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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협력의 반면교사, 한미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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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협력의 반면교사, 한미FTA

[의제27 '시선'] 신자유주의의 틀을 벗어난 경제 협력을 위하여

1. 동아시아 협력의 암초, 한미FTA

2008년부터 2009년에 이어지는 글로벌 경제위기, 한국의 경제위기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운영방식이 실패했다는 것을 명확히 알려준다. 그동안 '정치기획으로서의 선전문구'와는 달리 안정된 경제성장을 가져오지 못했으며 환경, 의료, 식량, 식품, 노동의 위기 등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최소한도의 공공성도 확보하지 못했다.

이제 세상은 바뀌고 있다. 국제사회의 화두는 '양극화성장'을 어떻게 '균형성장'으로 바꿀 것인지, 그리고 금융시스템의 안정, 환경보호, 의료시스템의 유지 등과 같은 '공공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로 바뀌고 있다. 헤지펀드의 규제, 글로벌 레짐의 개혁과 같은 G20의 논의, 오바마 미 대통령의 '공유된 번영'(shared prosperity), 하토야마 일본 수상의 '우애(友愛)사회의 실현' 등의 목표는 바로 신자유주의에 의해 피폐된 세계와 국민을 껴안으려는 시도이다.

동아시아의 국가들이 지향해야할 경제도 당연히 그러한 방식으로 변화되어야만 한다. '양극화성장'으로부터 '균형성장'으로의 전환해야 하며 경제사회의 공공성을 위한 국가정책의 자율성도 유지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을 더욱 강화시켜 가는 방식으로 경제협력의 틀이 짜여 져야만 한다.

이 때 우리가 삼아야 할 '반면교사'의 전형이 바로 한미FTA다. 주지하듯이 한미FTA는 한국사회의 '공공성'과 정책의 '자율성' 유지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상당히 곤란한 선택이었다. 금융협상에서는 CDS(신용부도스와프)와 같은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를 다 풀어놓았으며, 금융세이프가드도 상당히 제한적으로 운영된다. 농업에 있어서의 관세화 예외품목은 전체 1531개 품목 중 쌀 및 쌀 관련제품 16개에 한정된다. 약품협상에서도 허가-특허연계와 같은 독소조항들이 다 들어가 있다. 이와 함께 투자자정부제소권(ISD)와 같은 정부 정책의 자율성이 크게 손상되는 제도도 들어가 있다.

한때 일부 논자들은 한미FTA의 체결에 의해 동아시아에서의 경제통합이 더욱 가속화되어 갈 것이며 한국은 그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한국은 동아시아의 경제협력의 망 속에 하나의 고립된 '섬'으로 남을 수 있다. 이것은 다음의 3가지 차원에서 설명 가능하다.

첫째는 한미FTA가 적어도 부시 행정부 이후의 미국의 경제 전략, 즉 '경쟁적 자유화'의 동아시아에서의 성공사례로 기록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막강한 경제력을 가진 미국이 자신의 경제제도에 합치되는 FTA를 한국과 맺었을 때 주변 국가, 즉 중국과 일본이 서로 '경쟁적'으로 미국과 FTA를 맺어, 미국식으로 '자유화'되어 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은 고이즈미 정권 때 이미 미국과 FTA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으며, 하토야마의 일본 민주당도 선거과정에서 미국과의 FTA를 언급했다가 각계의 반발에 부딪혀 금방 철회했다. 중국 또한 미국과의 FTA 체결에 관한 논의가 전무에 가깝다. 아세안의 일부 국가, 즉 태국 및 말레이시아 등은 미국과 협상 중이나, 태국은 이미 협상 중단을 선언하였으며, 말레이시아도 협상 일정이 상당히 늘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둘째는 한미 FTA에 의해서 한국시장의 '매력'이 극적으로 제고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좀 더 복잡한 논의가 필요하나, 간단히 설명하면 한미 FTA에 의해 얻어지는 경제적 이익보다는 사회적 정치적 불안정성이 더욱 클 것이 염려 된다는 점이다.

협상 결과를 회고해 보면, 자동차 및 섬유산업에서의 일정정도의 수출 증가는 인정되나, 무역구제 및 역외가공지역의 협상결과는 단순히 앞으로 '협의'하자는 수준에 불과했다. 또한 FTA 체결에 의해서 외국인투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도 이론적 · 실증적으로 검증되지 않는다. 이에 반해 농업시장의 개방, 의료비의 상승, 국가경제정책의 자율성하락에 의해서 사회적 비용은 점차 증폭될 수 있다.

셋째는 한미FTA의 협정문을 기준으로 했을 경우, 중국 또는 일본과 FTA를 체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되었다는 점이다.

농업의 보호를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일본에게, 우리가 미국에게 내준 정도의 농업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지금까지 일본은 농업시장개방에 상당히 소극적이었으며, 농업시장개방의 의지도 없어 보인다. 이것은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가령 미국에 대해서 투자자정부제소권(ISD), 약품협상의 특허조항을 다 허용해 놓고, 중국에 대해서는 이것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은 단지 우리의 희망일 뿐이다.

일본에게 농업을, 그리고 중국에게 ISD 및 특허 조항 등을 양보하면 되겠지만, 미국에게 중요한 부분을 다 '양보'하고, 중국과 일본에게는 우리의 강점조차도 또 다시 '양보'하는 것과 같은 선택을 국민이 허용할 리가 없다.
▲ 지난 9월 10일 베이징에서 한 한중일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원자바오 중국총리, 하토야마 일본총리가 손을 잡고 있다. ⓒ청와대

2. 고육지책의 고민이 필요하다

여기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한미FTA를 재협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협정문 구조를 동아시아판 FTA의 구성요소와 조화롭게 고쳐나가는 것이다.

새로운 동아시아판 FTA가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의 전형인 한미FTA와는 다른 형태로 디자인되어야만 함은 당연하다. 경제사회적 '공공성'의 중요성을 생각했을 경우 금융, 농업, 약품, 투자(ISD관련) 등과 같은 분야에서의 개방수준이 상당히 '낮은' 단계로 설정될 필요가 있다. 이것과 함께, 금융위기 대책으로서의 '동아시아통화기금',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동아시아환경청', 낙후지역에 대한 개발원조를 담당하는 '동아시아발전기금' 등은 동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필요한 조치일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칭 '동아시아 경제사회연대협정'(East Asian Socio-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이라는 형태로 묶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미 FTA가 국회의 외교통상위원회와 법사위원회에서 이미 '통과'된 상황에서 '재협상'을 위한 정치적 동력은 거의 상실된 것으로 봐야 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상원의원 시절의 재협상 발언(2008년 2월 11일),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 지명자의 재협상발언(2009년 3월 9일) 등과 같은 미국발 돌발변수가 있었지만, 이 또한 아직 구체화된 것은 아니다.

만약 현 상태로 한미FTA가 한국과 미국 양국에서 비준된다면 그 다음 단계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동아시아 협력의 방식은 무엇인가? 필자는 앞에서 '높은 수준'의 한미 FTA 협정문과 '낮은 수준'의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FTA의 동시진행이 가져올 위험성에 대해서 지적했다. 만약 '높은 수준'의 한미 FTA를 재협상을 통해서 '낮은 수준'으로 바꾸어갈 수가 없다면 중국 혹은 일본과의 향후 협상도 '높은 수준'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선택은 무엇인가? 슬픈 일이지만, 되지도 않고 사회적 갈등만 야기할 한중FTA, 한일FTA, 한중일FTA라는 단어를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협력을 각 분야의 기능별 협력의 강화라는 방향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통화, 환경, 교육, 물류협력 등 동아시아에서의 기능별 협력을 위한 아이디어는 이미 충분히 발굴되어 있다. 1998년 당시의 동아시아비전그룹(East Asian Vision Group), 혹은 정부 차원의 실무적 검토를 위한 동아시아연구그룹(East Asian Study Group)의 보고서에 거의 모두 망라되어 있다고 봐도 된다. 문제는 '연구'와 '선언'이 아니라 '실행'하는 것에 있다.

하나 고무적인 것은 1997년의 동아시아 금융위기, 2008~2009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동아시아에서의 금융통화협력이 구체화되었다는 점이다. 향후 치앙마이 다자기금이 역내의 독립적인 통화금융협력체계로 발전할지는 쉽지만은 않은 과제이다. 그러나 적어도 유의미한 액수의, 상대적으로 IMF로부터 자율적인 역내 통화금융 협력체계를 구축했다는 점, 그리고 역내의 그 어떠한 국가도 이 기구를 지배할 수없는 '황금률'의 지배구조를 형성시켰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따라서 앞으로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은 치앙마이 다자기금과 같은 성공모델을 에너지, 농업, 교육, 물류, 환경 등과 같은 분야로 더욱 확대시켜 가는 것이다. 그리고 축적된 협력의 경험을 기반으로, 언제인지 모를 미래의 대안, '동아시아 경제사회연대협정'을 준비하는 것, 이것이 당면한 한국의 '동아시아구상'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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