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가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자 이충연 씨와 철거민 김모 씨가 피고인석을 박차고 일어났다. 재판부의 판결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 재판부는 "듣기 싫다면 나가도 좋다"며 이들에게 퇴장을 명령했다.
재판이 진행된 지난 3월부터 검찰의 수사 기록 3000쪽 비공개로 파행을 거듭한 용산 참사 재판이 마지막 최종 선고 공판도 파행으로 마무리됐다. 피고인이 선고를 받기도 전에 퇴장하는가 하면 피고인 변호사가 판결 도중 법정을 박차고 나왔다.
방청석에서는 "썩은 정권의 나팔수"라며 "수사 기록 3000쪽을 공개하라, 이게 법인가"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결국 방청객 한 명이 '법정소란죄'로 감치되는 일도 벌어졌다.
▲ 재판 선고가 끝난 직후 용산 범대위는 기자회견을 열고 "철거민은 무죄"라고 주장했다. ⓒ프레시안 |
"정치적 재판이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28일 진행된 용산 참사 최종 선고에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한양석)는 철거민 9명에게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기소한 내용을 모두 받아들인 것. 적어도 검찰이 기소한 내용 중 특수공무집행방해의 '치사' 죄는 무죄로 판정될 줄 알았던 변호인단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피고인 변호인단 김형태 변호사가 재판 도중 재판정을 박차고 나온 이유다.
김형태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정치적 재판"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순수 형사 재판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사건은 99% 무죄를 받아야 한다"며 "치사 부분에 관련해서 모든 경찰은 화염병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는데 결국 정치적 재판이 이것을 유죄롤 판결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치 재판은 5공과 6공 때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며 "20년 후엔 무죄가 입증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김형태 변호사는 "기본이 안 돼 있는 재판이기에 항소할 가치가 있는지 판단도 잘 안 된다"며 "기득권의 편에 선 사법부를 국민이 이젠 어떻게 기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재판부가 검찰 준 원고를 읽어주는 것 같다"
이번 판결을 지켜본 용산 참사 유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이충연 씨의 부인 정영신 씨는 재판 내내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흘렸다. 이충연 씨의 어머니이자 고 이상림 씨의 부인 전재숙 씨는 재판부의 최종 선고에 분을 참지 못하고 "이게 무슨 재판이냐"며 연신 욕설을 퍼부으며 재판정을 떠나지 못했다.
▲ 전재숙 씨가 선고 결과에 대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오열하고 있다. ⓒ프레시안 |
이충연 씨의 형인 이성연 씨는 재판부의 판결문을 두고 "검찰이 준 원고를 읽어주는 것 같다"며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원망스럽다"고 분노를 나타냈다. 그는 "이 정권에서는 진실이 이렇게 왜곡되는 듯하다"며 "사회적 약자인 것이 한스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명박정권용산철거민살인진압범국민대책위원회'는 선고 직후 서울중앙지법 2층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가 사법 정의를 포기했다"며 강력 비판했다. 이들은 "정치적 중압감으로 인해 재판부가 올바른 판단을 하지 않을까 고민도 했는데 결국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며 "재판부는 정의보다는 정치권력의 힘을 택했다"고 평가했다.
범대위는 "정부와 여당, 검찰, 보수 언론에다 이제 사법부마저 한 통속이 되어 용산 참사 진실을 왜곡하고 덮으려 한다"며 "그렇다고 계속 진실이 감춰질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수사 기록 3000쪽 없이 진행된 반쪽 공판을 통해 어느 정도 진실이 밝혀진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며 "이후 항소심에서 용산 참사의 궁극적인 책임자들을 피고인석에 세워 진실을 밝혀 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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