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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출마는 안 한다. 그러나 정치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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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출마는 안 한다. 그러나 정치는 한다"

[창간 8주년 지방순회 강연회 :<5· 끝> 대전] "한국은 지금도 쇄국정책을 하고 있지 않나"

최근 국가로부터 소송을 당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화두는 '희망'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로 없을 것"이라는 국가와의 소송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기적으로 보면 절망이 많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희망이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창간 8주년 지방순회 강연회의 마지막으로 4일 대전 풀뿌리사람들 강당에서 열린 강연에서 박원순 상임이사는 창의적 사회,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강조되는 사회, 풀뿌리가 중요시되는 사회를 역설했다. 150여 명의 참석자들은 박원순 상임이사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크게 웃고 또 박수를 쳤다.

▲ 격렬한 논쟁의 장이라기보다,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기 위해 연사와 청중이 함께 머리를 맞대는 분위기였다. ⓒ프레시안

격렬한 논쟁의 장이라기보다,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기 위해 연사와 청중이 함께 머리를 맞대는 분위기였다. 지난 2006년 <프레시안> 창간 5주년 기념 강연에 이어 3년 만에 강연자와 토론자로 다시 만난 김제선 풀뿌리 사람들 상임이사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출마는 안 하지만 현실 정치 간섭할 것"

박원순 상임이사의 강연 이후 이어진 토론 및 질의응답에서는 단연 정치 개입 문제가 화두였다. 박원순 상임이사가 대선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인물인 만큼 현실 정치 참여, 특히 출마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김제선 이사는 "디자이너가 설계를 하지만 시공은 잘 되고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며 "사회 전반을 설계하고 방향을 잡는 일이 소셜 디자이너의 역할이라면 박원순 상임이사와 같은 사람은 책임 시공, 감수까지 해야 하지 않냐"고 물었다.

청중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에서 일한다는 한 남성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며 "정치를 바꾸려면 정당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박원순 상임이사는 고개를 저었다. 박 이사는 "물론 한 번에 싹 바꾸고 싶은 생각은 이해한다"면서도 "그런데 그 잔을 왜 자꾸 나에게 돌리냐"며 웃었다. "청문회에 온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여러 과정을 통해 좋은 후보들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만 하더라도 (2002년 대선) 1년 전까지도 예측이 안 됐던 분이었다"고 말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프레시안

그는 이어 "선거만이 세상을 바꾸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며 "사실 베스트 대통령은 어느 시기에도 없으며 잘못된 정부 정책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고 덧붙였다. 현실 정치에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깊숙이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에는 정치와 일부러 거리를 조금 뒀지만 이제는 정부가 좀 바뀌도록 하는 일에는 기꺼이 나설 생각"이라며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박 이사는 "한 사람이 다하는 것보다 설계사가 있고 시공과 감수 등 각각 나눠져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면서도 "다만 (김제선 상임이사의 말대로) 제대로 공사가 진행되지 않을 때는 디자인한 사람이 가서 간섭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시민사회가 정치 신경 안 쓰고 우리 일만 할 수 있다면 너무 좋겠다. 태평성대는 대통령이 누군지, 장관이 누군지도 모르고 살 수 있는 사회다. 나는 그러려고 했는데 이 정치가 다시 그럴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도망가고 백안시할 수도 없지 않나. 대한민국 일원으로 우리가 정치에 관심 갖고 참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민사회도 정치로부터 반드시 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과 함께 '희망과 대안'을 설립한 그는 정치 개입의 구체적 방법은 아직 고민의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지난 2000년의 낙선운동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국민들의 참여를 끌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서도 그는 "사실 너무 좋다"며 "국가와 내가 동격이 됐기 때문에 당해볼 가치가 있는 일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 집단의 지도자, 소통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통찰력 가져야"

▲ 지정토론자로 나선 김제선 대전풀뿌리사람들 상임이사. ⓒ프레시안
현실 정치에 대한 얘기는 자연스럽게 지도자의 자질에 대한 토론으로 옮겨갔다. 김제선 상임이사는 "지난 대선에서는 '부패했지만 유능한 집단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말이 우리 사이를 배회했다"며 "그러나 현 정부를 겪으면 참된 공공의 지도가의 덕목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박원순 이사는 "적어도 한 집단을 이끄는 사람은 그 집단의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면서 확신을 가지고 반대 쪽으로 가는 지도자는 너무 심각한 문제"라며 "(이런 지도자) 때문에 지난 100년 동안 우리 민족의 처참한 참화를 겪어야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개방을 통해 서양 문물을 빨리 받아들이고 그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할 시기에 나라의 문을 닫아놓는 바람에 일제의 먹이가 됐다. 그 결과 10만 명의 젊은 처자들이 일본의 성노예가 됐다.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징용으로 끌려갔다. 지난 2000년 일본의 고베에 갔더니 200km에 달하는 상수도가 모두 조선인 징용자들이 건설한 것이었다. 그 이후에도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좌우를 막론하고 100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그는 "지금도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쇄국정책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 혁신을 위한 수많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제대로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이런 모든 것에 앞서 우리 사회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은 통합과 소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 사람이 모든 아이디어를 다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곳곳에 있는 인재와 소통하지 않고 연대의 마음과 정신이 없다면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작다"며 "그 지평을 넓힐수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청년층의 절망, 삼성전자·공무원만 보지 말고 생각을 바꿔라"

▲ 박원순 상임이사는 "청년층이 88만 원 세대로 표현되는 것은 그만큼 위기와 한계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며 "청년의 기백"을 강조했다.ⓒ프레시안
박원순 이사의 세대를 초월한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날 강연은 특히 학생과 청년들의 참여가 도드라졌다. 한 고등학교 여학생은 박 이사에게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는 청소년은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물었고, 충남대학교 학생은 "청년 기업가의 비전은 어디에 있냐"고 질문했다. 한남대 휴학 중이라는 또 다른 대학생은 "20대는 많이 침체돼 있다"며 "희망을 느끼지 못하는 20대를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냐"고 조언을 구했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청년층이 88만 원 세대로 표현되는 것은 그만큼 위기와 한계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며 "청년의 기백"을 강조했다.

"왜 굳이 삼성전자에 가려고 하나. 철밥통 공무원이 과연 청년들이 선호해야 할 직업인가.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굶어죽을 염려는 정말 없다. 여기 김제선 상임이사도 잘 살고 있지 않나.(웃음)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굶어 죽은 사례는 없다. 청년들이 그런 기상만 가지면 할 일이 널려 있다."

시선을 돌리라는 것이다. 그는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학위를 받아도 대학에서 교수가 되기는 어렵다"며 "모금학, NPO를 공부하면 교수 책임져 준다"고 말했다.

"대안학교인 거창고에 가면 강당 뒤에 '직업선택의 10계명'이 붙어 있다. 첫째, 남이 가지 않는 곳. 둘째, 월급이 많은 곳은 절대 가지 마라. 그리고 9번째가 부모나 형제가 말리는 직장이면 틀림없다. 진리의 말이다. 부모님 세대가 선호하는 직장은 이미 한 물 간 직장이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는 "청년의 기백과 시니어의 경험과 지혜가 뭉쳐지는 사회"를 상상했다. 그는 "은퇴한 인력만 잘 써도 GDP가 올라갈 것"이라며 "우리는 그들의 지혜와 경험, 네트워크를 고려장 시키는 중"이라고 말했다.

▲ 행사를 주관한 풀뿌리사람들은 강연 도중 문자 메시지를 통해 청중의 질문을 받았다.ⓒ프레시안

"더 큰 경제적 풍요 선택했다 호랑이 만나지 않았나"

행사를 주관한 풀뿌리사람들은 강연 도중 문자 메시지를 통해 청중의 질문을 받기도 했다. 이 가운데 "이 정권 아래에서 사는 것이 힘이 빠진다. 힘 빠지지 않고 즐겁게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박 상임이사는 재치 있는 답변을 내놓았다.

"우연히 미국 공항에서 <부시 정부 아래서 행복하게 사는 법>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부시 정부 아래서 미국 국민의 스트레스가 상당했다고 한다. 캐나다로 이민도 많이 갔고, 유럽에 가면 '나는 미국 사람이 아닙니다(I'm not American)'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도 많았다. 그 책을 드릴 테니 번역해 한국어판으로 하나 내보시라. 번역하면 아마 상당한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그는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조사에 따르면 전체 국민의 6%가 울화증에 시달리고 있고 대한민국의 자살율은 세계 1위"라며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됐지만 그만큼 희생한 것도 많고 행복하지도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도 더 잘 살고 싶어 하다 결국 호랑이를 만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박 이사는 지치지 않는 자기 삶의 원동력으로 "즐거움"을 꼽았다. 그는 "때로는 절망도 있고 어려움도 있지만 변호사 다 버리고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좋아서 잠이 안 온다"며 "부모님이 억지로 시키면 잠깐은 하겠지만 설사 끝까지 하더라도 보람을 가지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사회를 향한 상상의 첫 걸음도 고민과 열정, 그리고 재미에서 나온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프레시안

"새로운 사회를 향한 상상의 첫 걸음도 고민과 열정, 그리고 재미에서 나온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국정원으로부터 소송을 당한 뒤에도 삭발이나 1인시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그런 것은 재미가 없지 않나. 그래서 국가 이름으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그 소송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들이 자기 이름을 빼달라고 청원하는 운동을 내 블로그에서 벌이고 있다. 원고가 대한민국인 유일무이한 소장도 온라인에서 경매 중이다. 소장을 패러디하는 놀이도 하고 있다. 그만큼 재미가 참 중요하다."

그는 마지막으로 "꿈과 희망은 저절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사회도, 결국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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