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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슬픈'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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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슬픈' 사람들

[홍성태의 '세상 읽기'] 더 무서운 '용산 참사 시즌2'

헌법재판소가 자신의 존재 이유와 법의 가치를 크게 훼손한 판결을 내리기 하루 전인 2009년 10월 28일, 서울중앙지법에서도 시민들을 그야말로 경악하게 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검찰이 사건 기록조차 제대로 밝히고 있지 않은 심각한 문제적 상태인데, 법원은 사실상 검찰의 기소장을 그대로 읽었다는 평가를 받는 지극히 문제적 판결을 내려 버렸다.

'용산 학살'이라고까지 불리는 용산의 참극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의 1심 재판부는 전적으로 철거민의 잘못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이 나라에서 '디케'는 정말 오래 전에 죽어 버렸나 보다. 용산 참사는, 아니 '용산 학살'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렇게 확인하게 된다.

수경 스님의 말씀대로 가족의 밥상을 지키려다 졸지에 목숨을 잃은 가장들이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로 아직도 싸늘한 시체로 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철거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이 중죄인이 되었으니 그들도 역시 중죄인이 되고 만 셈이다. 시위진압 수칙도 지키지 않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억울한 죽음을 맞고, 9개월이 넘도록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이제는 법원에 의해 중죄인이 되고 만 것이다.

ⓒ프레시안

가을이 깊어가고 거리에는 낙엽이 쌓이는데, 용산 철거민의 가슴에는 분노가 쌓이고, 지켜보는 시민들의 가슴에는 한숨이 쌓인다. 2009년 10월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한양석)가 내린 판결을 잠시 보자. 검찰은 망루에서 농성을 벌인 철거민들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라는 무시무시한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이충연(35) : 용산4구역 상가공사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 : 징역 6년
김주환(44) : 신계동 철거민연합회 위원장 : 징역 6년
김아무개(52) : 용산 4구역상가공사세입자대책위원회 조직부장 : 징역 5년
김아무개 : 징역 5년
천아무개 : 징역 5년
김아무개 정금 마을 상가 세입자 대책위원장 :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
조아무개 성남 단대동 상가 공장 철거위원 :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이 사람들은 가족의 밥상을 지키고자 포악한 철거에 맞서다가 5명의 동료들이 비명횡사하는 참극을 겪고 겨우 목숨을 건졌으나 이제는 법원에 의해 중죄인이 되어 버렸다. 더욱이 이충연 씨는 고 이성수 씨의 아들이다. 정말이지 이런 법이 세상에 어디에 있는가? 엄청난 불행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의 주인공이 된 이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건네야 하는가?

재판부의 판결문은 재판부의 정당성에 대해 커다란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검찰의 수사 과정과 기소 내용 그리고 경찰의 진압 과정 등에서 발생한 많은 문제들이 이미 잘 알려졌으나, 이에 대해 재판부는 전혀 검토하지 않고 검찰의 기소 내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언론이 전한 판결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이것을 보면 결코 재판부가 공평무사했다고 할 수 없다.

"농성자들이 망루로 진입한 경찰특공대를 향해 던진 화염병의 불길이 인화물질에 옮겨 붙으면서 화재가 발생해 경찰관 1명이 사망하는 등 검찰의 공소 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

"김 씨 등 농성자들은 용산4구역 재개발사업과 관련해 상가 보상에 불만을 품고 골프공, 화염병, 세녹스 등 위험한 물건을 소지, 타인의 건물에 침입해 장기 농성을 준비했다."

"한강대로변의 건물에 무단 침입해 행인들을 위협하는 위험한 농성을 벌이는 농성자들을 신속하게 진압하기 위해 경찰이 특공대를 조기에 투입한 것은 정당한 공무집행이었다."

검찰의 기소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큰 논란이 제기되어 있는 상태이다. 검찰은 무려 3000쪽에 이르는 핵심적인 수사 기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서 커다란 의혹과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경찰의 과잉 진압에 대해서는 경찰 자신도 일부 시인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찰의 기소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모든 잘못을 철거민의 책임으로 돌렸다.

용산 참사의 근본 원인은 두가지이다. 첫째, 막대한 투기 이익을 노린 지주와 개발업체의 탐욕이다. 이들은 4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투기 이익을 노리고 급속하고 강경하게 철거를 추진했다. 이 때문에 졸지에 가족의 밥상을 빼앗기고 생존의 위협을 느낀 상인들은 목숨을 걸고 저항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둘째, 막대한 투기 이익을 노린 원주민 추방형 재개발의 문제를 제어하지 않는 정부의 무능이다. 대체로 원주민 추방형 재개발은 참혹한 폭력을 통한 노골적인 인권의 유린을 통해 강행된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수많은 비판이 이루어졌으나 어찌된 일인지 여전히 극도로 폭력적인 원주민 추방형 재개발은 종식되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제2, 제3의 용산 참사가 전국 어디서나 다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용산 참사의 직접 원인은 경찰의 과잉 진압이다. 경찰은 시위 진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생존의 위협에 쫓겨서 빈 건물의 옥상에 망루를 설치하고 위태로운 저항을 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극도로 피곤한 꼭두새벽에 굉장한 폭력을 동원한 강제진압을 강행한 것은 최소한의 인권과 안전조차 망각한 잘못이 아닐 수 없었다. 위험 물질이 잔뜩 쌓여 있는 농성장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조속한 강제진압을 서두른 것은 그야말로 참사를 자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졸지에 가족의 밥상을 빼앗기고 인권의 막장으로 내몰린 시민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중죄인으로 여기고 강제 진압하려 한 것 자체가 큰 잘못이었다. 왜 경찰이 그처럼 무모하고 위험한 잘못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세밀한 수사와 재판이 필요하다.

용산 참사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은 농성자에 대한 과도한 판결이자 검찰의 기소내용에 대한 편파적 판결이라는 점에서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문제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판결에 따르면, 졸지에 생계의 터전을 잃게 된 사람들이 벌이는 정당한 저항이 모두 잘못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이 판결에 따르면, 부패와 폭력을 동원한 철거로 말미암아 졸지에 집을 잃고 가게를 잃게 된 사람들이 저항을 하는 것은 중범죄이지만, 경찰들이 자의적 판단에 의거해서 시위 진압 수칙을 무시하고 농성이나 시위를 강제진압해도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판결은, 빼앗으면 빼았기고, 쫓아내면 쫓겨가고, 진압하면 진압되라는 것이다. 용산 참사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다.

1960년대에 알제리의 정신과의사이자 해방운동가였던 프란츠 파농은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원제 : <검은 피부, 흰 가면>)이라는 책을 썼다. 프랑스를 비롯한 제국주의의 식민정책을 분석하고 해방운동의 과제를 제시한 이 책은 프랑스의 식민지인 알제리에서 알제리인은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이라고 설명한다. 오늘날 이 나라에서는 막대한 투기 이익을 노린 대규모 개발사업 때문에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이 도처에서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각종 폭력에 시달리다가 처참하게 목숨을 잃기도 한다. 막대한 투기 이익에 눈이 먼 사람들은 자기도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오히려 희생자들을 열심히 비난하고 모독한다. 용산 참사의 희생자와 동료들은 가족의 밥상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애쓴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죄인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망루로 몰아넣은 자들이다.

2009년 11월 2일 저녁 7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서울광장에서 '위령 시국 미사'를 열었했다. 경찰은 이 미사를 불허했다. 사제단은 '대한민국 경찰·검찰·법원은 자본 권력의 용역인가'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모두 여섯 개의 문단으로 되어 있는 이 시국선언문의 첫 문단과 끝 문단을 여기에 옮긴다.

사제단은 '국민 불복종을 선언할 결정적인 때'가 닥쳤다고 선언하고, '새로운 국가 공동체를 준비하는 일에 다 같이 신명을 내자'고 제안했다. 사제단의 제안은 낙담하고 불평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 스스로 희망을 만들고 희망이 되자는 것이다.

죽음을 부르는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 불의가 검은 강물처럼 넘실거리고, 죄악의 독버섯은 활짝 꽃을 피웠다. 권력자들의 추악한 거짓과 노골적인 탐욕이 갈수록 당당하고 뻔뻔스러워지는데 허다한 생명들은 무참히 시들어간다. 지난주 두 건의 재판 결과는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 발전에 백해무익한 정치집단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해 주었다. 국민의 보편적 권리를 위해 마련된 갖가지 권능을 특정 자본권력과 극소수를 위해서 그릇되게 남용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국민에게는 가혹한 철퇴를 휘두르고 있으니 도저히 정부라고 볼 수 없고 차라리 강도 집단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바야흐로 신앙과 양심의 이름으로 국민 불복종을 선언할 결정적인 때가 닥친 것이다. (…)

한편 오만과 탐욕의 괴물을 탄생시킨 것은 바로 국민이라는 점 또한 통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우리부터 욕심을 줄이고, 약자에게 겸손하며 공정과 원칙에 입각한 삶을 살지 않는 한 국가권력은 언제나 우리를 괴롭히고 핍박할 것이다. 힘든 때일수록 희망의 표징을 해석할 줄도 알아야 한다. 지난 4월에 이어 10월 28일 재보선에서도 한나라당이 연패하였다. 국민 대다수가 정부와 여당의 실체를 깨닫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특히 대학생들이 적극 나서서 분발했다는 점은 긍정적인 변화다. (…) 부디 불굴의 정신으로 정부의 탈선과 광기를 잠재우고 새로운 국가 공동체를 준비하는 일에 다 같이 신명을 내자. 군사독재의 흉악을 물리쳤던 우리의 저력을 기억하자.


하늘은 갈수록 높푸르고, 달은 갈수록 맑게 빛난다. 오래 전에 세종대왕이 노래했듯이 달은 하나지만 세상의 모든 강에 비친다. 제 아무리 검찰과 법원이 중죄인들을 희생자로 만들고 희생자들을 중죄인으로 만들더라도 사실은 사라지지 않으며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잘못된 판결은 결국 바로잡히게 된다. 세상을 지탱하고 작동하는 것은 결국 사실이고 진실이기 때문이다.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과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시는 모든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문규현 신부님이 어서 쾌차해서 깊은 각성의 기도를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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