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의 도시를 지나 바야모로 접어들었다. 밤 11시. 전날 묵었던 루이스 씨 집을 찾아갈까 했지만 포기한다. 차를 반납하기로 한 날은 이틀 남았다. 내일 하루 종일 달려 밤에는 마딴사스 쯤에 도착해 있어야 했다. 여력이 있는 한 가속기를 조금 더 밟기로 한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답은 금방 나왔다. 시에라마에스뜨라까지 오며 지나쳤던 라스 뚜나스(Las Tunas)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한다. 연일 이어지는 강행군이다. 까사 빠르띠꿀라르를 찾아 하룻밤을 묵었다.
지도를 잃어버렸다.
우리가 지도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다음날 아침 배낭을 차에 싣고 호기롭게 시동을 건 후였다. 낭패다. 전날 밤에 밥 먹었던 식당에 기증하고 온 게 유력했다. 까사 빠르띠꿀라르 주인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그런 자세한 도로지도는 이 동네에서 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무 지도나, 아무 지도나 구할 수 없을까요? 우체국에 가 보란다. 에? 일단 아주머니가 알려준 우체국에 갔다. 우체국 직원은 문방구에 가라고 알려준다. 다시 문방구에 갔다. 문방구 직원은 다른 문방구에 가보란다. 다른 문방구에 갔다. 아예 문을 닫았다. 땀을 펑펑 쏟아내고 있는 나를 안쓰러워한 청년 하나. 선글라스를 뒤에서 웃고 있는 이 멋쟁이 청년은 박스도 뜯지 않은 엘지TV를 들고 서 있었다. 도와줄 게 있느냐고 묻는다. 사정을 말하니 뜬금없이 '전화국'을 가보란다. 도대체 지도를 우체국이나 전화국에서 파는 것은 어느 나라 법이냐.
황당함을 감추고 이 청년을 따라 전화국을 찾았다. 지도 있나요? 자연스럽게 쿠바 지도 책자를 꺼내준다. 전화국에서는 지도 따위를 팔지 않아도 된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참는다. 책을 받아 펼쳐보니 쿠바 전국에 퍼져 있는 음식점과 까사 빠르띠꿀라르, 렌트카 지점, 호텔, 주유소 따위를 종합해 놓은 관광 안내 전화번호부다. 생긴 모양새와는 또 다르게 뒷부분에는 비교적 소상한 지도가 실려 있다. 가격은 겨우 0.7쎄우쎄. 재빨리 구입했지만 만족할 수 없다. 라스 뚜나스 시내를 빠져나가는 길에 들은 음식점에선 보다 자세한 도로 지도도 팔고 있었다. 지도는 두 개가 되었다. 물론 처음 우리가 가졌던 지도에 비하면 형편없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우리가 잃어버린 그 자세한 지도는 공항에서만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쿠바에서 도로지도가 필요하다면 공항 안내센터에서 미리 구입하는 게 좋을 것이다.
쿠바인들과 우리 사이의 친밀감은 딱 그만큼
아쉬운 대로 지도를 손에 넣고 다시 가속 패달을 밟아댔다. 까마구에이까지 가는 길에 간호사 세 명을 태웠다. 이제 이런 히치하이킹은 우리에게도 일상이 되었다. 이들도 외국인의 차를 얻어 타는 것이 낯설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얼마간은 경계하는 눈초리를 보인다. 그렇다. 우리는 이방인이다. 그것도 지구 반대편에서 온 낯선 동양인이다. 하지만 어떤 인연인지 몰라도,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운 도시를 지나며 30분 쯤은 같은 목적지를 갖는 임시 운명 공동체가 된 상황이다. 짧은 스페인어로 뭔가를 묻자 경계하듯 동그랗게 뜬 눈을 누그러뜨리며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친절하게 잘못된 문법을 지적해준다. 우린 멋쩍게 뒤통수를 긁었다.
사진을 찍어도 좋겠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경직된 표정을 짓는다.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던졌지만 어이없는 웃음을 몇 번 지을 뿐이다. 그래, 당신들과 나 사이의 친밀감은 딱 이 정도다. 사진에 담긴 그 표정, 딱 그 정도다. 여행자와 여행지의 친밀감, 그리고 경계심은 거기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지루하지만 나름대로 스릴 있는 곡예 주행을 하다가 간혹 차를 세우고 야자수를 찍곤 했다. 곳곳에 있는 사탕수수 밭 사이로 흰 연기를 뿜어내는 굴뚝이 보인다. 사탕수수 가공공장이다. 연기는 별로 달콤해 보이지 않는다.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는 농부들을 가득 태운 트럭이 지나다니고, 간혹 우리에게 손을 흔든다. 흰 소가 밭을 갈고 코끼리같은 트랙터는 휴식을 취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다가도 금방 멎는다.
라디오를 켜니 라디오 레벨데에서 살사 음악이 쏟아져나온다. 고속도로를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곱게 갠 주황색 물감이 골고루 펴 발라진 하늘에 쿠바 지도 모양의 구름이 떠 있다. 쿠바 구름이 붉게 물들어간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길을 찾고 있는데, 사거리가 나왔다. 그 때 전봇대에 붙어 있는 코딱지만한 표지판. AUTOPISTA. 하마터면 모르고 지나갈 뻔 했다. 이걸 보라고 붙여놓은 것이냐, 발견하라고 붙여놓은 것이냐. 투덜거리면서 핸들을 꺾었다.
고속도로에서 역주행하다.
고속도로 입구에 있는 허름한 매점에서 족발로 추정되는 고기가 빵 사이에 끼어 있는 정체불명의 샌드위치를 3 뻬소 나시오날(우리 돈 150원 정도)에 사서 우적우적 씹었다. 씹는 맛은 족발이었지만 향은 조금 더 느끼하다. 도로 근처에 있는 매점은 주로 달러 상점이지만 여긴 아니다. 1뻬소 나시오날(우리 돈 약 50원)에 주스도 한 잔 마셨다. 다시 기운을 차리고 고속도로를 접어들었다. 라디오에선 스위트 홈 알라바마(Sweet Home Alabama)가 찰랑거리며 쏟아져 나왔다. 오, 멋진데.
표지판만 없는 줄 알았더니 가로등도 없다. 물론 국도에도 마을이나 도시를 제외하면 가로등이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고속도로에 가로등이 없다는 사실이 공포스럽게 느껴진 것은 멀리서 전조등을 켜고 오는 자동차의 범퍼가 10초 후에 정확히 우리 범퍼와 키스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운전대를 황급히 꺾은 사건 이후였다. 세상에. 영화에서도 컴퓨터 그래픽으로만 가능하다고 하는 그 역주행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속도로 진입구간, 그중 오른쪽 차선이 공사중이었고, 따라서 중간중간 끊겨 있었던 탓이었다.
한마디로 일정 구간 왼쪽 차선을 사이좋게 나눠 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린 마주 오는 차들과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었다. 왼쪽 차선을 이용할 때 천국으로 빠지는 갈랫길을 조심하라는 표지판도, 아니, 그 어떤 비슷한 정보도 접할 수 없었다. 오, 흥미진진한데. 이 모든 것을 경험으로 알아내야 한다니. 그렇지, 쿠바인들은 많은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지. 경험으로 쌓은 신념은 이론으로 쌓은 신념보다 강하다.
다행히 공사 구간을 지나자 중앙선이 흐릿하게 보였고, 그 오른편에 우리 차를 배치할 수 있었다. 겨우 안심하고 있는데, 시속 12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리고 있는 우리 차 옆으로 마차가 털털거리며 지나가는 것을 기어이 보고야 말았다. 혹시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우린 가로등이 가끔 발견되는 한밤중의 고속도로 위에 있다.
일단 고속도로를 타자 목적지는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우린 다시 산따 끌라라에 도착했다.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고 다시 아토스의 채받이를 후려 갈겼다. 하구에이 그란데(Jaguey Grande)에 도착한 것은 밤 9시 무렵이었다.
피곤한 눈에 아이스크림 광고가 들어왔다. 머릿속이 시큰할 정도로 달달한 네슬레 사보이 아이스크림. 혀가 얼얼할 정도로 차가운 감촉. 피곤할 때는 차고 단 것이 최고라는 근거없는 이론을 떠올리며 가게 문을 열었다. 하지만 점원은 우릴 본체만체 한다. 한 곳에 몰두하느라 정신없는 점원의 시선을 따라가니 TV속에는 야구잔치가 한바탕 벌어지고 있었다. 오늘은 쿠바 내셔널 시리즈 플레이오프 첫 날. 점원에게 물어보니 산따 끌라라 연고 팀인 비야 끌라라(Villa Clara, 주 이름이기도 하다)와 시에고 데 아빌라(Ciego de Avila)가 맞붙고 있다고 한다. 자신은 비야 끌라라 팬이라고 소개했다. 누가 물어봤나? 여하튼 그 유명한 쿠바 내셔널 야구 시리즈가 우리가 방금 지나온 산따 끌라라의 '아우구스또 세사르 산디노 스타디움(stadium Augusto Cesar Sandino)'열리고 있었던 거다.
쿠바, 그리고 야구
쿠바인들은 야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가히 국민 스포츠라 할 만 하다. 그 자부심만큼 실력도 대단하다. 관중석에는 그다지 사람이 많지 않지만, 축제를 즐기듯 경기를 구경하고 있다. 경찰들이 경기장과 관중 사이에 서서 이들을 통제하지만, 쿠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즐길 것은 즐긴다. 응원하는 문화는 어느 나라나 비슷한가 보다. 북을 때리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구호를 쏟아내고 모두가 그걸 따라서 부르짖는다. 이날 비야 끌라라는 시에고 데 아빌라를 9대 4로 눌렀다. 점원 아저씨, 기분 째졌겠다.
산띠아고 데 쿠바(Santiago de Cuba)와 삐나르 델 리오(Pinar del Rio), 그리고 비야 끌라라 세팀은 전통의 강호이자 각각 동부, 서부, 중부를 대표하는 라이벌이다. 한국 프로팀의 인지도와 비교하고 싶지만, 돌 날아올까 봐 못하겠다. 한국의 야구팬들은 무섭다. 쿠바 내셔널 시리즈는 동부리그와 서부리그, 각각 8개 팀으로 나눠져 있다. 총 16개 팀이다. 매해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각 팀당 90 경기씩 리그전을 벌이고 승률이 높은 8개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비야 끌라라의 열혈 팬인 이 점원의 말로는 이번에 비야 끌라라의 전력이 만만치 않아 올 챔피온 결정전에서 삐나르 델 리오를 제치고 산띠아고 데 쿠바와 맞붙게 될 거라고 장담했다. 결과는? 한국에 돌아온 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산띠아고 데 쿠바가 결승에 오른 비야 끌라라를 누르고 작년에 이어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점원 아저씨, 아쉬웠겠다.
미국에는 '쿠바 야구 투어'라는 상품도 있다. 아마추어 팀들이 쿠바를 방문해 관광도 즐기고 쿠바 팀과 친선 경기도 벌이는 상품이다. 미국이 쿠바 경제를 봉쇄하고 있지만 야구에 미친 미국인들의 취향을 막아설 만큼은 아닌가 보다. 생각해보면 쿠바출신 메이저리거들이 꽤 많기도 했다. 미국의 야구팬들에게 쿠바는 전적으로 '악의 제국'만은 아닌 듯 하다.
길 가르쳐주고 1쎄우쎄
우리는 마딴사스(Matanzas)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벗어나야 했다. 하구에이 그란데로 들어가서 사탕수수밭이 넓게 점령하고 있는 사이로 난 좁은 국도를 타야 한다. 하구에이 그란데에서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인데 사람들이 선술집에 옹기종기 모여 음악을 틀어놓고 왁자글왁자글 떠들고 있다. 이 사람들 내일 일 안하나? 카운터에 들어갔다. 맥주가 눈 앞에 어른거렸으나 참는다. 호베야노스(Jovellanos)로 갈 건데 길을 잘 몰라서요.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한 청년이 우리에게 길을 자세히 알려준다. 그리고 돌아서는데 이번엔 거나하게 취해 몸도 가누지 못하는 아저씨 한 분이 우릴 붙잡고 쿠바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를 술술 풀어낸다. 하하하, 호의는 고맙지만 우린 당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요. 주변의 친구들이 그를 말리며 우리에게 작별인사 한다. 촉광 낮은 불 빛 아래였지만 유쾌한 표정들이다.
그 이상한 도시를 빠져나와 계속해서 차를 몰았다. 가로등은 없다. 주변엔 다른 차가 보이지 않는다. 껑충한 사탕수수가 잎을 비비며 스산한 소리를 낸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느낌이 든 것은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샛길을 발견한 후부터다. 혼란스러웠다. 샛길로 들어섰다. 한참을 달리니 길이 끊어져 있고 눈 앞에 사탕수수밭이 펼쳐져 있다. 어둠속에서 방향감각은 가출해버렸다. 도깨비한테 홀린 걸까? 이렇게 헤매다간 다음 날 해외 토픽에 나올 것만 같다. "쿠바 사탕수수 농장에서 미스테리 서클 발견"
밭에서 나와 차를 돌렸다. 가속기를 밟고 있는데 멀리서 불빛이 보인다. 도깨비다. 도깨비가 나타난 것이다. 쿠바에서 우리 앞에 도깨비가 나타난 것이다. 쿠바에서 우릴 홀리기 위해 도깨비가 나타난 것이다. 불빛은 점점 가까워졌다. 드디어 미지와 조우하려는 찰나 불빛이 말을 걸었다. 여기서 뭐하세요? 자전거가 멈추자 불빛도 멈췄다. 스무 살도 안돼 보이는 앳된 청년이 말을 걸었다. 이 친구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 준단다. 그러더니 허파가 터져라 자전거 패달을 밟기 시작했다. 우리 차는 하품을 하며 느릿하게 초고속 자전거 뒤를 따랐다. 10분이 조금 넘었을까? 자전거가 멈췄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 되어 숨을 헐떡이고 있는 청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펜을 달라고 한다. 펜과 수첩을 주니 길 안내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갈 수 없고, 대신 이렇게 가시면 되요"
"고맙습니다" 우리가 감사의 말을 전했지만 그 친구는 빙글빙글 웃고 있을 뿐이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래도 가지 않는다. 그러더니 입을 열었다. "당신들을 위해 나는 최선을 다했답니다" 하고 자찬을 늘어놓는다. 아하. 뭔 말인지 알겠다. 우린 주머니에서 1쎄우쎄짜리 동전을 꺼내 청년에게 사례했다. 그러자 그 친구 얼굴이 환해지며 방금 그려준 지도를 뺏더니 더 자세하게 수정 보완해준다. 뭐야, 이건. 여하튼 쿠바판 청년 김정호의 도움으로 우리는 겨우 길을 찾아내 호베야노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마탄사스까지 가면 된다. 시간은 어느덧 12시가 넘었다. 호베야노스에서 마탄사스 방향으로 간다는 아주머니 한 분을 태워 차를 몰았다. 이 시간에 어딜 가려고 합니까? 친척집에 놀러왔다가 집에 들어가는 길이라 한다. 내일은 일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딴사스에서 우연히 만난 '애니깽' 할아버지
마딴사스에 도착하자 시계는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많이도 왔다. 하루만에 600킬로미터를 달려온 것이다. 극심한 피로가 몰려오고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거리엔 사람이 별로 없다. 간신히 물어 식당을 찾았다. 식당 주인에게 근처 까사 빠르띠꿀라르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하니 흔쾌히 동행해준다. '빅토르 & 글로리아'라는 이름의 여관이다. 새벽 두시가 다 되었다. 문을 두드리자 한껏 졸린 목소리가 들린다. "방을 찾고 있답니다" 우리가 외치자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내다 보는 이가 있다. 족히 예순 다섯은 넘어보이는 동양인 할아버지다. "지금은 방이 없고, 대신 우리 아들 집을 내 소개해 드리리다" 문을 닫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안내인에게 물었다. "치노(중국인)?" 안내인이 답한다. "노, 꼬레아노(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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