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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외고 폐지'…'결단' 혹은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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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나라당의 '외고 폐지'…'결단' 혹은 '꼼수'?

[분석] 외국어고 과연 폐지할 수 있나

외국어고를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외고의 부작용을 지적하며 폐지 내지 전환 등 개편을 주장하면서부터 논란이 시작됐다.

외고 교장들이 "외고 폐지는 마녀사냥"이라며 반발하자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외고는 분명히 마녀"라며 맞받아쳤다. 정 의원은 오는 21일경 외고를 자율형사립고 또는 자율학교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나온 특목고 조항 자체를 폐지하고, 특목고를 모두 특성화고교로 전환한 뒤 자율학교 또는 자율형사립고로 운영할 수 있게 한다는 게 준비 중인 개정안의 핵심이다.

이런 정 의원의 행보에 정작 교육과학기술부는 "연구 용역을 맡길 테니 그 결과를 보자"며 한 발 빼는 모습이다. 이주호 교과부 1차관은 지난 19일 "자율형사립고로 전환된다 해도 외고라는 이름은 유지되며 단지 학교의 형태가 바뀌는 것"이라며 '폐지설'을 진화하고 나서기도 했다. 대체 어떻게 되는걸까?

외고, 정말 폐지될까?

사실 외고 폐지는 진보적인 교육 단체들이 줄곧 요구했던 사안이다. 2007년 김포외고 시험지 유출 사건이 불거지면서 외고의 부작용을 우려하며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러나 이런 지적과는 반대로 외고는 교육 당국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았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고교 다양화, 영어 몰입 교육, 대입 자율화가 강조되면서 외고의 주가는 훌쩍 뛰었다. 강원외고, 울산외고 등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개교를 앞둔 외고도 많다.

한나라당은 수월성과 영재 교육을 중시하면서 외고를 가장 적극적으로 밀어줬다. 노무현 정부 당시 여당을 중심으로 외고 폐지론이 고개를 들었을 때 한나라당은 필사적으로 반대했다.

이 때문에 이제 와서 한나라당이 외고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난 4월 재·보궐선거 전 '사교육과의 전쟁'을 들고 나온데 이어 10월 재보선을 앞두고 중산층의 표심을 잡으려는 여론전의 일환이 아니냐는 것.

더군다나 전국 30여 개 외고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서울 대원외고를 비롯해 경기외고, 대일외고, 이화여자외고 등은 즉각 "영어 듣기 시험을 없애겠다"며 폐지론에 맞섰다. 일부 외고 교장은 "만약 정말로 외고가 폐지되는 사태가 빚어진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법적 대응 방침까지도 시사했다.

자사고로 전환하면 외고 문제 해결된다?

▲ 지난 9월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열린 '특목고 내신 합격선 예측 및 지원 전략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들. ⓒ뉴시스
현재 논의되는 외고 개편의 핵심은 외고의 학생 선발권을 제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두언 의원이 언급한 자사고 전환은 사실상 외고의 학생 선발권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각 지자체에서 인가를 받은 자율형사립고는 대부분 내신 성적 상위 50% 등 최저 기준을 적용한 뒤, 이들 학생 가운데 추첨에 따라 선발한다. 서울을 제외한 지역의 경우 지원과 추첨이 아닌 별도의 선발 방식을 적용하기도 한다.

또 사회적 배려 대상자 20% 선발이 의무로 규정돼 있다. 외고가 자사고로 전환될 경우 단일 학교 선발 고사를 치르지 못하게 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러나 자율형사립고는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의 50%만 이수하고, 나머지 교육 과정은 학교가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이에 따라 올해 자율고로 지정된 고교 25곳 중 18곳이 교과 과정에 영어와 수학을 집중 편성하는 등 벌써부터 입시 경쟁 과열이 우려되고 있다. 이는 외고의 현재 문제점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더군다나 등록금에 사실상 제한이 없기 때문에 '귀족 학교'로 변질될 것이라는 지적이 일찍부터 나왔다.

사교육없는세상의 정원일 간사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일단 자사고의 현재 상황으로 볼 땐 특목고보다는 사교육 완화 효과가 있겠지만, 법에서는 자사고의 지필 고사를 제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사고의 수업료가 평균 세 배 이상 비싼 상황에서 지금 외고가 가지고 있는 지역적·사회 계층적 논란에서 자유로울 순 없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법을 통해 학생 선발과 등록금과 같은 부분이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는 이상 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고 폐지? 외고 정상화?

폐지론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커지자 정두언 의원은 "(나의 주장은) 외고를 폐지하자는 말이 전혀 아니다"라며 "외고를 원래 목적대로 운영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현재 추진하는 개정안은 입시 학원으로 변질된 외고가 본래 설립 목적인 외국어 교육에 충실하도록 '정상화'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도 일치한다. 전교조는 지난 19일 논평에서 "우리는 외국어 영재를 발굴하고, 외국어에 능력 있는 학생을 길러야 한다는데 반대하지 않는다"며 "외고가 설립 취지에 맞는 외고로서의 기능을 한다면 외고를 반대할 이유도 없다"고 밝혔다. 전교조는 "하지만 외고는 이미 사교육 없이는 갈 수 없는 학교, 입시 부정, 타계열 진학, 특정 집단의 독점화 등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음을 수많은 자료들이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수차례의 토론회 끝에 외고 정상화를 위한 다섯 가지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특수 목적 외국어'로 간주될 수 없는 영어반 폐지 △1차 중학교 외국어 능력 관련 내신 서류 전형 적격자 선발-2차 적격 후보 중 추첨 △외고 시험 전형 중 특별 전형 삭제 △대학의 외고에 대한 부당한 우대 전형 비율 10% 이하 축소 △특목고가 아닌 특성화고 전환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같은 '공통의 희망'은 외고를 자사고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고로 전환해야 실현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는 "(이대로라면) 외고의 정상화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지난 정부부터 정상화 논의는 계속돼 왔지만 외고들이 정신 못 차리고 있는 건 매한가지"라며 "특목고, 특성화고 등으로 고교를 나누지 않고 일반고교에서 보편적인 보통 교육이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실현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교육, 줄어들까?

그렇다면, 현재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외고가 자율형사립고 또는 자율학교로 바뀔 경우 사교육은 줄어들까? 이는 외고와 사교육 업체 등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면서 여당이 '외고 개혁'을 외치는 핵심 이유다.

송경원 진보신당 정책연구위원은 "학생들이 입시를 준비하는 패턴을 보면 결코 외고와 자사고를 따로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영어 시험을 기본으로 모든 학교의 입시를 준비하다 성적에 따라 학교를 결정하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사고가 내신을 반영하다고 하면 내신 사교육이 계속될 것"이라며 "자사고의 선발 방향이 점차 성적 우수자를 뽑는 식으로 바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사고가 많아지면 같은 자사고 중에서도 서열이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2012학년도까지 전국에 자율형사립고를 100개까지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서울 지역은 이미 지자체 내 학생을 선발한다는 방침을 깨고 자사고가 없는 다른 시·도 중학생의 지원을 허용했다.

뿐만 아니라 '풍선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일반학교가 아닌 '특수목적고'를 원하는 학부모들의 수요는 여전한 가운데 과학고·영재학교·국제고·자립형사립고·외국인학교·조기 유학 등에 외고 수요가 몰릴 수 있는 것이다.

반면 교육평론가 이범 씨는 "자사고 전환은 사교육비 절감을 위한 괜찮은 방법 중 하나일 수 있다"며 "추첨은 성적순 선발과 비교해 확실히 사교육 유발 효과가 상당히 적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 근본적인 해법은 외고 등 특목고의 설립 명분 자체를 없애는 방향으로 교육 과정을 개편하는 일"이라며 "무학년제, 학점제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일반학교에서 다양한 교육 수요를 반영하고 수월성 교육을 선택할 수 있도록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과부는 교육계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늦어도 올 연말까지는 입장을 내놓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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