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전 9시께 서울 용산구 남일당을 방문한 정운찬 국무총리는 고인에게 예를 올린 뒤 분향소에서 유가족과 30여 분간 대화를 나눴다. 유가족과 마주한 정운찬 총리는 "감정이 북받쳐서 제대로 말씀을 못 드릴 것 같다"며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었다.
그는 "너무나 안타깝다. 그동안 겪었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냐"며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정운찬 총리는 "용산 사고는 그 원인이 어디 있든지 간에,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참으로 불행한 사태"라며 "250일이 넘도록 장례도 치르지 못한 것에 대해 자연인으로서, 공직자로서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유가족에게 "사태를 하루 빨리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이나 해결책을 놓고는 "(관계 부처와)원만한 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만 답했다.
▲ 추석날인 3일 용산 참사 현장을 방문해 유가족과 면담을 가진 정운찬 총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노동과세계 |
"13일 입대하는 큰 아들이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누명 벗겨달라"
정 총리의 답변에 유가족은 답답한 마음을 표했다. 고 이성수 씨의 부인 권명숙 씨는 "그동안 입대를 계속 미뤘던 큰 아들이 13일 입대한다"며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누명을 벗지 못하고 입대해야 하는 아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입대 전 장례를 치룰 수 있도록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고인의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고 윤용헌 씨의 부인 유영숙 씨는 "서민의 주거권과 생존권을 말살하는 재개발 정책이 잘못됐다"며 "우리의 5대 요구안을 총리가 직접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고 양회성 씨의 부인 김영덕 씨도 "용역이 무서워 대화를 하고자 망루에 올랐는데 경찰에 의해 남편이 희생됐다"며 "총리가 용산4구역 철거민의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고 부탁했다.
또한 고 이상림 씨 부인 전재숙 씨는 "지금 막내아들(이충연)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혐의로 구속돼 있다, 명절에 상주가 누명을 쓰고 구속된 경우가 없다"며 검찰이 제시하지 않는 수사기록 3000쪽 공개를 촉구했다.
정 총리 "중앙정부 차원에서 나서기는 어렵다"
참사가 일어난 후 8개월 동안 유가족은 △정부 사과 △용산4구역 철거민 문제 해결 △유가족 보상 등의 요구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부 어느 부처도 이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지 않았을 뿐더러 재개발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서울시에서도 "한계가 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이날 용산 현장을 방문한 정운찬 총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사안의 성격상 중앙정부가 사태 해결 주체로 직접 나서기는 어렵고, 지방정부를 비롯한 당사자간 원만한 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원칙적인 답변만을 내놓았다.
재개발 정책과 관련해서는 "장기적으로 도시개발정책을 개정해 나가겠다"면서도 "중앙정부 차원에서 직접 나서기는 어렵지만 원만한 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믿어 달라"고 대답했다.
검찰이 공개하지 않는 수사 기록 3000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수사기록 공개는 검찰의 권한으로 알고 있다"며 "유가족의 바람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역시 원론적인 답변만을 내놓았다.
하지만 "유가족, 범대위와 총리실이 직접 상황을 소통하고 협의할 수 있도록 한 명 정도 선임해 달라"는 요청에 대해서는 "총리실에서 의논 후 연락 통로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다.
범대위 "정부가 당사자간 대화 주선 노력하겠다지만 염려스럽다"
'이명박정권용산철거민살인진압범국민대책위원회'는 즉각 논평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 총장의 방문을 놓고 "기존 정부 태도와 비교할 때 전향적인 것으로서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본다"고 입장을 밝혔다.
용산 범대위는 하지만 "총리가 분향소를 방문하기 전 사전 협의를 거친 뒤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가지고 올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러지 못해 유감스럽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범대위는 정운찬 총리가 용산 현장을 방문하는 게 '생색내기식'이어서는 안된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이들은 정부 주도하에 용산 참사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 협의체 구성을 정 총장에게 요구했다.
용산 범대위는 "총리는 중앙정부가 용산 참사 해결의 직접적인 주체로 나서기는 힘들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며 "정부가 당사자간 대화를 주선하도록 노력하겠다고는 했지만 상당히 염려스럽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이들은 "총리실과 유가족, 범대위가 합의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담당자를 둘 것을 총리가 약속했다"며 "범대위는 총리실과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전달해 하루빨리 용산 참사를 해결하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노력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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