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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중도실용'은 메르켈 '중도실용'과 같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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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중도실용'은 메르켈 '중도실용'과 같은 것일까

[의제27 '시선'] '유럽 우파'의 승리에 환호하는 일부 한국언론에게

2009년 9월 독일총선에서 11년 만에 중도우파 정당인 기민당(CDU)-기사당(CSU) 연합이 승리했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의 일부 언론은 "유럽 우경화", "우파 승승장구", "유럽 좌파의 몰락"을 외쳤다. 이에 비해 최근 10월 그리스 총선에서 5년 만에 중도좌파 사회당이 집권했을 때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스가 유럽의 변방 국가라 그런가? 아니면 좌파정당의 승리를 외면하고 싶어서인가?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그 대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과연 "우파가 유럽을 접수"했느냐는 문제이다. 2009년 10월 현재 유럽 주요 국가 중에서 좌파가 집권한 나라는 영국, 노르웨이,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5개국이다. 좌파정당이 연정에 참여하는 나라는 벨기에, 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키프로스 등 8개국이다. 유럽연합 27개국 가운데 좌파가 정부에 참여하는 나라는 13개국이다. 이에 비해 우파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덴마크 등 14개 국가가 단독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럽에서 우파가 "승승장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무늬만 우파, 내용은 좌파?

그러면 유럽의 우경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는 프랑스와 독일의 사례를 보자. 이 두 나라의 중도우파 정부가 보여준 정치적 행보는 미국과 한국의 기준에서 보면 과연 우파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영미식 자본주의의 탐욕'을 비판했다. 오히려 적극적인 국가 개입을 강조하면서 사회주의적 이념과 정책을 도입해 집권에 성공했다. 미국 금융위기 이후 '기업 규제 강화'라는 거대한 흐름을 빨리 읽고 대응한 것이다.

유럽의 중도우파 정부는 대체로 광범위한 복지 제공, 국민 건강보험, 탄소 배출 규제 등 좌파 정책을 도입했고, 여기에 고용보호와 금융규제를 주장하며 좌파보다 더 적극적으로 좌파 정책을 실행하여 선거에서 승리하고 있다.

영국의 차기 총리로 유력시 되는 데이비드 캐머론 보수당 당수도 1980년대 마가렛 대처 총리의 신자유주의와 결별하고 '온정적 보수주의'를 강조한다. 2006년 집권한 스웨덴의 중도우파연합도 1930년대 사민당이 만든 모든 시민을 보호하는 '보편적 복지국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아마 유럽의 우파들이 한국에 온다면 한국의 낮은 조세부담률(20%)을 더 올려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메르켈 총리, '중도' 공략에 집중하다

지난 9월 독일 총선에서 승리한 직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꽃다발을 들고 웃고 있는 사진의 배경에 붙은 기민당'(CDU) 포스터에는 '중도'(die mitte)라는 구호가 선명하게 눈에 띈다. 이는 유럽 우파정당이 중도노선을 표방하며 선거에서 승리하는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흥미롭게도 스웨덴과 핀란드의 우파정당의 이름도 '중도당'이다. 이들이 얼마나 중도세력을 장악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메르켈 총리의 선거공약은 기민당의 중도노선을 잘 보여준다. 우파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이다. 우파정당답게 소득세 인하와 법인세, 상속세의 개혁을 주장했지만, 세율을 낮추는 정도이지 누진적 조세제도의 틀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은 아니다. 세금을 줄이기 위해 복지국가를 약화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여성과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를 우대하는 복지공약을 약속했다. 더욱이 자민당(FDP)의 요구와는 달리 노동자 해고를 쉽게 허용하자는 노동시장 유연화는 반대했다. 최근 금융위기에 맞서 은행 국유화 계획도 꺼리지 않았다.

결국 메르켈 총리의 선거 공약 중 감세를 제외하고는 우파 정책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메르켈 총리는 최근 미국발 경제위기가 전후 독일 모델의 우월성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독일은 5000만 명이 의료보험도 없이 살고 있는 미국과 다르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나아가 기민당 아데나워 총리에서 헬무트 콜 총리까지 "현명한 독일 지도자들은 자유와 사회보장, 부와 사회적 연대를 동시에 이루었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미국식 모델이 아니라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해외로 수출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러니 영국의 중도보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독일 총선을 우파 색깔이 없는 "김빠진 선거"라고 불렀다.

사르코지의 좌우를 뛰어넘는 '광폭' 실용주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공무원 감원과 기업 법인세 인하 등을 추진하는 한편, 부동산과 주식 양도세를 인상해 빈곤층 지원을 위한 사회연대세(PSA)를 만들었다. 청년 실업자를 위한 '능동적 연대소득(RSA)' 지급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금융회사의 보너스 규제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는 단기 외환거래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토빈세 도입을 주장했다. 석유 등 화석연료에 부과하는 탄소세 도입 등 좌파 경제학자의 주장도 수용하고, 전통적인 경제성장률 대신 진보적 경제학자들이 제안하는 '행복지수'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러한 좌파 정책의 도입은 국가를 위한 것이라면 "좌우를 뛰어넘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실용주의 전략이 담긴 것이다. 그는 집권 초기부터 좌파 출신 인사를 과감하게 정부로 불러 정치적 기반을 확대했다. 쿠슈네르 외무장관은 청년시절 공산당원을 거쳐 사회당 각료를 지낸 인물이다. 프랑스가 추천하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사회당 각료 출신 스트로스칸을 지명했다. 미테랑 사회당 정부에 참여했던 자크 아탈리, 자크 랑을 정부 기구에 등용했다. 미테랑 전 대통령의 조카 프레데릭 미테랑을 문화부 장관에 기용하기도 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프랑스 좌파에서 국가에 잘 봉사할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그들을 초빙하는 것은 대통령의 임무"라고 말했다.
▲ 지난 2007년 앙겔라 메르켈(왼쪽) 독일 총리가 하일리겐담의 G8(주요 7개국+러시아) 정상회담장에 도착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유럽 우파는 한국에서는 좌파?

결론적으로 보면 독일과 프랑스 우파 정부는 한국의 기준에서 보면 좌파 정부라고 볼만하다. 왜냐하면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교육, 의료, 보육을 거의 완벽하게 정부가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등록금 없이도 대학을 다닐 수 있고, 모두가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무료로 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유럽의 복지모델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이에 미국 <뉴욕 타임즈>는 "최근 유럽의 선거 결과를 보고 좌파의 이념과 정책이 몰락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유럽의 중도우파정당이 진보적 정책을 적극 수용했다는 사실은 진보진영의 핵심 가치와 전략이 아직 우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중도우파 정부가 이탈리아 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표현대로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중도좌파 정당은 정치적으로 무기력하게 보인다. 특히 프랑스 사회당과 독일 사민당은 이념적 혼란, 대중적 정치인의 부재, 정치적 분열로 혼란 속에 빠져있다. 앞으로 중도좌파 정당이 진보적 가치를 표현하는 정치적 용어, 이를 알기 쉽게 전달하는 정치적 리더십, 그리고 진보세력을 망라한 광범위한 정치적 연합을 만들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집권할 기회를 쉽게 만들지 못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에서도 최근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중도실용' 노선이 큰 관심을 끌었다. 진보적 냄새가 풍기는 녹색성장, 탄소배출 규제, 국민행복지수도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한 발 더 나아가 대학생 학자금 대출, 보금자리 주택, 미소금융, 통신비 인하 등 잇달아 정부 정책이 발표되면서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점차 상승했다. 이는 유럽의 우파가 진보적 정책을 채택하는 전략과 유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이명박 정부는 유럽의 우파에 비하면 훨씬 보수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면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명박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발표 얼마 후 8월 25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정책에 대해 "기대한다"(44.3%)는 응답은 "기대하지 않는다"(55.6%)는 응답에 미치지 못했다. 국민의 기대감이 아주 높지는 않지만 국정 지지율 상승과 일정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최근 10월 7일 발표한 케이엠조사연구소의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10명 중 7명이 친서민정책이 "피부와 와 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처럼 아직 친서민 중도실용노선이 크게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현재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것은 친서민 중도실용주의 성과가 아니라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등 진보개혁세력이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뉴민주당 플랜'도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의 '민들레연합'도 국민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주의가 민주당의 '뉴민주당 플랜'의 복제품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지만, 정작 민주당은 지금까지 아무 것도 내놓지 못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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