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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무슨 영화 볼까?

[이슈 인 시네마] 추석 극장가 멜로영화 강세, 독립영화도 줄줄이 개봉

일년 중 극장가가 가장 '대목'을 맞는 때 중 하나가 바로 추석 연휴지만, 올해 극장가는 여느 해와는 달리 조촐할 듯하다. 직장인들에겐 아쉽게도, 올해 추석 연휴는 주말은 물론 개천절과도 겹쳐 어느 때보다도 짧은 연휴가 됐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로 헐리웃 산 대형 블록버스터가 눈에 띄게 줄어든 지금, 올해 추석을 노린 대작들은 주로 국내 작품들인데다 추석보다 한 주 전인 이번 주에 대거 개봉한다.

아무래도 가장 접전이 예상되는 작품은 <내 사랑 내 곁에>와 <불꽃처럼 나비처럼>이다. 두 영화는 이미 지난 15일과 16일 나란히 시사를 갖고 언론에 공식적으로 영화를 선보인 바 있다. 현재 조심스레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영화가 안정적으로 상승세에 접어들 것인지, 이번 추석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영화 외에도 임순례 감독의 <날아라 펭귄>, 브루스 윌리스가 오랜만에 액션 주인공으로 돌아온 <써로게이트> 등이 의외의 복병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미국에서 시리즈 사상 최고 수익을 올린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가 한국에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인지도 관심사다. 추석 한 주 뒤에는 허진호 감독의 신작 <호우시절>이 개봉할 예정이다.

멜로 3파전, 과연 최종 승자는?

대체로 가족용 코미디가 추석연휴의 의례적인 레퍼토리였던 여느 해와 달리, 올해에는 빅쓰리에 해당하는 <내 사랑 내 곁에>, <불꽃처럼 나비처럼>, <호우시절> 세 편이 하나같이 멜로인 것도 이색적이다. <내 사랑 내 곁에>와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둘 다 주인공들이 사랑의 행로가 어찌될지 알면서도 불가능한 것을 원하고 이를 위해 돌진하는 가슴아픈 사랑을 그린다. 현재 '멜로영화 전문'으로 가장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허진호 감독(<호우시절>)과 박진표 감독(<내 사랑 내 곁에>)의 신작이 추석 시즌에 나란히 개봉한다는 점도 재미있다. 물론 두 감독의 스타일은 전혀 다른 만큼 두 작품 역시 완전히 다른 색깔을 드러낸다. <내 사랑 내 곁에>가 지고지순한 순애보로 눈물샘을 자극한다면, <호우시절>은 담담하고 깨끗하며 보다 일상적이다.

▲ <내 사랑 내 곁에>(왼쪽)와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한 장면

추석 이후에 개봉하는 <호우시절>은 별개로 하고, 현재 평단의 반응은 <불꽃처럼 나비처럼>보다는 <내 사랑 내 곁에> 쪽에 좀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예매율 역시 <내 사랑 내 곁에> 쪽이 높은 편. 영진위 통합전산망이 집계한 예매율로는 <내 사랑 내 곁에> 쪽이 44.2%를 차지하며 22.6%를 차지한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두 배 가까이 앞서고 있다. 맥스무비의 예매율 역시 이와 비슷하다. 맥스무비에서 <내 사랑 내 곁에>는 45.6%를,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22.9%를 차지해 <내 사랑 내 곁에> 쪽이 압도적인 예매 선두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두 작품보다 2주 늦게 개봉하는 <호우시절>은 아무래도 흥행에서는 다소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내 사랑 내 곁에>가 주말에 흥행 기선을 얼마나 잡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 '멜로 선수'가 만든 정통 신파, <내 사랑 내 곁에>

▲ 내 사랑 내 곁에
<죽어도 좋아>(2002)로 데뷔한 이후 벌써 장편으로만 네 번째 영화를 내놓는 박진표 감독의 <내 사랑 내 곁에>는 루게릭 환자와 장례지도사 간 사랑을 다룬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남자와 다른 이의 죽음을 지켜보는 여자의 사랑에는 처음부터 비극적인 이별이 예정돼 있다. 박진표 감독은 '그럼에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혹은 '미래야 어떻건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사랑이 걷는 예정된 수순을 충실하게 그려나간다. 외형이야 전형적인 신파 멜로지만, 그 안에는 주인공 백종우(김명민 분)가 앓는 루게릭 병에 대한 세심한 묘사는 물론 그가 지내는 6인 병실의 다른 환자와 가족들의 사연도 꼼꼼이 채워져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주인공들의 가슴아픈 사랑을 그리는 것은 물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예리하게 포하며 삶과 죽음을 똑바로 직시할 기회를 제공한다. 김명민이 건강의 위험을 감수하고 20여kg의 살을 빼서 화제가 됐다.

▶ 불꽃처럼 뜨겁게, 나비처럼 우아하게 <불꽃처럼 나비처럼>

▲ 불꽃처럼 나비처럼
<와니와 준하>, <분홍신>을 만든 김용균 감독이 4년여의 제작기간을 거쳐 내놓는 신작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야설록의 동명 무협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에서도 드러나듯, 명성황후를 둘러싼 절절한 멜로영화 정도로 알려진 이 영화의 진짜 정체는 실은 무협멜로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서는 주인공 무명 역을 맡은 조승우와 그의 호적수인 이뇌전(최재웅 분)의 검술대결 씬이 매우 공들인 연출로 여러 차례 등장한다. CG가 너무 튀어 영화의 드라마를 이루는 부분들과 다소 엇나가며 어색함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화려하고 다채로운 안무에 자연스럽고 유연한 몸의 움직임을 표현해냈다. 무명의 짧고 굵은 칼과 이뇌전의 장검의 대비도 강렬하다. 때문에 세 편의 추석 멜로영화 중에서는 가장 남성관객들을 배려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카리스마 넘쳤던 이미연의 명성황후와 달리 여린 소녀의 외면에 부드럽고 깊은 의지를 지닌 수애 식의 명성황후에 대한 해석도 볼거리다.

▶ 영롱한 빗방울 속 감추어진 상처, <호우시절>

▲ 호우시절
허진호 감독의 신작 <호우시절>은 이번에도 남녀간 사랑을 다룬다. 이번에는 한국이 아니라 중국, 그 중에서도 쓰촨성 대지진의 비극이 휩쓸고 지나간 청두다. 미국유학 시절 '우정과 사랑 사이'였던 남녀가 우연히 재회한 뒤 설레임을 느끼며 조심스러운 감정의 교류를 겪는다. 죽향이 스크린 밖으로도 쏟아져 나오는 듯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두보초당은 물론, 두 남녀가 거니는 청두 거리가 아름답게 화면에 담긴다. 그러나 영화가 궁극적으로 그려내는 건 결국 청두 시가 겪은 그 상실과 상처의 흔적들이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 이후 오랜만에 본격 멜로로 돌아온 정우성과, 상큼한 미소가 매력적인 고원원이 하모니를 이룬다. 닿을 듯 말듯, 이루어질 듯 말 듯 줄다리기를 계속하는 예쁜 두 남녀의 대화, 그 사이로 조금씩 비져나오는 과거에 대한 기억, 그리고 마지막에야 드러나는 아픔까지. 마치 디지털 카메라로 그린 수채화 같은 영화다.

한국 독립영화들의 성찬

중견 감독들의 신작들만 추석 시즌을 장식하는 건 아니다. 싱싱한 독립영화 다섯 편도 추석을 전후로 줄줄이 개봉한다. 가장 먼저 개봉하는 작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흥행 홈런을 친 임순례 감독의 신작 <날아라 펭귄>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기획으로 제작된 인권영화다. 사교육 열풍과 직장 내 강압적인 회식문화, 황혼이혼 등의 주제를 3개의 에피소드 안에 담은 옴니버스 구성의 영화다. 문소리, 박원상 등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 활약했던 배우들 외에도 박인환, 정해선, 손병호 등의 중견배우들과 최희진 등 독립영화로 낯이 익은 배우들이 출연한다. 임순례 감독의 장기가 '코미디'에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 <날아라 펭귄>(왼쪽), <지구에서 사는 법>

<지구에서 사는 법>은 <다섯은 너무 많아>, <나의 노래는...>을 만들었던 '선생님 감독' 안슬기의 세 번째 영화다. 외계별 출신으로 지구에서 고독을 느끼는 시인과, 외계인들을 관리하는 비밀 정보부 소속의 그의 아내, 그리고 이들 주변에 얽혀드는 다른 외계인과 정보부원들까지 등장하는 SF영화. 그러나 화려한 CG나 SF적 화면보다는 타인과의 소통 문제를 중점으로 다루며 '불륜'을 영화 전면에 놓는 영화다. 영화사에서 내걸고 있는 카피도 '범우주적 불륜드라마'. <나는 갈매기>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팀 선수들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최근 <해운대>에서도 등장했을 만큼 부산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롯데팀 선수들과 그들을 둘러싼 팬덤을 좇는다. 인천 유나이티드FC 축구팀을 다루며 소리소문 없이 흥행을 기록한 스포츠 다큐멘터리 <비상>의 뒤를 잇는 의외의 화제작이 될 수 있을지 기대되는 영화다.

이밖에 추석 연휴 이후 개봉하는 <푸른 강은 흘러라>는 연변을 배경으로, 한국, 특히 서울에서 살고있는 청소년들과는 너무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연변의 17세 소년 소녀의 푸른 청소년기를 담았다. 작년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이다. <헬로우, 마이 러브>는 10년간 사귀어 온 남자친구가 게이라 커밍아웃한 후 혼란을 겪는 여자의 좌충우돌을 그린다. <킹콩을 들다>의 조안이 주연을 맡았다.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소개됐던 작품이다.

헐리웃 영화들, 다소 약하네

한국영화에 비하면 외화들의 기세는 다소 약한 편이다. 오히려 화제작이 될 만한 영화들은 추석 한국영화들을 피해 개봉일을 잡은 흔적이 역력하다. <300> 이후 주가가 치솟고 있는 제러드 버틀러 주연의 <게이머>와 액션영웅 브루스 윌리스의 복귀작인 <써로게이트> 등 추석 연휴에 개봉하는 영화들은 물량을 퍼부은 대형 블록버스터는 아닌 데다 감독의 이름도 그리 '빅 네임'이 아니다. <게이머>와 <써로게이트>가 둘 다 가상세계를 기반으로 하는 영화라는 점은 흥미롭다. 두 영화 모두 추석 연휴가 있는 다음 주에 개봉한다.

<게이머>는 실제 사람이 게임 플레이어의 아바타로서 전투를 행한다는 설정 하에 1인칭 슈팅 게임의 기법을 영화에 도입한 영화다. <아드레날린 24>를 만들었던 브라이언 테일러, 마크 네빌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써로게이트>는 대리 로봇을 통해 인간이 100% 안전한 삶을 영위하게 된 근미래에 15년만에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이를 쫓는 FBI 요원의 활약을 담았다. 사건을 수사하는 그리어 요원으로 브루스 윌리스가 출연한다. <터미네이터 3>의 조나단 모스토우가 연출을 맡았다. 이들 영화들과 나란히 개봉할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는 시리즈의 전형적인 공식을 그대로 따르는 영화다. 불길한 전조를 보고 사고의 죽음을 피한 친구들이 이후 그들을 쫓아오는 예정된 죽음을 피해 고군분투한다는 이야기다. 설정상으로만 보면 새로울 것은 없지만, 완전히 새로운 배우들이 등장해 전작보다 강도가 훨씬 세진 죽음의 공포 앞에 직면하게 된다. 최근 미국에서 개봉해 연속 2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시리즈 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이밖에 뮤지컬 영화의 걸작 <페임>을 현대적 감성으로 리메이크한 <페임>, 최근 원작자 우스이 요시토의 실족사 소식으로 안타까움을 주고 있는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등이 가족용 영화로 이번 주에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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