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국가의 목표가 될 수 있는가?
1932년 영국 소설가 아돌스 헉슬리가 쓴 <멋진 신세계>에서 미래 사회의 국가가 개인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 사회를 통제하는 현실을 묘사했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어린 나이부터 개방적인 성이 보장되고 물질적 쾌락의 지속적 소비가 보장된다. 기분이 나쁠 때는 국가에서 제공하는 '소마'라는 부작용이 없는 환각제를 복용하면 된다. '아름다운 인류'를 위해 '매일의 노동과 오락이라는 굳건한 기반' 위에 구축된 행복은 '멋진 신세계'의 궁극적 목적이다.
그러나 행복의 지나친 통제가 곧 인간의 불행을 만들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1919년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학문으로서의 정치>에서 "인간의 삶을 통제하는 기술"을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본 견해는 "순진한 낙관론"이라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행복을 추구하는 정책은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는 있겠지만, 인간의 삶에서 필요한 더 높은 차원의 욕구를 경시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국가는 언제나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제공했다. 마치 모세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한 것처럼 현대사회의 국가는 인간의 행복을 구현하겠다고 약속했다.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서'는 "창조주로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고, 이 권리들 가운데 삶, 자유, 그리고 행복 추구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1789년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인권선언'의 마지막 줄은 "모든 이의 행복"이라는 고귀한 목적을 명시했다. 이와 같이 현대 국가는 행복을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형성되었으며, 행복의 욕구는 생명의 권리와 자유의 권리만큼 동등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19세기 영국에서도 정치의 목적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제레미 벤담의 도덕철학을 통해 행복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현대 정치와 행복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대 정치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견해이다. 원래 '행복'(happiness)의 어원은 스칸디나비아 말의 어원으로 '행운'이라는 뜻을 가진 'happ'에서 기원했다. 이들에게 행복은 발생하는(happen) 것이지 획득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비해 동양에서 행복이라는 용어는 물질적 풍요와 관련이 깊고, 서양의 행복을 가리키는 말은 동양에서는 '안심'과 '안락'이 가깝다. 이에 따라 동양에서는 마음의 수양을 강조했으며, 고대 서양인의 행복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뛰어난 개인에게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서구사회에서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행복이 인간에게 우연히 주어지는 운명이 아니라 인간이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으로 보았다.
현대 정치에서 행복은 국가의 의무로 간주되었다. 선진국 가운데 가장 행복에 관심이 큰 나라는 영국이다. 1990년대 후반 영국의 경제학자 앤드류 오스왈드는 블레어 정부가 행복을 공공정책의 중요한 아젠더로 설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오스왈드는 정부의 초점이 국내총생산(GDP) 대신 총행복수준(Gross Happiness Level: GHL)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제학자답게 행복한 삶을 돈의 가치로 계산했다. 예를 들어, 행복한 결혼의 가치는 연 7200파운드의 소득 증가와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이후 영국 총리실에서는 삶의 만족을 측정하기 위한 17가지 차원을 조사하여 발표했다.
일찍이 1970년대부터 부탄은 '국민총생산'(Gross National Product) 대신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 GNH)을 발표하여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부탄의 인간개발지수는 2007년 기준 세계 131위에 불과하지만, 삶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개발을 규제하며 관광객의 인원도 제한한다. 1990년대 이후에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와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도 행복에 관한 많은 연구를 발표했다. 영국, 캐나다, 호주의 통계청은 행복을 측정하는 사회적 지표를 개발하려고 시도했다. 이처럼 현재 수많은 정부들이 행복의 증진을 중요한 정책 목표로 간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연 정부가 개인의 행복을 측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어떻게 행복을 측정하는가?
오랫동안 많은 정부들은 발전을 측정하는 척도로 국내총생산(GDP)을 활용했다.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은행의 <세계발전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에 개인의 행복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삶의 질'의 요인을 측정하려는 시도가 등장했다. 첫째, 객관적 방법으로 유엔 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지수(HDI)가 있다. 인간개발지수는 국내총생산에 초점을 맞추는 세계은행과 달리 경제 이외의 요소도 취학연수, 영아 사망률, 보건서비스 접근, 식수, 위생, 칼로리 섭취 등을 중요한 요소로 본다. 이는 국내총생산보다 '사회적 역량'을 강조한 인도 출신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 교수의 주장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둘째, 삶의 질에 관한 주관적 측정은 미국 심리학자 디너의 '주관적 웰빙(SWB)에 관한 연구를 통해 제시되었다. 주관적 안녕은 객관적 삶의 질과 독립적으로 한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 얼마나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지를 의미한다. 최근 <웰빙과 공공정책>을 출간한 디너 교수는 "공공정책을 만들고 평가하기 위해서 주관적 안녕을 측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폰 하예크가 <예종의 길>에서 말한 대로 "수백만의 인구의 복지와 행복은 한 가지 척도로 측정할 수 없다". (물론 그는 소련의 국유화를 반대하려는 의도였지만 현재 자유시장을 만병통치약이라고 믿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는 논리이다) 실제로 행복을 측정하는 수많은 연구는 행복을 결정하는 다양한 요인을 제시한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정책 제안서가 최근에 발표되었다. 올해 9월 프랑스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아마티아 센이 주도하는 '경제성취와 사회진보 측정위원회'의 보고서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요청으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국가 정책의 목표가 경제성장보다 인간의 웰빙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정부는 국내총생산 이외에도 객관적 삶의 질, 주관적 웰빙, 지속가능성과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행복의 원인이 사람마다 다양하기 때문에 행복을 추구하는 정부의 정책도 '종합적 처방'을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영국의 경제학자 리차드 레이어드는 2005년 출간한 <행복: 새로운 과학의 교훈>이라는 저서에서 모든 사회과학자들이 행복의 결정 요인을 이해해야 하며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행복에 관심을 갖는 정부는 소득세를 인상하고, 유급출산휴가 기간을 확대하고, 행복을 증진할 수 있는 다양한 삶을 가르치는 공공교육을 급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개인의 생애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위험을 감소하기 위한 적절한 정책수단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인생과정에서 발생하는 예상하지 못한 불행한 사건이 행복을 감소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다양한 연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이혼하려는 부부, 실직에 당할 근로자, 사고로 장애가 된 경우, 심각한 질병이 장기화된 경우에는 곧 불행이 닥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어떤 국가는 이혼하려는 부부의 숙려기간을 연장하여 이혼율을 줄이려고 시도한다. 어떤 국가에서는 실업자, 장애인, 환자를 지원하는 복지제도를 잘 갖추고 있다.
이런 점에 영미권 국가보다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더 행복 수준이 높은 것은 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삶의 만족이 높은 이유는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소득 불평등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충분한 사회보호체제가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더 불행해지는 한국인
한국의 사례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취약한 복지제도가 주관적 안녕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 수 있다. 먼저 국내총생산을 보자. 2003년 한국의 국내총생산은 세계 11위까지 올랐으나 2008년에는 환율인하와 경기악화로 15위로 하락했다. 그러나 1인당 국내총생산을 비교해보면 순위는 더 낮아진다. 2008년 1인당 국내총생산은 1만9505달러로 세계 36위이었다. 생활비를 반영하는 구매력지수(PPP)는 세계 13위이고, 1인당 국내총생산은 2만7647달러로 32위이다. 이렇다보니 정부는 경제력을 따질 때 '1인당 국내총생산 세계 32위'보다 '세계 15위 경제'를 강조한다. 순위에 너무 민감한 의도적 결과이다. 한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가장 경제성장의 속도가 빠른 나라로 알려져 있다. 1960년 89달러에 불과하던 1인당 국내총생산은 2009년 거의 200배 정도 증가했다. 그러면 우리의 행복도 이에 이처럼 커졌는가?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점점 더 부유해질수록 점점 더 불행해지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2009년 6월 영국 신경제재단(NEF)이 세계 143개국을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68위를 차지했다. 2008년에는 102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왜 이렇게 한국의 행복지수는 낮은가? 2009년 조사를 보면, 한국의 소득 수준과 기대수명(77.9세)은 상위권에 속하지만, 삶의 만족과 환경지표는 중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한국의 주관적 안녕에 관한 조사는 개인의 삶의 만족이 경제성장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의 높은 자살율과 알콜 소비량이 삶의 만족 사이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는 없지만, 한국인의 높은 직무 스트레스가 주는 영향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직장인 대부분은 직장생활에서 만족도가 매우 낮다. 노동시간이 세계 최장이고 노동 강도가 점점 높아진다는 불만이 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성별, 학력별 임금격차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이다. 이처럼 주관적 행복감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실업율과 고용율로 포착할 수 없는 다양한 노동조건을 살펴보아야 한다.
정치인과 정책결정자의 오류
정부가 경제성장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는 경우 잘못된 공공정책을 선택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라는 국정목표를 내세웠다. 노무현 정부는 국정운영 지지율의 하락에 불만을 터트리며 "거시경제지표는 좋아졌다"고 항변했다. 경상수지, 외환보유고, 물가를 보면 경제가 좋아졌는데 왜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낮아졌는가? 당시 정부는 고용율, 청년실업율, 비정규직 비율, 여가 시간, 교육, 복지 등 삶의 질을 측정하는 지표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 결정자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증가해도 개인들의 삶의 만족은 전혀 좋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한 때 '747'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국민소득 '4만 달러'를 정부의 목표로 정했다. 이는 정부가 국내총생산을 얼마나 중요한 목표로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국내총생산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정치인들과 정책결정자들은 국내총생산이 곧 삶의 만족을 가져올 것이라고 잘못 생각한다. 비록 경제 수준이 행복에 미치는 요인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경제 수준의 향상이 곧 행복의 증가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어느 가족이 자동차를 2대 가지고 있다면 만족을 느낄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모든 사람이 똑같이 자동차 2대를 보유하게 된다면 특별히 더 행복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시장의 경쟁, 선택, 소비의 증가가 곧 인간의 행복을 증진하는 것은 아니다.
▲ 2007년 서울복지재단과 대한민국학술원의 조사에 의하면 서울, 뉴욕, 토론토, 런던, 파리, 도쿄 등 세계주요도시 10곳 중 서울시민의 행복지수가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나타났다. 생활환경, 공동체생활, 복지, 생태환경 등 11개 조사항목 가운데 8개 항목에서 최하위를 기록해 서울시민의 행복지수가 도쿄나 베이징보다도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연합뉴스 |
행복을 추구하는 정부 정책
이명박 정부의 집권에 큰 도움을 준 '747'이라는 공약은 이제 사라지고 있다. 대신 정부는 '국민행복지수'를 내세우려고 한다. 경제공약을 달성하기 어려우니 슬그머니 행복지수로 대체하려는 것일까? 하지만 경제성장과 행복이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2006년 경제개발협력기구의 한 연구에 따르면, 국내총생산이 높을수록 다른 사회적 지표도 긍정적 효과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내총생산이 많은 나라에서 여가시간도 많고 사회적 평등 수준도 높았다. 국내총생산이 높은 나라일수록 사회적 관용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복지에 대한 지지도 높은 편이다. 부유한 국가들이 훨씬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건강 수준도 높다. 이는 국내총생산이 전반적 행복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결국 돈은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행복의 측정도 국내총생산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측정을 삶의 질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제성장과 삶의 질은 마차의 두 바퀴와 같기 때문이다.
한국의 행복을 증진하는 효과적인 공공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고려해야 한다. 첫째, 경제적 요인과 함께 다양한 삶의 질도 함께 중시해야 한다. 행복의 결정요인 가운데 안정적인 일자리, 주택, 교육, 실업수당, 노후연금이 중요하다. 친밀한 가정, 공동체의 소속감, 건강, 정신적 안정, 시민적 자유, 참여민주주의와 같은 비물질적 요인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공공정책의 목표는 물질적 기준 또는 경제적 효율성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평등과 개인적 자유의 확대, 계급과 특권의 철폐,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방법론이 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공공정책은 단순하게 물질적 차원의 분배가 아니라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고 인간애를 실현하기 위한 이상적인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둘째, 주관적 지표를 통해 대중의 선호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정치권의 정책결정과정이 대중의 선호를 대변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치인과 정책결정자들은 여론조사에서 얻은 정보를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선택이 존재하는 시장의 구조에서 대중의 선택이 반드시 자신의 행복을 증가시키는지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 더 많은 경쟁을 원하지만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적 사회에서 정부가 어떻게 시장의 선택 가운데 개인의 안녕을 위해 장기적으로 유용한 대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인지는 더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 결국 행복의 요인을 자의적으로 결정하려는 국가의 시도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시민사회의 토론과 논쟁을 통해 검증을 받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없이는 행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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