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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코먼, 아카데미 평생공로상 받는다

[핫피플] B무비의 황제, 내년 아카데미 평생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돼

아카데미영화상에 이변이 일어났다.

거대한 바다괴수, 조악하기 짝이없는 우주선, X광선과 총알을 내뿜는 사나이 등등 상상력이 지나쳐 때론 황당무계하기 짝이없는 저예산 영화들을 평생 만들어온 제작자가 내년 초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받는다. 시상식에서는 마틴 스코세즈,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조너선 드미, 제임스 캐머론 등 앞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거장감독들이 그에게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내는 보기드문 감동적 장면이 연출될 것이 분명하다.

그 주인공은 로저 코먼(83)이다.

AP통신 등 미국 언론들은 11일 미국영화아카데미가 평생공로상 수상자로 '저예산 영화의 황제' 'B 무비의 오손 웰스' 등으로 불려온 로저 코먼을 선정 발표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코먼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카데미가 나를 평생공로상 후보로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설마 진짜 상을 주기로 결정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않았다"면서, "(수상통보)전화를 받고 정말 깜짝 놀랐다"고 감격을 나타냈다.

평생 아카데미상과는 인연이 없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 분명했던 '괴짜 제작자'가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게 되는 '기적' 일어난 셈이다. 미 언론들은 아카데미가 코먼을 평생공로상 수상자로 결정한 것은, 지난 50년 넘게 기발한 상상력과 남다른 제작노하우로 미 영화산업의 새로운 길을 열었고 수많은 재능있는 영화인들을 키워낸 공헌을 평가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12일자 기사에서 "미국에는 좋은 영화학교가 많지만 로저 코먼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영화학교"라면서 그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 2010년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된 'B급 영화의 황제' 로저 코먼. 그는 제작자로, 감독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저예산 B급영화들을 만들어내며 마니아 팬들을 거느렸을 뿐 아니라, 출중한 감독들을 발굴해내는 한편 아시아 및 유럽의 예술영화들을 미국에 소개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로저 코먼은 지난 2000년 국내 번역출간됐던 자서전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 푼도 잃지 않았는가》를 통해 친숙한 영화제작자이다. 1926년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그는 스탠포드대학을 졸업한 후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계에 투신, 현재까지 350여 편의 작품을 제작했고 이중 300여 편의 상업적 성공을 거둔 전설적인 흥행기록을 갖고 있다. 현재도 뉴호라이즌이란 이름의 제작사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코먼의 놀라운 흥행기록의 비결은 선정적 소재를 갖고 가능한 값싸고 빠르게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심지어 한 영화를 찍고 난 다음 세트를 그대로 재활용해 이틀만에 뚝딱 영화를 만들어내는 일도 다반사였다. 거대한 바다괴수를 소재로 한 <바다밑 괴수>부터 공포영화 <스웜프 우먼> 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들은 예술적 완성도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싸구려 정신'을 뻔뻔스러울 만큼 정면에 내세운 작품이 대부분이었고, 이것은 묘하게도 마니아들을 확보하면서 '코먼식 영화'만의 개성을 자리잡았다. 코먼의 영화들은 오늘날 저예산 B급 영화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코먼이 미 영화계에서 평가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를 거치지 않고는 영화계 입문이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재를 발굴해내는 안목이 누구보다 뛰어났다는 점이다.

영화학교를 졸업한 후 자기 작품 한편 만들지 못하고 영화계 주변을 빙빙 돌기만 했던 코폴라에게 데뷔기회를 준 것은 바로 제작자 코먼이었다. 코먼의 영화사가 1963년 내놓았던 <디멘시아 13>이 바로 코폴라의 장편데뷔작이다. 마틴 스코세즈도 코먼의 도움을 받아 1972년 <복스카 버사>란 문제작으로 데뷔했고, 조너선 드미 역시 1974년 <케이지드 히트>, 론 하워드는 1977년 <그랜드 테프트 오토>란 작품으로 코먼 영화사를 통해 영화계에 입문했다. 제임스 캐머론에게 특수효과 관련 일자리를 처음 준 사람도 코먼이었다.

코먼은 장래의 톱스타감을 알아보는 안목 역시 뛰어났다. 그는 1958년 찰스 브론슨을 <머신건 켈리>에 출연시켰는가 하면, 1970년 <블러디 마마>란 황당한 갱스터 영화를 통해 로버트 드니로를 데뷔시켰다. 촌티가 줄줄 흐르는 이탈리아계 배우지망생 실베스터 스텔론에게 처음 영화에서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사람 역시 코먼이었다. 잭 니콜슨, 윌리엄 샤트너, 독립영화의 대부 존 세일즈, 평론가 출신의 감독 피터 보그다노비치 등 코먼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얻은 배우, 감독들은 이밖에도 부지기수이다.

코먼은 AP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제작자로서 생명을 이어온 비결로 '사람 투자'를 꼽았다. "돈을 모으려면 어디다 투자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주식이나 부동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내 주변을 둘러보니깐 영화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는데, 다행히 그 중에서 누가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는지 판단하는데 자신이 좀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한마디로 '인재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오늘날 자신의 성공적인 영화인생의 토대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또 "나를 만나지 못했더라도 충분히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 인재들이지만 내가 그들의 첫 출발에 조금은 도움을 줬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코먼은 유럽과 아시아의 예술영화들을 미국 영화계에 적극적으로 알린 수입업자이기도 했다. 잉그마르 베리만, 페데리코 펠리니, 프랑수아 트뤼포, 구로사와 아키라 등 동서양의 문제작들을 처음으로 수입한 사람이 바로 코먼이다. 코먼을 통해 미국에 알려진 이런 영화들은 1970, 80년대 영화학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이른바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토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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