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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 '나영이'의 어색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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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 '나영이'의 어색한 만남

[기자의 눈] 2월 22일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나요?

추석이 끝났지만, 안산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 일명 '나영이 사건'의 파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5일 이명박 대통령은 재차 이 사건을 언급하며 "아동 성범죄자는 재범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신상 정보 공개 정도를 높여서 사회에서 최대한 격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 대통령은 "아동 성폭력 범죄자는 해당 거주 지역 주민들이 인지할 필요가 있다", "여성부가 주관하고, 총리실, 법무부, 지자체, 지역 병원이 동참해서 유기적이고 종합적인 예방과 단속 체제를 구축하라"고 지시했다.

논란 속에 임명된 '투자의 귀재' 백희영 여성부 장관의 추석 이후 행보 역시 '나영이 사건'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백 장관은 5일 성폭력 피해 아동 치료와 법적 지원을 하는 서울 해바라기아동센터를 방문해 그간의 지원 경과를 점검했다.

전 국민의 공분을 산 사건에 이 대통령과 해당 부처 장관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반가운 일이다. 사실 인터넷에서 약 48만 명이 범인의 형량을 높이라는 서명에 동참하고, 온갖 언론이 부채질을 하는 여론을 감안하면 정부의 이런 행보는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보면서도, 이명박 정부에서 효과적인 정책이 집행되리라는 믿음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왜? 바로 성폭력 문제를 비롯한 여성 정책을 담당해온 여성부를 대해온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 때문이다.

여성부는 '여성 권력'만 주장하는 부서?

▲ 지난 9월 한나라당 여성 국회의원들을 청와대에 초청한 이명박 대통령. ⓒ뉴시스

2008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여성계에는 '쓰나미'가 몰아쳤다. 대통령직인수위가 부처 개편 과정에서 '여성가족부를 없앤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당선인 신분이었던 이 대통령은 "여성부는 여성 권력을 주장하는 사람들만의 부서"라며 여성부에 강한 불신과 불만을 드러냈다. 이를 놓고 전·현직 여성 정책 전담 부처 장관은 공동 성명을 내 "실망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통탄하며 여성부 존치를 요구했다.

결국 여성가족부는 여성부로 살아남았지만 '초미니' 부서로 전락했다. 연 1조5000억 원이었던 예산은 539억 원으로 줄었고, 187명이던 인력은 100명 가량으로 축소됐다. 최근 발표된 2010년 일반예산 편성 역시 841억 원에 그쳤다.

조직과 예산 축소가 전부가 아니었다. 여성부 장관 물망에 오른 후보자는 줄줄이 자질과 도덕성 의혹을 받았다. 첫 여성부 장관 내정자였던 이춘호 씨는 '암이 아닌 것을 축하하기 위해 남편이 선물로 사 준 오피스텔' 등 40여 건의 부동산으로 투기 의혹을 받다 낙마했다.

변도윤 전 여성부 장관도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 서울여성플라자 대표가 여성 관련 경력의 전부여서, 초기부터 전문성을 의심받았다. 최근 임명된 백희영 장관에 대한 여성계의 거센 반발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여당 의원조차 재고를 촉구했지만 이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여성부 없애기' 의혹은 이제 공공연한 '음모'

이처럼 이명박 대통령은 일관되게 여성을 홀대해왔다. 관가에서는 이명박 정부 여성 정책의 최종 목표가 '여성부 없애기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사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여성 정책에 관심이 없었다. 후보 시절 이 대통령의 유일한 여성 관련 공약은 모자 지원을 언급한 '맘 앤드 베이비(Mom & Baby) 프로젝트'였다. 저출산 문제를 여성의 인식을 바꿔 해결하자는 대통령의 여성관은 여성단체들의 표현대로 '전근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인식을 지닌 대통령 아래서 여성부가 활약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2009년 여성부의 정책 목표가 '여성의 힘을 모아 경제 어려움을 극복하자'로 설정된 것은 현재 이 부처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누리꾼의 공론화 없었다면 이 대통령은 '나영이'에 관심 뒀을까?

정부는 오는 8일 '나영이 사건'과 같은 아동 성폭력을 근절하고 재발을 막고자 총리실 국무차장 주재로 여성부, 법무부, 복지부 등 부처별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강력한 주문이 나온 터이니 각 정부 부처에서는 분주하게 움직일 것이다.

국민은 정부가 이제라도 나서서 아동 성폭력 대책을 제대로 세우길 바란다. 그러나 여론에 편승해 처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성폭력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더욱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바로 여성 정책과 그것을 추진해야할 여성부가 있다.

누리꾼이 나서서 '나영이 사건'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았다면 과연 이명박 대통령이 아동 성폭력 문제를 한 마디라도 언급했을까? 이 대통령과 백 장관은 2월 22일이 어떤 날인지는 알고 있을까? 자꾸 궁금증만 쌓여간다.

2월 22일은 바로 여성가족부가 지정한 '아동 성폭력 추방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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