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만하다. 세종시 성격을 수정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하고, 법을 개정하려면 60여명에 달하는 박근혜계 의원들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세종시에서 행정도시 성격을 아예 지워버리는 방안은 말할 것도 없고, 9부2처2청이 아니라 적으면 한개, 많아야 5개 부처만 옮기는 방안을 추진해도 그렇다. 이 경우에도 법 개정은 불가피하다. '총리실을 이전 대상에서 제외하면 행정도시 성격을 잃어버리므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이석연 법제처장의 해석에 따르면 그렇다. 정부 고시로 대충 넘어갈 수가 없다.
설령 법 개정 절차를 피하더라도 박근혜 전 대표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정반대의 상황, 즉 박근혜 전 대표가 세종시 수정을 대놓고 반대하는 장면을 연출하면 정국 지형이 바뀐다. 정부와 여당은 세종시 수정 추진력을 잃고 야당은 '먹잇감'을 얻는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는 협조할 수 없다. 자신의 정치 입지 때문에 도와줄 수가 없다.
박근혜 전 대표는 사선으로 대권가도를 뚫어야 한다. 영남에서 출발해 충청에서 중간점을 찍고 수도권에 안착하는 경로를 밟아야 한다. 이러려면 끌어안아야 한다. 충청 민심을 적극 껴안아야 한다. 지난 7월 몽골 방문 때 기자들에게 했던 말, 즉 "엄연한 약속이니까 지켜야 한다"는 말을 두 번 세 번 되읊어야 한다.
▲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달 16일 청와대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
헌데 곤혹스럽다. 이렇게 하면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과속'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세종시 수정 반대를 공식 표명하면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 그리고 이명박계와 정면 대결을 벌여야 한다. 지방선거 전후로 잡았던 정치행보 본격화 시점을 반 년 가까이 앞당겨 대회전을 치러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힘이, 여권 주류의 힘이 펄펄 살아있을 때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각을 세울수록 정운찬 총리의 위상이 올라간다. '세종시 해결사'를 자처하는 정운찬 총리를 자신과 대척점에 선 사람으로 승격시키면서 대권 경쟁구도를 조기에 가시화시킨다.
달리 방법이 없다. '도 아니면 모'를 작정하지 않는 한 박근혜 전 대표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개나 걸이나' 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법 개정을 통한 정면돌파를 선택하면 미디어법 처리 때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중재자'를 자임하면서 정부의 수정 의지를 받듦과 동시에 충청의 섭섭한 마음을 달래는 것이다. '수정'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되 '보완'의 폭을 최대한 넓히는 것이다.
정부가 도와주면 금상첨화다. 법제처장의 유권해석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법 개정이 아니라 고시로 밀어붙여주면 한결 쉬워진다. 야당이 법리 다툼을 벌일 게 분명하니까 잠깐 목소리 높였다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려보자고 하면 된다. 일단 헌재 결정을 기다리면서 세종시에 더 많은 기관과 업체가 입주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호소하면 된다.
하지만 이 또한 문제다. '미디어법 중재자'를 자처했건만 '기회주의자'로 인식됐던 그 때의 악몽이 재연될지 모른다. 오로지 '모'를 원하는 충청민에게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더 얄미운 '말리는 시누이'로 비칠지 모른다.
참으로 난감하다. 이 건 이래서 안 되고 저 건 저래서 안 된다. "나는 어떡하라고"란 말이 절로 나올, 고약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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