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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정책 권고안'…단기 상황논리론 허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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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정책 권고안'…단기 상황논리론 허물 수 없다

[인권 NAP 권고안 뜯어보기 1] 어떻게 왜 만들어졌나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9일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인권 NAP) 권고안'을 발표한 뒤 이에 대한 찬반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예를 들어 노사관계에서 사용자 입장을 대변하는 경영자단체인 경총은 성명을 통해 "노동시장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지극히 이상론적인 '노동인권'을 내세워 산업현장에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한 반면, 한국노총은 "경제성장 과정에서 소외되어 온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와 사회적 불평등 해소에 기여할 것"이라고 환영하는 논평을 내놓았다.

언론에서도 "세금만 축내는 '무국적 인권위'의 잠꼬대"(〈조선일보〉 사설 제목), "'헌법 상처내기' 밥 먹듯 하는 국가인권위"(〈동아일보〉 사설 제목)라는 등 격렬한 반대의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소중한 권고"(〈경향신문〉 사설 제목)라고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다.

여하튼 찬반논란이 뜨겁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인권 NAP 권고안의 내용이 인권 문제와 관련된 우리 사회의 민감한 부분들을 건드리고 있다는 뜻이다. 인권 NAP 권고안은 왜 만들어졌고, 그 의미와 내용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법제화되는 것인가 등을 몇 차례의 시리즈 기사로 살펴본다. 〈편집자〉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조영황)가 9일 발표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인권 NAP, National Action Plans for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Human Rights)' 권고안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인권의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다.

총 3부 19장으로 구성된 인권 NAP 권고안은 사회적 취약계층인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난민, 여성, 시설생활인, 성적소수자 등의 인권 개선방안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자유권과 사회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까지 내놓고 있다.

한마디로 2006년 1월 현재 우리 사회 각 부문에서 제기될 수 있는, 혹은 이미 발생하고 있는 인권 관련 문제들에 대해 인권 NAP 권고안은 상당부분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방대한 내용이 담긴 인권 NAP 권고안은 어떤 취지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을까?

***인권 NAP가 만들어진 배경과 취지**

인권 NAP 권고안이 나오는 데 가장 직접적인 배경이자 이유가 된 것은 국제사회의 요구였다. 지난 2001년 5월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는 우리 정부에 인권 NAP 수립 진행상황에 대해 올해 6월 30일까지 보고하라고 권고했다.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의 이같은 권고는 1993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세계인권회의에서 참가국들이 만장일치로 결의한 '비엔나 선언'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비엔나 선언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참가국들이 각각 국가인권기구를 설립하고 인권NAP을 수립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정부도 물론 이 선언에 동참했다.

인권위는 2001년에 출범한 뒤 정부를 향해 비엔나 선언에 따라 조속히 인권 NAP을 수립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 정부가 국제기구와 맺은 약속을 이행하는 것 자체가 중요할 뿐 아니라 사회 각 부문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인권정책 수립이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판단에서였다.

박병수 인권위 전문위원은 "비엔나 선언이 인권 NAP 권고안 수립에 중요한 영향을 준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도 우리나라가 앞으로 인권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총체적인 인권정책 수립이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판단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인권단체 및 정부부처와의 협의 거쳐**

인권 NAP 권고안을 만드는 실무작업은 2003년 10월 국무조정실과 관련 정부부처 간 협의에 따라 인권 NAP 권고안을 작성할 기관으로 인권위가 지명된 이후 본격화됐다.

인권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인권 NAP 권고안 작성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인권과 관련된 국내외 학술논문, 정부 연구기관들의 각종 보고서, 인권단체들의 자료집 등이 우선적으로 수집되고 검토됐다.

그뿐만 아니라 인권위는 권고안 내용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의 기관이나 연구자에게 연구용역을 맡기기도 했다. 인권 NAP 권고안의 바탕이 된 연구용역 발주 건수는 총 26건에 달했다.

권고안 작성 과정에서 인권위가 관련 정부부처와의 협의에 앞서 인권단체 및 사회단체들의 의견을 먼저 수렴하는 절차를 밟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에 대해 인권위 측은 사회 각 영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인권·사회단체들의 전문성을 최대한 존중하고 활용하겠다는 의지의 발로였다고 설명했다.

박병수 전문위원은 "인권단체의 전문성은 존중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며 "특히 인권 NAP 권고안에 담을 의제를 발굴하는 데 인권·사회단체들의 의견이 훌륭한 조언이 됐다"고 말했다.

권고안 수립 과정에서 마지막 절차는 관련 정부부처와의 협의였다. 인권 NAP 권고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입법이나 정부정책을 거쳐야 하는 만큼 정부부처와의 협의는 인권 NAP 권고안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11개 부문 선정, 어떻게 했나?**

한편 이번 인권 NAP 권고안에 어떤 부문들을 포함시킬 것인가가 권고안 마련 과정에서 인권위가 가장 고심했던 대목이었다. 9일 발표된 권고안을 보면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난민, 여성, 아동·청소년, 노인, 병력자, 군인/전·의경, 시설생활인, 성적소수자, 새터민(탈북자) 등 모두 11개 부문이 선정돼 있다.

인권위는 권고안에 담을 부문을 선정하기에 앞서 세 가지 기준을 세웠다. 그것은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정부가 당장 앞으로 5년 간 집중해야 하는 분야 △긴급한 구제가 필요한 분야 △당사자 스스로는 의제설정이 어려운 분야였다.

이같은 기준에 따라 인권위는 모두 11개 부문을 선정했다. 그러나 11개 부문이 동시에 일괄적으로 선정된 것은 아니었다. 인권위가 기초조사를 벌이는 단계에서 발굴된 부문도 있고, 관련 정부부처와의 협의가 끝난 뒤에 인권위의 내부 회의 과정에서 새롭게 추가된 부문도 있다고 한다.

박병수 전문위원은 "시설생활인이나 새터민 같은 경우가 바로 최종적인 검토작업 단계에서 추가된 부문"이라고 귀띔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

인권 NAP 권고안은 작업 착수 후 3년 만에 수립됐지만, 여전히 '권고안'에 불과하다. 이것이 최종적인 인권 NAP로 확정되기까지는 아직도 적지 않은 과정이 남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권위의 인권 NAP 권고안 발표는 막 걸음마를 뗀 수준에 불과하다.

9일 발표된 권고안은 바로 그 다음날 청와대와 국무총리실로 보내졌다. 정부는 우선 인권 NAP 수립절차를 확정하고, 이 작업을 담당할 조정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조정기구는 국무조정실이 될 수도 있고, 특정 주무부처가 지정돼 그 부처를 중심으로 작업이 진행될 수도 있다.

인권위의 권고안은 정부부처 간 논의 혹은 각 부처별 논의에서 수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당장 인권위의 권고안이 발표되자마자 일부 정부부처들은 "이상적이고 현실성이 없다"면서 권고안을 폄하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이런 정부쪽 반응에 대해 가타부타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인권 NAP 권고안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보호를 국내에서도 실현하려는 것이자 우리나라의 인권 현실을 국제기준에 근접하게 끌어올리려는 것이므로 단기적 상황논리로 그 타당성을 허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동안 인권위가 낸 각종 권고에 대해 관련 정부부처가 처음에는 반발하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대부분 수용하지 않았느냐고 인권위 사람들은 되레 반문한다.

박병수 전문위원은 "인권위의 권고안이 나오면 대개 정부 내에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강하게 이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인권위의 권고는 미래 지향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 사회가 성숙해지만 그런 반발도 수그러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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