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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에서 전계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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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에서 전계수까지

[오동진의 영화갤러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를 만났다.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면 영화감독 정성일 씨를 만났다. 그는 최근 <카페 느와르>라는 물경 3시간18분짜리 영화를 만들었다. 신하균과 문정희,정유미 등 비교적 유명배우들이 출연한 이 영화는 얼마 전 베니스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 차례로 출품돼 관객들을 만났다.

영화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를 읽었던 청춘시절 정성일 감독의 마음 속 풍경을 담고 있다고 한다. 지독한 사랑 이야기라지만 영화 자체가 매우 지독해서 관객들에겐 때론 지옥의 경험이거나 아니면 아주 새로운 경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양이다. 한마디로 고전의 문학이 그대로 영화로 만들어진 셈인데 할리우드 영화에 길들여진, 디지털 문법에 길들여진 신세대 관객들에겐 어렵고 난해한 예술영화인데다 무엇보다 낯선 아날로그 어법의 영화였던 모양이다. 실제로 배우들의 대사는 딱딱한 문어체 그대로여서 영화가 익숙해지기까지 꽤나 시간들이 걸렸을 것이다.

▲ 카페 느와르

정성일 씨는 종종 프랑스 누벨 바그의 기수인 프랑수와 트뤼포의 이야기를 인용한다. 트뤼포는 씨네필이 되기 위한 길을 정의하기를 첫째 영화를 두번 볼 것, 둘째 영화에 대해 쓸 것, 그리고 셋째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정성일 씨는 거기에 하나를 더 붙였다. 넷째. 영화를 한편 더 만들 것. 관객들이 자신의 영화에 대해 어렵게 생각하든 말든, 그것이 그래서 흥행이 되든 말든, 그는 비평가이자 감독으로서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전작의 필모그래피가 <삼거리 극장> 단 한편에 불과하지만 전도가 탄탄하다고 굳게 믿고 있는 영화감독 전계수와 작품을 한편 같이 만들었다. 제목은 <뭘 또 그렇게까지>다. 그러니까 그는 감독, 나는 제작을 했다는 얘기다. 프로듀서라기보다는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로서였다. 영화를 만든다는 건, 꼭 연출이 아니더라도 지옥의 경험이기 쉽다. 워낙 저예산영화였던 만큼 모든 일이 쉽지가 않았다. 그건 나보다 전계수 감독이 더 했을 것이다. 이 영화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전계수의 영화 역시 작가주의적 시선을 담고 있지만 정성일과 달리 보다 대중적이고, 보다 디지털적인 방식을 택했다. 춘천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하게 된 한 중견 화가가 화가지망생 여인을 만나게 되고 예술적 충동인 척, 나쁜 충동을 느끼게 된다는 얘기다. 위악스러운 지식인의 초상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제목은 주인공의 말버릇이 '뭘 또 그렇게까지'에서 따왔다.

▲ 뭘 또 그렇게까지

어쨌든 그래서였을까. 관객들은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영화제에서 비교적 인기를 모았던 작품의 순위에 올랐다. 영화제를 계기로 감독과 스탭 모두 자신감을 얻었다.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극장 개봉도 서두르고 있다. 잘만 하면 수익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시작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는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뭘 또 그렇게까지>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작품이 됐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정성일 감독의 <카페 느와르>보다 뛰어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전계수가 정성일을 이겼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건 아주 다른 게임이며 다른 승부수의 세계다. 더 중요한 것은 <카페 느와르>같은 작품이 있었기 때문에 <뭘 또 그렇게까지>같은 작품이 나온 것이며 따라서 <뭘 또 그렇게까지>를 성공시킴으로써 <카페 느와르>를 공존시키는 방식을 추구한다는 것이 남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선배가 후배를 키우고 후배가 선배를 새롭게 모신다는 점에서 두 작품을 보고 느끼게 되는 마음은 꽤나 동양적이다. 디지털의 어법이든 아날로그의 문체든, 그건 상관이 없다. 두 작품 사이의 간극은 그리 넓지 않다.

정성일 씨는 자신의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더 좋은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영화의 진짜 목적은 영화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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