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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에 선 '대기업 노조 중심 노동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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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에 선 '대기업 노조 중심 노동운동'

[기자의 눈] 진보진영의 대기업 노조 비판을 보고

경제계나 정부, 보수언론의 전유물이었던 '대기업 노조 중심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에 개혁·진보 진영도 가세하고 나서는 움직임을 보여 주목된다. 그동안은 개혁·진보 진영이 대기업 노조 중심 노동운동이 드러내는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도 대체로 내부논의에 머물러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기업 노조 중심 노동운동에 대해 개혁·진보진영에서 최근 제기하는 비판 중 일부는 대기업 노조의 행태에 대한 평면적인 비판에 치중하고 있어 건설적인 비판으로 보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런 지적을 하는 이들은 대기업 노조 중심 노조운동이 드러내는 문제점 중 절반 이상은 정부의 정책이나 기업들의 경영전략에 기인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개혁·진보 진영의 잇따른 대기업 노조에 대한 문제제기**

대기업 노조 중심 노동운동에 대한 개혁·진보 진영의 최근 비판 중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민주노동당 부설 연구소인 '진보정치연구소'가 지난해 말 '한국 사회위기의 주범 TOP 10'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내용이다. 이 연구소는 재벌, 노무현 대통령,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조선일보〉와 함께 대기업 노조와 양대 노총도 '한국 사회위기의 주범 TOP 10'으로 꼽았다.

진보정치연구소의 이런 발표에 대해 민주노총이 곧바로 항의하고 나섰다. 힘겹게 자본에 맞서 싸워온 민주노총과 대기업 노조를 사회위기의 주범으로 몰아세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한겨레〉가 자체적으로 선정한 국내의 '개혁·진보 성향 대학교수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보도한 내용도 눈길을 끌었다. 〈한겨레〉 2일자에 보도된 이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조사 응답자 중 절반에 가까운 48%가 '현재 한국 노동운동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기업 노조 중심의 노동운동'이라고 답했다. 이런 응답비율은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갈등(39%), 정파 간 갈등(28%)에 대한 응답비율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다.

이 설문조사 결과는 '대기업 중심의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을 보다 공개적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개혁·진보 진영 안에서도 확산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더 나아가 그동안 재계나 정부, 보수언론이 대기업 노조에 대해 주장해온 '귀족노조론'을 개혁·진보 진영도 이제는 일정 부분 수용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어쨋든 대기업 노조 중심 노동운동에 대해 개혁·진보 진영에서 보여주는 최근의 태도는 재계나 정부 측에서 대기업 노조를 공세적으로 비난하는 데 대해 수동적으로만 대응해오던 그동안의 태도와 사뭇 다른 것이다.

***대기업 노조 비판, 어디까지가 정당한가?**

하지만 이런 흐름에 대해 우려하는 의견도 적지 않고,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대기업 노조 비판은 차별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런 의견을 밝히는 이들은 몇 개의 여론조사나 노동운동 내부를 깊숙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대학교수들의 주장만을 근거로 대기업 노조에 대해 제기하는 비판은 신뢰도가 낮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기업 노조에 대한 진보진영의 건설적인 비판은 중시해야 한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김유선 소장은 "그동안 대기업 정규직 노조에 대한 비판은 귀족노조론에 입각한 것이었으며, 경제계나 경제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들의 전유물이었다"며 "진보진영의 최근 문제제기는 그것과는 다른 맥락"이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대기업 노조에 대한 비판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었다. 하나는 귀족노조론과 같이 대기업 노조의 행태를 '이기주의'로 규정하면서 노동운동 전반을 비판하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대기업 노조가 더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나 중소 영세업체 노동자에 대해 연대의 정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는 관점이다.

김 소장은 "대기업 노조에 대한 개혁·진보 진영의 비판은 대기업 노조가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말로 보수진영의 비판과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비정규직 문제 전문가인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도 비슷한 의견을 피력했다. 김 소장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 중소 영세업체 노동자 문제에 대해 충분히 연대하는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점은 얼마든지 비판받아 마땅하다"며 "그러나 모든 원인을 대기업 노조에 돌리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말했다.

***기업별 노사관계, 누가 원하고 있나?**

두 사람의 말은 사회양극화나 비정규직 문제 등의 원인이 대기업 정규직 노조 때문이라는 식의 비판은 사실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어디까지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순응하는 정부의 정책과 경제계의 기업전략에 기인한다고 두 사람은 지적했다.

이들은 대기업 노조 중심 노동운동의 문제점을 낳은 궁극적인 원인을 경제계나 경제계의 이익 보호로 기울어진 정부 정책에서 찾았다.

김유선 소장은 "대기업 노조가 한계를 보이는 이유는 기업별 노사관계라는 틀이 깨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기업별 노사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정부 정책의 실패와 더불어 기업별 노사관계를 산업별 노사관계보다 선호하는 경제계의 의식 탓"이라고 주장했다.

김성희 소장은 "노동운동을 비판하는 소위 개혁적 지식인들이 그동안 얼마만큼 애정을 갖고 노동문제를 지켜봤는지 의문"이라며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그들은 노동운동과 '거리 두기'를 한 것이 사실 아니냐"고 말해, 노동운동에 대한 개혁·진보 진영 지식인들의 무관심을 질타했다.

***대기업 노조, 외부 비판에 겸허히 대응해야**

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노조 중심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노조 중심 노동운동이 가지는 문제점이나 한계는 그 근본적 책임을 노조에 지울 수는 없더라도, 대기업 노조가 우리 사회에서 상당한 사회적 위상을 가지고 있는데다 비정규직 노동자나 중소 영세업체 노동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위상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기업 노조들은 그에 걸맞은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대기업 노조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지원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기피하는 등의 태도는 전체 노동운동의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런 지적과 비판들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1990년대를 관통하며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을 이끌어온 대기업 노조와 대기업 노조 중심 노동운동이 새로운 전환점에 서게 됐음을 보여주는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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