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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시대, 청동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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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시대, 청동사회

[신기주 칼럼] <황금시대>는 황금만능을 말한다. 한국사회에선 돈이면 다 된다. 하지만 돈이 전부여야 할까.

언젠가 부동산 투기꾼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그 기사를 보고 한 청년이 전화를 했다. 대학교 4학년이라고 했다. 제발 그 부동산 전문가를 만나게 해달라고 졸랐다. 졸업할 땐 다가오고 취직도 어려워서 진작부터 그 쪽으로 가볼까 생각하다가 기사를 접했다고 했다. 끈질겼다. 이기지 못하고 알려줬다. 두려웠다. 삶의 목적과 해답이 분명했다. 돈이었다. 스물 다섯 살 청년의 돈에 대한 집념은 사람쯤 죽일 듯 번뜩였다.

"그 때 나한테 500만 원만 있었다면 옛 여자친구와 헤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단지 돈을 더 썼을 거란 의미가 아니라 좀 더 여유있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었을 거란 뜻에서요." 지난 9월 13일 홍대 상상마당에서 있었던 <황금시대> 관객과의 대화에서 윤성호 감독이 한 말이다. <황금시대>는 전주국제영화제 10주년 기념작이었다. 10명의 감독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돈을 이야기하는 옴니버스 영화다. 지난 9월 10일 개봉했다. 한 줌 밖에 안 되는 극장에서 개봉한 탓에 역시 한 줌도 안 되는 관객과 만나고 있다. 윤성호 감독은 <황금시대>에서 단편 <신자유청년>을 연출했다. 성실한 소시민은 1년 동안 로또 1등에 당첨되면서 허영덩어리 졸부가 된다. 돈은 국가가 가치가 있다고 보증한 종이조각이다. 돈은 사회적 계약을 상징한다. 돈을 쓰고 벌고 빌리는 순간부터 우리는 사회 체제에 말려든다. 돈은 어느새 사랑이나 진실이나 정의나 아름다움보다도 더 가치있는 존재가 된다. 윤성호 감독의 말대로 돈은 너와 나와 관계를 바꾼다.

▲ 전주영화제 10주년 기념작인 <황금시대> 중 윤성호 감독 편 <신자유청년>의 한 장면.

함께 무대에 선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말했다. "저는 돈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입니다. 선진국의 경우 사람들의 행위 가운데 돈으로 설명되는 부분은 50% 정도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90% 정도 설명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황금시대>의 또 다른 단편인 이송희일 감독의 <불안>에서 돈은 부부 사이마저 갈라놓는다. 주식 탓에 빚더미에 올라앉은 남편은 보험료를 노리고 아내를 죽일 작정을 한다. 남편의 속셈을 눈치챈 아내는 나들이 길 내내 남편이 무섭다. 많은 우리들한테 돈은 전부다. 주식과 부동산에 매달리는 사람들한텐 삶의 목적이고 조건으로 결혼하는 사람들한텐 관계의 시작이며 돈 많은 부모가 아쉬운 자식들한텐 가족의 조건이며 좋은 차와 집을 원하는 사람들한텐 행복의 실체다. 가능한 다른 삶도 없다. 원치 않는 소비를 거듭하고 소비 탓에 진 빚을 갚느라 원치 않는 노동을 반복한다. 불행해질수록 물질로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돈을 쓸수록 불행한 빚만 불어난다.

그 청년이, 법원 경매장 주변이나 어슬렁거리는 신세가 되지 않았기를 바란다. 돈을 벌지 못해서 좌절하고 세상을 원망하는 비뚤어진 젊은이가 되지 않았기를 빈다. 돈을 벌려고 수단 방법을 안 가리는 비정한 어른이 되지 않았기를 원한다. 돈 좀 벌었다고 돈이면 다 되는 양 착각하는 졸부 중년이 되지 않기를 원한다. 돈만 좇다가 인생을 낭비한 걸 뒤늦게 후회하는 불쌍한 늙은이가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가 <황금시대>를 봤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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