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정보화 시대, 종이책의 추억"에서 못 다한 말이 많았다. (☞관련 기사 : <1984>의 예언은 현실이 되는가?)
평소 한 주제를 한 글에서 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온 나로서는 '속편'을 쓰는 데 부담감이 있었다. 그러나 사족일지 몰라도 정보화 시대, 왜 우리는 독서를 하고,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를 말하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속편을 쓰기로 했다. 부족한 글일지라도 헤아려 읽어주기를 부탁한다. <필자>
종이책이건, 전자책이건 책에는 한정이 없다. 인류가 책을 갖게 된 것은 전적으로 문자를 갖게 되었기 때문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수천 년, 수백 년 동안, 동서에 걸쳐 문자는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전통 시대 한 사회의 구성원은 문자 향유층과 비향유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문자 소유자들이 돈과 권력, 명예를 독차지하면서 그 사회의 지배층이 되었던 반면, 피지배층에게는 말과 노동력만이 주어질 뿐이었다. 그래서 역사는 승리자, 지배층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이치는 역사를 가진 나라와도 관련이 된다. 현재 지구상에는 200여 개 국가가 있지만 인류가 지구에 등장한 이래로 출현한 나라(공동체)는 수천, 수만 개가 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라진 나라, 또는 공동체의 수를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 다만 현재 남아 있는 4000여 가지 음성 언어를 통해 공동체를 추론할 뿐이다.
그렇다면 언어 공동체 중 역사를 가진 나라는 얼마나 될까? 이 질문은 문자 기록을 가진 나라와 연결이 된다. 문자 기록이 있을 때 비로소 역사를 갖게 되는 것이다. 현존하는 문자를 갖춘 언어는 기껏해야 70여 개에 불과하다. 한 때 문자 언어와 기록을 가졌고, 점령과 식민 과정에서 문자 기록은 남았더라도 문자 언어는 사라지고 마는 경우들도 있다. 만주족의 언어가 그 예라 할 수 있다.
한국만 해도 1443년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1446년 반포하기까지 사실상 말에 부합하는 문자를 갖지 못했다. 지배층은 한문자에 의존하여 살았다. 피지배층은 문자를 독점한 지배층이 전해주는 지식을 전달받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는 말이 생겼다. 그 말도 원래 목불식정(目不識丁)이나 어로불변(魚魯不辨)과 같은 한자말에서 유래했던 것으로 보인다. 피지배층이 문자를 알지 못하다보니, 통치자가 피지배층의 자유를 금지하거나 억압하는 공문을 게시해도 피지배층은 그 공문을 읽을 수 없어서 당하게 되는 일이 역사적으로 보면 비일비재했다.
아무튼 한글의 우수성은 말을 문자로 거의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데 있다. 그런데 그 우수성을 발휘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조선 시대 대부분의 공문서들은 한문으로 작성되어 민중들은 읽을 수 없었고, 훈민정음을 제대로 교육시켜주는 기관도 없어서 절대다수의 민중들은 훈민정음조차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일제 강점기, 공교육 기관에서는 일본말과 글을 사용함으로써 말과 문자의 불일치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왜 지배층은 문자를 통제한 것일까? 가장 간단하게 말하자면, 피지배층에게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서이다. 문자는 사물에 대한 해방적 기능을 갖고 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읽고 쓸 수 있는 의식이 허용되면 사람들은 '평등'함을 깨닫게 된다. 지배층이 피지배층에게 문자를 배우지 못하게 하고,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배우지 못하게 할 때, 피지배층은 지배층의, 여성들은 남성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런데 역사의 바퀴는 민주화 시대로 이행해 왔다. 예컨대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과거 왕의 지식을 부르주아의 지식으로 바뀌어 놓았다. 다시 말해 혁명을 통하여 왕이나 특권층이 독점했던 자유와 평등을 문자 교양을 갖춘 부르주아의 자유와 평등으로 확산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듯 과거 전제 군주 시대를 전복시키고 부르주아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부르주아만의 힘으로는 가능하지 않았다. 노동자, 농민, 빈민층, 여성의 힘이 절실했다. 그래서 부르주아는 민중들에게도 '만인 평등'의 자유와 평등의 진리를 전파하였다. 그렇게 했던 메커니즘이 대중 교육이었다. 그러나 부르주아는 승리한 후, 곧바로 한계의 문턱을 만들었다. '사유재산'과 '지식'을 가진 사람만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민중이나 여성에게는 기능적 직업과 양육과 가사를 위한 대중 교육만을 허용하도록 하였다.
오랫동안 지배층과 제국주의 일본 등은 왜 민중과 식민지 피억압 민족에게는 고등교육을 허용하지 않으려 했을까? 고등교육의 본질은 '인문' 교육과 그것에 기반을 둔 전문 교육이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논하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 근대 대학을 설립하지 않으려 했다. 민립대학운동이 일어나자 할 수 없이 제국주의 지식인을 만들기 위해 경성제국대학(서울대학교)을 선물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일본의 경성제국대학 출신자들은 오늘날에도 모교 방문을 위해 서울대학교를 방문하곤 한다.
1930년대 후반 일본 총독부식민지도 조선에 '개정 교육령'을 실시하여 학령 인구에게 초등교육의 의무화를 시도하였다. 덕분에 초등학생이 급속하게 늘어났다. 그러나 중요한 교육 내용은 상업이나 공업, 실업 교육과 일본왕과 일본에 충성하는 수신, 내선일체, 황국신민화 교육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인문 교육의 부재였다.
그렇다고 하여 인문계 학교나 대학 교육자체가 인문학 교육인지는 모르겠다. 21세기 한국의 대학은 높은 '취업률'만이 생존의 요건이 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 속에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교수나 대학생 스스로 인문학 교육을 반납하고, 취업 시 요망되는 필수 스펙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형편은 대학 도서관이나 공공 도서관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최근 도서관에서 인문학적 서적을 읽는 사람을 찾기란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실정이다. 오죽하면 한 학생이 도서관에서 철학이나 일반 교양 관련 서적을 읽으면, 다른 친구들이 우려의 얼굴로 쳐다보거나 신기한 동물로 여긴다고 고백하겠는가. 대학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회에서는 인문화의 붐 현상이 일고 있다. 어쩌면 대학생들과 대졸자들이 인문학을 반납하고 있는 사이에, 인문학은 사회적으로 유한 계층의 전유물로 되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민주화와 산업화 과정에 대학 인구가 급속히 늘어났다. 그 결과 서구의 1968년 세대, 한국의 386세대가 형성되어 각 사회의 민주화를 만들어 나갔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정규 강의 시간 교수들이 가르쳐 주지 않는 해방적 지식을 스스로 학습하여 억압적 질서에 눈을 떴다. 그들은 스스로 익힌 지식과 철학을 독재로부터의 민주화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자 했다. 그래서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을 통해 민주화의 성취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이래로 신자유주의 사조와 시장만능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오고 있다. 그런 사이 교육도 신자유주의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1990년대 대학 설립 자유화와 정원 자율화 정책을 추진하게 되자, 1980년대 대학생 규모에 비하여 2000년대 대학생 규모는 3배가 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고용 정책 속에서 연간 신규 고용 능력은 오히려 줄어, 연간 대학 졸업생의 정규직 취업률이 4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정부가 이런 상황을 낳게 되리라고 예측 못했는지 알 수 없다. 아무튼 정부 당국은 사교육 시장에게 무한한 수요자를 갖는 블루오션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신자유주의의 옹호자로 만들 수 있었다. 정부 당국자의 입장에서 금상첨화인 것은 대학생들이 학점과 취업 경쟁에 신경 쓰는 동안 비판적 인식을 기꺼이 버리게 할 수 있었다.
이제 대다수 대학생이나 지식인들은 취업과 성공, 건강을 위한 독서를 할 뿐이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조기 교육, 조기 영어 교육조차 미래 취업과 성공을 위한 지름길로 이해되고 있다. 다시 인문학은 지난 수백, 수천 년간 그랬듯이, 이제 다시 유한계층의 전유물이 되어 가고 있다.
정보화 시대, 국민의 대다수가 문맹을 벗고, 20대층의 80%가 대졸 또는 대학 재학생으로서 유식층이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상 세상과 인간의 진실을 깨닫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는 지식, 인간 억압의 본질을 꿰뚫고, 자유와 평등을 찾도록 하는 비판적·성찰적 지식을 스스로 반납하고 있지 않은가 묻고 싶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할지 모르지만, 더 많은 정보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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