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말이 맞을까. 수년 째 침체의 길을 걷고 있는 재래시장과 대형마트를 돌아봤다.
▲황학동 중앙시장의 오후. 추석 대목임에도 행인들의 발길은 뜸했다. ⓒ프레시안 |
황학동 중앙시장 "왕십리 재개발 시작되면서 손님 뚝 끊겨"
30일 정오. 서울 중구 황학동 중앙시장을 찾았다. 이곳은 일반 소비자뿐만 아니라 서울 각지의 시장 상인들도 물건을 떼러 많이 찾는 곳이다.
오후에 접어든 시장 골목은 썰렁했다.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온 몇몇 주부를 제외하면 손님은 눈에 띄지 않았다. 가게마다 추석용 제수용품, 건어물 등을 매대에 깔아 놓았으나 손님들의 발길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시장을 둘러보던 한 60대 주부는 "찬거리를 사러 나온 김에 재래시장에 들렀다"며 "추석 때 차례를 지낼 재료는 근처 이마트에서 주문하면 배달까지 해주니 그곳에서 살 것"이라고 밝혔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민 모 씨(55세, 여)는 "왕십리 쪽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시장에 발길이 뚝 끊어졌다"며 "추석 선물용으로 내놓은 과일 세트도 어쩌다 한두 개 나가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민 씨는 "퇴근 시간에 사람들이 몰리는 '반짝 피크'를 맞아 좀 팔리길 바랄 뿐"이라며 "차례상을 준비하려 사람들이 모이는 내일과 모레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덧붙였다.
3년 전부터 떡 가게를 운영하는 김 모 씨(43세, 여)는 "작년 추석 때보다 골목에 사람이 더 뜸해진 것 같다"며 "이번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기에 송편을 사가는 사람들이 늘지 않을까 싶었는데, 얼마나 팔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
다른 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들도 손님들이 없다며 혀를 찼다. 구로 고척근린시장(옛 개봉시장)의 한 상인은 "어제 (중앙시장에) 와 봤더니 사람들이 전혀 없어 깜짝 놀랐다"며 "경기가 안 좋긴 안 좋은 모양"이라고 했다.
고척근린시장 "선물세트 판매? 상인들끼리 서로 사주는 게 전부"
다음 방문한 곳은 구로구 고척근린시장. 이 시장은 바로 인근에 주택가가 붙어있는 데다, 걸어서 닿을 근거리에는 대형마트도 없어 입지환경도 좋은 편이다.
이날 오후 이 시장에는 제법 많은 주부들이 시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시장상인연합회 측에서도 손님을 끌기 위해 송편 빚기 대회, 인절미 떡메치기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해놓았다. 그러나 상인들은 경기가 예년만 못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건어물 가게 주인은 "건어물은 보통 대목 때는 일주일 전부터 준비하기 마련인데, 올해는 천천히 하는 분위기"라며 "작년에 경기가 나빴다는데 올해는 작년만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시장 내 슈퍼마켓을 들렀다. 역시 주부들이 간간이 햄 등 가공식품 가격을 물어볼 뿐,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았다. 가게의 한 상인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사람들이 전단지에 세일한다고 표시된 물건만 사지, 나머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며 "우리는 추석 당일부터 사나흘 그냥 쉴 예정"이라고 했다.
매대에 깔아놓은 참기름 선물세트와 참치 선물세트를 가리키며 "사람들이 선물세트는 사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요즘 누가 시장에서 선물세트를 사가냐"며 "상인들끼리 선물세트 서로 사주는 게 전부"라고 했다.
동시간대에 가장 많은 손님이 몰려든 떡 가게를 찾았다. 제법 많은 주부들이 송편을 구입했다. 그러나 가게 주인 박모 씨(남, 48)의 설명은 달랐다. 그는 "올해는 사람들이 확실히 돈이 없는 모양"이라며 "시장에 돌아다니는 사람 수가 평일 수준이다. 주말만 못하다"고 했다.
▲점심시간의 할인마트. 직장인들은 회사 가까이에서 편하게 쇼핑할 수 있는 대형마트를 선호한다. ⓒ프레시안 |
대형마트·백화점, 매출 회복세 완연
재래시장에서 활기를 찾기 어려웠던 반면, 대형마트와 백화점 분위기는 다르다.
롯데슈퍼 서울역점을 찾았다. 점심을 마치고 추석 선물을 사러 이곳을 찾은 직장인들이 매장 안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와인·홍삼 등 선물 세트 코너마다 판촉·홍보 직원들이 수 명씩 서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 홍삼 선물 세트 4개를 산 전 모 씨(39세, 남)는 "점심 때를 이용해 추석에 가지고 내려갈 선물을 샀다"며 "그냥 가까워서 할인마트를 찾은 것일 뿐 특별히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 적잖은 직장인들이 넥타이를 맨 채 점심시간을 이용해 추석 선물을 대형마트에서 마련했다.
벤처기업들이 밀집한 구로디지털단지 한가운데 자리잡은 이마트 구로점. 오후 1시가 지났으나 직장인들과 주부들이 매장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동료 한 명과 같이 이곳을 찾은 직장인 김중호(34) 씨는 "어제 아이들 줄 과자세트 5개를 샀는데 부족해서 오늘은 샴푸세트를 사러 왔다"며 "아무래도 시장보다는 마트가 선물사기에 편리하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 개당 1만4900원하는 샴푸세트 5개를 추가로 샀다.
직장인 조창복(32) 씨는 "시장에서 참치세트 5개와 다과세트를 샀는데 부족해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급히 마트에 들렀다"고 말했다. 그는 개당 9900원 하는 참치세트 2개를 손에 쥐고 있었다.
마트가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는 배달 서비스까지 해주기 때문이다. 이마트 구로점은 바로 전날까지 택배서비스를 신청 받았으며, 이날도 30만 원 이상 구매고객은 인근 지역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시장에 비해 월등한 경쟁력이다.
백화점 또한 마찬가지다. 불황이 길어지면서 경기를 덜 타는 고가 상품이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받았다.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백화점 이달 상품권 판매액(28일까지)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증가했다. 현대백화점의 지난 13일부터 28일까지 상품권 판매액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3.5% 늘어났고, 롯데백화점 역시 5%(9월3일∼28일 집계) 늘었다.
올 들어 8월까지 백화점 주요 3사의 누적 상품권 판매액이 지난해 동기보다 5% 안팎의 역신장을 보인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추석 대목을 확실히 맞은 셈이다. 특히 신종플루의 영향으로 고가의 홍삼 선물세트 등의 판매가 부쩍 늘어났다.
연휴가 짧다는 점도 백화점에는 호재다. 귀향을 포기하고 서울에서 연휴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을 기대한 백화점 업계는 추석 당일(2일)만 휴점키로 결정했다. 당일과 다음 날까지 쉬던 예년과 다른 모습이다.
이처럼 대형 유통업계들이 추석 대목을 확실히 누릴 것이라는 기대는 관련주 주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날(30일) 신세계는 전날보다 6000원(1.02%) 오른 59만5000원에 장을 마감,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다. 롯데쇼핑도 전날보다 3500원(1.11%) 오른 31만7500원을 기록했다.
'長'들의 '한가했던' 시장 나들이 대통령의 시장 '친서민 행보' 덕분인지, 추석을 앞두고 고위 공직자들의 시장 나들이도 이어졌다.
장관과 악수를 나누던 상인들은 거침없이 어려움을 하소연했다. 한 상인은 "예년과 같이 북적이는 분위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 상인은 자영업자들의 골치를 썩이는 카드수수료 인하를 요구하기도 했다. 윤 장관은 일단 "경제 회복을 위해 정부 관리들도 매우 힘들게 노력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노력이 시장에까지 반영되도록 더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윤 장관 말의 방점은 다른 데 찍힌 듯 보인다. 그는 종로식당에서 참석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지난 주 G20 정상회의에 참석했는데, 그래도 우리나라가 가장 빨리 위기를 극복하고 있음을 느꼈다"며 "우리 경제 전망이 좋아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고 했다. 정부의 경기 대책 홍보를 위해서라는 느낌이 들었다면 지나친 편견일까. 추석 연휴 바로 전날인 1일은 '음식 전문가'인 백희영 신임 여성부 장관이 종로구 통인시장에서 장보기에 나설 예정이다. 윤 장관의 행차가 끝난 오후 5시. 고척근린시장에는 양대웅 구로구청장이 상인들을 격려차 방문했다. 그는 파란색 점퍼를 입고 '장보기는 정겨운 전통시장에서'라는 글이 써진 어깨띠를 두른 차림으로 역시 같은 색 점퍼를 입은 수십명의 주부자원봉사단, 구청 직원들과 함께 가게를 하나하나 들렀다. 양 구청장은 한나라당 출신이며 파란색은 한나라당 상징색이다. 양 청장은 그러나 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뚜렷이 제시하지 못했다. "상인들이 장사가 예년만큼 안 된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아무래도 경제가 어려우니까…"라며 말을 흐렸다. 뒤이어 수행원이 "바쁘니까 다음에 하십시다"라며 급히 양 청장을 수행하며 다른 가게로 이동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는 등의 인사와 악수를 나누고 바삐 가게를 옮겨다니던 그는 기자가 바로 맞은 편에 서 있는 과일가게에 들어서며 "그런데 장사는 잘 되시나요?"라고 물었다. 상인의 입에서 "어렵다"는 얘기가 나왔으나, 청장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바로 맞은 편 분식집으로 곧바로 이동한 그는 "내가 지난 지방선거 때 여기서 참 많이 얻어먹었는데…"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러고 보니, 지방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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