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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논제 적중? 속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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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논술 논제 적중? 속지 마세요"

[키워드 가이드를 만나다] '대입 논술' 강사 박세종 씨

오는 12일, 전국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다. 수능시험이 끝나도 수험생은 긴장을 풀 수 없다. 대입을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은 수능시험 말고도 한두 개가 아니다. 논술 역시 그중 하나다.

대입 논술이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2000년을 전후로 수능시험이 상대적으로 쉬워지고 논술의 비중이 확대되면서 고등학교 교실에도 변화가 일었다. 수능시험에서 평가하기 어려운 논리력, 사고력 등을 평가하자는 논술 전형의 취지는 좋았지만, 결국 학생들은 수능-논술-내신이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에 시달리게 됐다.

영어 교육과 입학사정관제를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논술의 비중은 이전보다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대학에서는 수시와 정시 모집에서 논술을 전형 방법의 하나로 채택하고 있다. 현 대학 입시 제도와 교육 현실을 말할 때 논술이 빠질 수 없는 이유다.

'대입 논술' 키워드 가이드인 박세종 씨는 2004년부터 논술을 가르쳐온 강사다. 그의 소갯글에는 "군자삼락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들 돌 닦는 재미가 솔솔하다"며 "다른 무엇보다 아이들이 대학에 합격했을 때 큰 보람을 느끼며 산다"고 적혀 있다. 그가 바라보는 논술 교육의 현실, 한국 교육의 현주소는 어떨까.

▲ '대입논술' 키워드 가이드 박세종 씨. ⓒ프레시안

"입학사정관제? 사교육 시장은 큰 변화 없다"

프레시안 : 논술 강사로서 키워드 가이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박세종 : 지금 대입 논술의 가장 큰 문제는 가르치지 않고 시험을 치르는 것이다. 교재도 마땅한 것이 없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라도 학생들이 자습할 수 있는 교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가고 싶은 대학을 못 가는 일이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프레시안 : 정권이 바뀌고 나서 논술의 비중이 줄어들었다. 실제 변화를 느끼는지.

박세종 : 대학에서 학생 변별을 위해 도입한 것이 논술이었다. 대학이 원하는 인재상을 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력, 독해력이다. 당분간 논술이 전형으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입학사정관제로 많이 바뀌면서 논술 시장이 축소되긴 했지만 실제로는 눈 가리고 아옹이다. 구술 면접, 심층 면접이란 점에서 입학사정관제 역시 기존 대입 전형과 다르지 않다. 결국, 스펙에 따라 대입 결과가 많이 결정되고 또 스펙은 부모의 경제력과 직결돼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전체 사교육 시장은 많이 줄어들지 않았다.

아이들과 밀착해 일하다 보니 한국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을 자꾸 던지게 된다. 교육 문제를 보면 한국 사회가 보인다.

프레시안 : 최근 여당에서 사교육비를 줄인다면서 외국어고 폐지를 들고 나왔다.

박세종 : 대학이 서열화돼 있는 상태에서 교육열 내지 사교육비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외고 폐지에 찬성한다. 교육의 수월성 면을 봐도 중학생 때까지는 자유롭게 놀고 생각하고 책을 읽게 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준비한 친구들이 논술도 잘한다"

▲ "결국은 독서의 힘이다. 강제든 자율이든 책을 많이 읽은 친구들이 독해력 면에서 훨씬 나을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학생들의 논술을 보면 어떤 특징이 있나.

박세종 : 공통 교과도 많고, 비슷한 내용의 교육을 받아서인지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한다. 한 대학에서 경제적 부와 정신적 행복의 관계에 대해 논술하라는 논제를 냈는데, 95% 이상이 예시로 든 국가가 방글라데시라고 한다. 실제 채점했던 교수들이 이건 사교육의 결과라고 하면서 다 떨어뜨렸다지만, 실제로 이 예는 사회 과목에서 배우는 것이다. 애들은 어쨌건 암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다.

프레시안 : 학생들의 논술에서 예전과 비교해 변화가 느껴지는지.

박세종 : 사회 양극화로 인해 교육 격차가 심각해지고 있다. 지역 간, 계층 간 수능 성적의 격차도 벌어지고 있고, 논술도 그렇다.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부모 손잡고 독서 논술이든, 1주일에 책 한 권씩 읽게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친구들은 같은 고3이라도 다르다.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한 논술을 고3 막판에 시험을 앞두고 준비하다 보면 부실할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미리미리 독서든 신문이든 꾸준히 읽은 친구들은 아무래도 다르다. 그런 점에서, 어릴 때부터 철저한 교육을 받은 외고 친구들이 논술력도 좋은 건 사실이다.

프레시안 : 논술을 잘하는 학생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박세종 : 결국은 독서의 힘이다. 강제든 자율이든 책을 많이 읽은 친구들이 독해력 면에서 훨씬 나을 수밖에 없다. 제일 중요한 시기는 사춘기다. 또 사춘기 시기의 책 읽는 능력을 키우는 건 초등학생 때의 습관이 바탕이 된다. 그리고 초등학생의 습관은 유치원 때부터 기르는 게 낫다. 언어 영역이 우수한 친구들이 논술도 잘 한다.

"논제 적중? 말이 안 되는 광고…결국 사고력의 힘"

프레시안 : 대입 논술 경향은 어떻게 변해왔나.

박세종 : 2008학년도 입시에서는 통합교과형 논술이 강조됐다. 국어, 사회, 역사 등 교과를 통합해 출제한다면서 문제가 여러 문항으로 쪼개졌다.

난이도는 대학마다 차이가 있다. 특히 서울대 논술은 대학생들이 풀어도 어려운 수준이다. 대학의 전공 과목 중간고사 문제가 나오기도 한다. 단순히 글을 잘 쓰는 학생 이상의 실력은 원하는 거겠지만, 너무 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대학의 어려운 논술이 사교육을 유발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명문대들은 모두 외고생을 좋아하는 것이 사실이다. 잘 만들어지고 또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검증된 아이들이니까.

▲ "결국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일부 강사들이 근거나 예시를 암기하게 하거나, 심지어 논제를 적중시켰다고 광고하는데, 그건 정말 말이 안 된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논술 교육을 할 때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가?

박세종 : 시험을 앞둔 상황에서는 일단 많이 쓰게 한다. 논술은 사실 어려운 시험이다. 철학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까지 광범위한 분야에서 문제가 나온다. 학생들로서는 생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들이 나온다.

이미 수년간 실시된 대입 논술에서 더는 새로운 논제가 나오긴 어려워 보인다. 좋은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풀어보면, 나머지 관련된 사고도 뻗어나간다.

결국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일부 강사들이 근거나 예시를 암기하게 하거나, 심지어 논제를 적중시켰다고 광고하는데, 그건 정말 말이 안 된다.

프레시안 : 논술이 학교 교육에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라고 평가하는가.

박세종 : 우리나라 국민은 대부분 토론 능력이 부족하다. 인터넷 논쟁을 봐도 논리에 맞지도 않고 사실에 근거하지도 않은 주장을 펴는 사람이 많은데, 결국 그런 교육을 안 받아서인 것 같다. 책을 읽지 않고, 토론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해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

인문학적 소양까지는 안 가더라도 기본적으로 고등학교는 마치면 공공 영역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갖고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논술이 아니더라도 정규 교육 내에 이런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

"도서관이 얼마나 가까우냐에 따라 집값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프레시안 : 사회적으로 논술 교육을 강화할 방안이 있을까.

박세종 : 지금 한국은 인문학적 상상력이 부족하다. 대치동이나 목동의 학원 밀집가 지역은 집값도 비싸고 대입 성적도 좋다. 그렇지만 사실 도서관이 얼마나 가까우냐에 따라서 집값이 달라져야 하지 않나. 그런데 우리나라는 도서관이 전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도서관과 공교육이 손만 잘 잡아도 충분히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 시민단체나 사회적 기업에서도 공공 도서관을 만든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외고를 폐지해야 한다지만, 사회 자체가 좀 더 성숙해져야 하는 면이 많다.

인문계나 실업계에서는 대학을 포기한 학생들도 많이 문제가 된다. 사실 논술 교육은 그런 친구들에게 더 신경을 써야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 "아이들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사회가 경쟁으로 가로막고 있다. 그나마 논술이 숨통을 키운다는 면에서 바람직한 면이 있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한국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는지.

박세종 : 자기 자식을 훌륭한 인재로 키우고 싶다는 욕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점수 경쟁에 지친 아이들이 어떻게 훌륭한 인재가 되겠나. 우수한 애들 낙오시키는 교육이 어떻게 수월성 교육인가. 우리나라 아이들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 암기 외에 모든 능력이 사라진다. 경쟁이 정말 중요하고, 변별도 필요하지만 그게 다여선 안 된다.

아이들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사회가 경쟁으로 가로막고 있다. 그나마 논술이 숨통을 키운다는 면에서 바람직한 면이 있다.

프레시안 : 논술 지도를 하려는 학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세종 : 자기 자녀를 훌륭히 키우고 싶다면 확실히 독서력이 중요하다. 이게 해결되면 다른 것이 다 풀린다. 사회나 국가 차원에서 하는 교육도 교육이지만, 정말 자기 자식을 인재로 키우고 싶다면 부모님 스스로 책을 읽으면서 자식들의 책 읽는 습관도 길러야 한다.

논술은 글을 쓰는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연습으로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 결국 사고력 싸움이다. 뛰어난 인재로 만들려면 가능한 한 저학년 때부터 책을 읽혀라. 그게 결국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이 되고 사회의 질을 높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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