에 대한 상실감을 로랑의 존재로 대신 메운다. 로랑과 테레즈는 까미유의 부재로 인해 오히려 생생하게 전해지는 그의 존재에 몸서리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들의 정욕은 연이어지는 암전 속에서 차갑게 식어간다. 그리고 끝내 자신들의 죽음을 통해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낸다.

90여분동안 이어진 이들의 생은 거북스러울 정도의 적나라함과 엄중한 침묵으로 호흡했다. 극도로 압축된 언어와 철저하게 계산된 몸짓의 정교함은 극의 밀도를 농축해냈다. 하지만 진중함으로 농축된 무대는 주제의 무게에 가중돼 집중력의 분산을 우려케 했다. 빈 무대에서는 가슴을 향해 묵직한 돌 하나를 거침없이 가격하고는 휑하니 사라져 버린 듯한 야속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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