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나이 여든 먹은 영감탱이가 이름 적어놓고 출근도장만 찍어도 돈을 준다니까? 그냥 노인들 용돈 주는 거야. 일 하는 놈만 하고, 안 하는 놈은 안 해. 신청만 하면 아무나 다 돼. 희망근로하는 아는 할머니한테 '할머니 돈 많잖아요' 하니까, 아이고, 그 할머니 암 말 못해."
최 씨는 월급여로 약 64만 원 정도를 받는다. 희망근로자들은 80만 원 이상을 번다. 같은 일을 하는데 급여 차이가 나니, 최 씨는 그저 "정부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라는 말로 한숨을 푹 쉴 따름이다.
▲지자체가 여러 특색있는 사업을 개발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부분 희망근로자들은 도심환경미화에 주로 투입된다. ⓒ프레시안 |
희망근로 프로젝트, 희망을 남겼나
이번 달 말로 올해 희망근로 사업이 마무리된다. 희망근로 사업은 총 25만 명의 근로능력자에게 단기 일자리를 줘 서민 생활을 안정시킨다는 취지로 올해 6월 시작됐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9월말 현재까지 40만5435명이 희망근로를 신청했다. 선발돼 한 번이라도 일한 인원은 총 25만2448명. 배정된 예산(1조7330억 원)의 59%인 1조226억 원이 9월말까지 이들의 인건비와 재료비 등으로 투입됐다.
이 사업은 민간경제가 활력을 잃어 실업률이 치솟을 것이라는 시중의 우려를 잡는데 기여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실업률은 위기 이후에도 3%대를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사업이 시작한 지난 6월 취업자 수는 전년동월대비 4000명 증가해 7개월 만에 처음으로 플러스 반전했다. 정부가 이 사업을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는 이유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희망근로 사업으로 단순 청소 이상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안산시에서는 재활용 자전거를 불우청소년에게 나눠주는 사업을 시행해 호평을 받았고, 충남 서산에서는 어장 진입로와 선박계류장을 설치하기도 했다.
급여의 30~50%를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정책 역시 지역상권 신장에 큰 역할을 했다고 정부는 자평한다. 행안부 관계자는 "제주도 서귀포의 경우 한 달 매출이 65억 원이던 재래시장 매출이 희망근로 사업 시행 이후 100억 원으로 늘어났다"고 강조했다.
희망근로 참가자 권영아(가명, 51, 동작구) 씨는 "큰 애가 대학 졸업반이라 부담이 많았는데 동네에 붙은 벽보를 보고 신청했다"며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지만 우리가 일한 다음 확실히 동네가 깨끗해졌다"고 했다.
일자리 증가, 알고 보면 허점투성이?
그러나 이 사업은 많은 문제점 역시 안고 있다. 희망근로 사업이 실업률 상승을 막았다고 하지만, 가장 심각한 실업난을 겪고 있는 20~30대 예비 사회인들의 실업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단순 노동에 일회성 사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았던 고령층·가정주부 등이 취업자로 신규 편입돼 일하는 사람이 더 늘어났다는 게 이 정책의 효과다.
행안부 자료에 따르면 희망근로 사업 선발자 중 20대(7402명)와 30대(1만9476명)가 전체 참가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6%에 불과하다. 반면 60대 이상 고령층은 47.9%에 달했다. 이들 고령층이 어떻게 실업률을 다잡았는가는 취업자 증가추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 지난 22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9월 기준으로 20대와 30대 취업자는 각각 13만7000명, 13만8000명 감소한 반면 50대와 60대는 24만 명, 11만3000명 늘어났다.
▲공공근로 참여자와 희망근로 참여자들이 하는 일은 사실상 같다. 정부가 거창하게 일자리 증가 프로젝트로 희망근로를 포장했으나 차별성을 찾기란 어렵다. ⓒ프레시안 |
이 사업이 주먹구구식으로 시행됐다는 점도 되짚어봐야 한다. 일선 공무원들이 자기 가족을 희망근로자로 등재해 눈먼 돈을 타간 사실은 국정감사에서 주요 논란거리가 됐다. 앞서 공공근로자 최 씨의 말대로 희망근로 대상자격도 없는 사람이 상당수 이 일로 세금으로 마련한 돈을 타갔다. 희망근로 참여 자격은 가구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20% 이하이며 재산은 1억3500만 원 이하인 사람이 우선 선발 대상이다.
지난 국감에서 강기정 민주당 의원이 행안부와 서울시에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희망근로 참여자 5만1568명 중 7512명(14.6%)이 1억3500만 원 이상의 재산을 갖고 있었다. 강남구에서는 13억5200만 원의 자산을 보유한 사람도 이 사업으로 월급을 꼬박꼬박 받아갔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인터넷 포털 게시판에 '희망근로'를 검색하면 현장에서 이들을 지휘하는 이들이 "사람들이 일은 안 하고 도장만 찍고 간다"고 불평한 글들이 넘쳐난다.
이처럼 참여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희망근로에 참여할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서울시에 할당된 인원 중 참여자격을 가진 '최저생계비 120% 이하'의 비중이 27%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중랑구의 경우, 참여자 중 차상위계층은 11명에 불과했다. 사업 자체가 급조된 탓에 구체적인 사전 검토도 이뤄지지 않았음을 추정 가능한 대목이다. 강 의원은 "자치구에서 대상자에 대한 고민도 없었고, 대상자를 찾아 사업에 참여시키려는 노력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행안부 관계자는 "강남의 경우 집 한 채만 가진 사람 재산이 그 정도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며 "그런 실정을 악용한 일부 부적격자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취약점을 보완하고 있다. 어려움을 헤아려달라"고 말했다.
특별히 중요하지도 않은 지역 청소에 예산을 낭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내년에는 진짜 서민을 도울 수 있고, 생산성이 있는 사업으로 한정할 계획"이라며 "올해는 인건비가 75%였는데 내년에는 이를 60%로 낮추고 재료비를 더 높일 것이다. 3D 업종 취업과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이와 관련, 당초 올해만 한시적으로 시행키로 했던 희망근로 사업은 내년 3월부터 6월 사이 2차 사업 연장으로 이어진다. 올해보다 규모는 대폭 줄어들었다. 2차 사업 규모는 참여인원 10만 명, 예산 5270억 원으로 올해의 절반에 못 미친다.
▲지자체장들은 희망근로 현장 지도에 여념이 없다. 지자체장은 공인으로, 얼굴을 가릴 필요가 없는 인물이지만 이 기사에서 지자체가 제공한 사진은 특정 지자체장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니므로 관련자 얼굴을 가렸다. ⓒ뉴시스 |
희망근로, 내년 6월까지 연장…지방선거용?
내년 6월 2일 시행되는 지방선거 일정을 감안하면 희망근로 연장 역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당의 승리를 위해서는 경제안정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희망근로 사업 연장으로 일자리 감소를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여권에서 만들어졌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희망근로 사업 시행권한을 각 지자체가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사업과 지방선거가 맺은 연계성은 더욱 확연해진다. 인터넷포털 네이버에서 검색어 '희망근로'로 지난 10월 한 달 간 제공된 기사들을 찾아본 결과, 지자체에서 제공한 홍보용 자료는 총 251건에 달했다.
대부분 'OO군, 희망근로 사업으로 명소 만들다', 'OO구청장, 희망근로 사업장 애로사항 점검' 등 제목만으로도 홍보기사인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기사들이었다. 희망근로사업 자체가 자료의 주제인 경우만 합산한 것으로, 지자체에서 보낸 자료라 하더라도 희망근로 사업이 주제가 아닐 경우는 모두 제외했다. 언론사별 중복되는 내용은 모두 포함했다.
지자체가 이처럼 희망근로 선전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방선거 때 이 사업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했느냐를 두고 후보 간 선거전이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경제위기 터널을 지나는 와중에 지방선거의 주요 변수는 결국 지역민 삶의 질로 이어질 것이며, 희망근로에 따른 일자리 증가와 지역 주민 삶의 질 향상은 곧 현 지자체장의 업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제 대통령' 공약으로 정권을 잡은 현 정부가 일자리 정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정부도 이를 거들고 있다. 경기가 살아남에도 희망근로를 내년 지방선거가 있는 6월까지 연장키로 한데 이어, 청년인턴 사업, 사회서비스업 등을 합쳐 내년 정부 주도 일자리를 총 65만개 공급할 계획이다. '일자리 증가→실업률 다잡기→경제 살리기'로 이어지는 정부 업적 선전이 위력을 발휘하리라는 계산이 가능한 대목이다.
희망근로가 본래의 취지를 잃고 선거용으로 전락한다는 지적은 야당은 물론, 상대적으로 정부에 우호적인 매체에서도 지적하는 문제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20일 사설에서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치단체에서 자격 기준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고 선심 쓰듯 돈을 내주는 분위기마저 드러나고 있다"며 "지자체의 선심성 예산 집행은 공명선거 차원에서도 단호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민생문제가 정치의 종속변수로 되돌아가는 구태가 되풀이된 셈이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은 오늘도 정치의 볼모로 취업원서를 들고 헤맨다. 희망근로로 인해 '확실한' 희망을 얻은 이는 지자체장과 참가자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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