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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의 예언은 현실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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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의 예언은 현실이 되는가?

[기고] 정보화 사회, 종이책의 추억

2000년대 초반, 흥행에 꽤 성공한 영화 중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있다. 영화의 배경은 2054년의 미래 도시, 워싱턴이다. 영화에는 미래와 관련된 숱한 상상력과 정보들로 가득차 있다. 미래적 상상력 가운데 내 시선을 사로잡은 장면 중 하나가 '디지털' 신문이었다. 지금 막 벌어진 사건들이 모든 곳에 설치된 온라인 CCTV망을 통하여 뉴스로 만들어져 디지털 신문 위에 활자화되어 나오고 있다. 마침내 '종이'가 사라졌다.

문득 종이가 사라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 한 편이 떠오른다. 1949년에 발표되어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자유의 소중함을 시사하였던 소설로 알려진 조지 오웰의 <1984년>이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텔레스크린(Telescreen)을 통해 세상의 정보를 얻고, 즐거움을 얻고 사람과 소통한다. 또한 사람들은 텔레스크린을 통해 빅브라더(Big Brother)에게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면서 그걸 당연시 하면 살아가고 있다.

텔레스크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굳이 기억하고 기록할 필요가 없다. 필요한 모든 정보를 빅브라더가 텔레스크린을 통해 다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뭔가를 읽고 잡다한 생각은커녕 고민도 할 필요도 없다. 빅브라더의 세상에서 종이나 종이책은 사라진 지 오래다. 종이나 펜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일이다. 책을 읽는 내내 종이책과 펜이 사라지고 자유롭고 비판적 상상력을 펼칠 수 없는 세상이 두려워 졌다. '결코 이런 세상은 있을 수 없을 거야' 혼잣말을 했던 것 같다.

종이와 활자는 근대 문명의 견인차이다. 종이가 활자를 만나, 왕과 귀족의 독점물이었던 정보와 지식이 사회적으로 보급될 수 있었다. 서구에서 시민혁명의 분위기가 들끓던 무렵 세상 사람들에게 로크나 루소와 같은 자유주의자들의 자유와 평등의 정신을 확산시킬 수 있었던 것도 종이책, 종이신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일제 강점기나 독재 시절 청년들은 비밀리에 독서회를 열어 책을 통해 독립과 자유의 꿈을 키웠다. 소위 종이책은 민주주의의 원동력이었다.

▲ <1984>(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프레시안
21세기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서 이 시대가 <1984년>과 같은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시내 곳곳에는 거대한 전광판에 광고와 뉴스, 정보가 흘러나오고 있다. 지하철을 타면 구석에 부착된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시킨 사람들, 휴대폰 단말기를 통해 오락게임, 드라마, 쇼 등에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소설이나 교양서적을 읽는 사람을 찾기란 가물에 콩나듯 만나기 어렵다. 심지어 종이신문을 읽는 사람도 찾기 어렵다. 어렵게 찾으면 광고와 연예가 뉴스로 넘쳐나고 잇는 무가지 신문을 읽고 있다. 편리함과 쾌락이 널려 있다.

사람의 지식이 진화해온 것처럼 '책'도 진화해 왔다. 최근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전자책은 정보화 시대의 자연스런 산물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전자책을 읽는 동안 나는 뭔가 잃어버리는 것 같다. 보통 종이책을 읽는 동안, 저절로 동서고금으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있다. 때로는 저자와 논쟁도 하고, 또 때로는 연상되는 것을 기록하기도 하고 인용하고 싶은 부분에 밑줄 '쫙' 치기도 한다. 독서삼매경에 빠질 때면 '나'는 사라진다.

그러나 전자책을 읽으면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입을 반쯤 벌린 채 그저 쳐다볼 뿐이다. 더욱이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수많은 정보는 사고력을 정지시킨다. 고민스럽게 종이책을 일일이 고르고 넘기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에 길들여 질수록, 사람의 지적 능력은 퇴보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문맹률 '0' 시대에 사실상의 문자 해독률은 더 떨어지고 있고, 비판적 지성은 둔화되어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손에서 책이 떨어지지 않던 시절은 추억이 되었는가? 종이책이 필요 없는 <1984년>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를 정보화 시대에 낮은 목소리로 외쳐본다. "독서는 힘이다."

(이 글은 <한성대신문> 2009년 10월 12일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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