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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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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

[신기주 칼럼]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한국에 돌아왔다. 딱 열흘 뿐이다. 하지만 보고 싶지 않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몽유도원도>를 소장하고 있는 일본 덴리대학교의 관계자는 국립중앙박물관 연구원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졌다. "앞으로 전시는 없다." <몽유도원도>는 딱 열흘 동안만 한국에 머문다. 9월 29일부터 10월 7일까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 <여민해락>을 기획했다. 교과서에서만 봤던 수많은 국보급 문화제가 일반 관람객한테 공개됐다. <천마도>와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훈민정음 해례본>과 <석가탑 중수기>가 즐비하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몽유도원도>다. <몽유도원도>는 1986년과 1996년에 두 차례 한국을 다녀갔다. 첫 전시에서 두 번째 전시까지 10년이 걸렸고 이번에도 13년 만이다. 덴리대학교는 1955년부터 <몽유도원도>를 소장해왔다. <몽유도원도>가 한국 땅에서 전시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10월 7일 현해탄을 건너면 다시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직접 <몽유도원도>를 보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 안견이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몽유도원도.

<몽유도원도>다운 건지도 모른다. <몽유도원도>는 안견이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그림이다.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도원은 안평대군의 마음엔 분명 존재하지만 현실에선 실존하지 않는 광경이다. 안견이 그 꿈을 화폭에 재현한 덕분에 그 광경은 현실에 존재하게 됐다. 존재하지 않지만 실존하진 않는 풍경이다. 지금 <몽유도원도>의 처지와 같다. 교과서에서까지 볼 수 있건만 눈 앞에 바라보이진 않는다. 안견은 눈을 감으면 보이지만 눈을 뜨면 보이지 않는 그림을 그렸다. 어쩌면 <몽유도원도>는 이렇게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안견은 <몽유도원도>에서 현실 세계와 꿈 속 세계를 함께 그렸다. 그림의 왼쪽에 그려진 현실 세계는 평면이다. 실제 세계에서처럼 우리는 현실의 한쪽 면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오른쪽 도원세계는 입체적이다. 도원세계에서 우린 세상의 전부를 본다. 안견은 하늘에 떠 있는 듯한 부감으로 도원세계를 묘사했다. 안평대군은 정쟁에서 밀렸다. 계유정난으로 형인 수양대군한테 죽임을 당했다. 안견은 안평대군의 죽음을 애통해했다고 전해진다. 현실 정치의 부박함은 화가인 안견에게까지 미쳤다. 안견은 생몰연대를 알 수 없다. <몽유도원도>는 언제 나서 언제 갔는지 모르는 자의 꿈이다. 그의 호는 현동자(玄洞子)다. 검은 계곡에서 난 사람이란 의미다. 어쩌면 깊이 깨달은 인물이란 뜻이다. 수양대군의 반정은 세종조에 이르러 이상적인 주자학 국가에 근접한 듯 보였던 조선을 권력을 탐하는 세속적인 국가로 전락시킨 사건이었다. <몽유도원도>가 조선 후대 화가들한테 큰 영향을 미친 이유는 그림의 화풍 뿐만 아니라 그림의 절망 탓이었다. <몽유도원도>는 그 시대가 꿈꿨지만 이루지 못했던 이상향을 뜻한다.

<몽유도원도>가 이 나라와 인연이 닿지 않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실용이 가치를 억누르고 이(利)가 정(政)을 지배하는 나라는 <몽유도원도>가 오래 머물 곳이 못 된다. 언제 볼 지 모르는데도 애써 볼 마음이 안 드는 건 <몽유도원도>에 서린 절망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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