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현재 막대한 세금을 들여 새로 깐 자전거도로들을 보면 과연 수용자 입장에서 설계했는지 의심스러운 구간들이 많다. 조금 더 생각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곳들 말이다.
#1. 보행자 통로 분리?
'한강 르네상스'와 함께 착수된 한강 둔치 자전거도로 정비는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자전거와 보행자의 분리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망원지구처럼 공간 확보가 가능한 구간에는 기존의 자전거도로 옆에 보행자 통로를 별도로 뚫었고, 난지지구처럼 완전히 새로 공사한 구간도 있다.
그런데 망원지구의 경우 자전거도로 안쪽, 즉 한강변이 아니라 강 반대편에 길을 내다보니,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행자통로보다 자전거도로로 걸어 다니는 경우가 많다. 자전거와 보행자의 분리를 위해 도로 곳곳에 표지판을 세웠지만 보행자의 '눈높이'에 맞지 않아 표지판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강변 산책'을 위해 나온 보행자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자전거 도로로 걷는다. 인파가 많은 저녁 시간에는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 보행자가 엉키기 일쑤다.
▲ 망원지구 자전거도로. 보행로와 분리가 돼 있고, 안내 표지판도 설치돼 있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시민이 자전거도로로 걷고 있다. 보행자 통로는 흙길이다. ⓒ프레시안 |
반포대교에서 떨어지는 분수로 관광 명소가 된 잠수교는 가관이다. 잠수교는 절반을 자전거와 보행자에게 내주는 '혁명적' 탈바꿈을 했지만, 자전거도로를 강 쪽으로 내고 보행자 통로를 다리 안쪽으로 내는 바람에 분수를 보려는 사람들이 죄 자전거도로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 분수를 보기 위해 자전거도로를 점령한 인파로 가득한 잠수교. 보행자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는 자전거 운전자. ⓒ프레시안 |
그래서 이와 같은 구간들에서는 자전거가 보행자를 피해 곡예운전을 한다. 공사의 목적이었던 '보행자와 자전거의 분리'가 무의미해진 것이다. 처음부터 공사를 할 때 강변 쪽 길을 보행자에게 내주고 자전거 도로를 강 반대편에 냈으면 혼잡이 덜했을 것이다. 어차피 앞만 보고 달려야 하고, 매일 강가에 나오는 자출족에게 강 풍경은 그저 일상일 뿐이다.
도로의 폭도 처음부터 보다 넓게 설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 자전거 이용객이 늘어나고 특히 한강에는 자출족 뿐만 아니라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이 10여대 씩 무리 지어 라이딩을 즐긴다. 걷기 운동이나 조깅, 마라톤을 하는 인구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정부 계획대로 자전거 인구가 늘어난다면 머지않아 자전거도로가 체증에 시달리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2. 필요한 곳에 없는 한강 다리 엘리베이터
자출의 최대 장애물은 한강 건너기이다. 나는 고양시에서 여의도로 출근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한강을 한 번은 건너야 한다. 출근길에 맞이하는 다리는 방화대교, 인천공항철교, 가양대교, 성산대교, 양화대교 등 5곳이다.
각 다리의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방화대교: 공항고속도로의 일부로 오르내리는 길 자체가 없다.
□공항철교: 공사 중이기 때문에 논외. 다만 공사단계부터 자전거 통행로 설치를 고민했으면 어땠을까.
□가양대교: 북단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설치 중인데, 공사 안내판에는 7월31일 완공 예정이라고 표시돼 있었지만 여전히 공사중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남단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올라가면 어디로 내려가라는 것인지. 베테랑 자출족들은 남단에서 한강으로 빠지는 샛길을 알고 있지만, 가양대교는 자전거로 건너기 위험한 다리로 유명하다.
□성산대교: 북단에는 올라가는 길은 있지만 엄청 높다. 대신 올라만 가면 인도가 제법 넓기 때문에 자전거 두 대가 넉넉히 교행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남단에는 한강 둔치로 내려가는 길이 없다. 내려가기 위해서는 좁은 인도를 타고 정수장 쪽으로 내려가야 하는 등 크게 돌아야 한다. 특히 목동으로 직진하기 위해서는 올림픽대로 진입로를 건너야 하는데 횡단보도가 그려져 있지만, 여기서 자전거를 위해 멈춰주는 자동차는 없다. 어떨 때는 건너기 위해 10분을 넘게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진입로 횡단보도 입구에 과속방지턱 하나만 설치해도 건너기 훨씬 수월할 것이다.
▲ 자전거와 보행자를 위한 엘리베이터가 절실한(하다 못해 계단이라도) 성산대교 남단부. ⓒ프레시안 |
▲ 성산대교 남단에서 목동으로 진입하기 위해 건너야 하는 횡단보도. 간선도로 진출로여서 차량 통행이 많고 차량의 속도도 빠른 곳이어서 건너기 난감한 곳. 과속방지턱이나 간이 보행자용 신호등이 아쉬운 곳이다. ⓒ프레시안 |
□양화대교: 출퇴근길에 건너다니는 다리다. 둔치에서 다리 위까지 그리 높지 않고, 가는 동안 자동차의 진출입로가 없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다리이다. 그러나 인도 폭이 좁아서 자전거 두 대가 교행하기에는 약간 아슬아슬한 면이 있다. 여기도 엘리베이터가 공사 중인데 남단에만 설치하고 있다.
우선 엘리베이터 문제를 보더라도 가양대교는 북단에만, 양화대교는 남단에만 설치하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양화대교 남단은 선유도와 가까워 이용자가 많아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정작 엘리베이터가 필요한 성산대교에는 없다. 다리 구조와 엘리베이터 설치 공간 등의 기술적 요소가 고려됐겠지만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마포대교는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은 물론 차도를 줄이고 인도를 늘려 자전거 전용도로를 설치해 큰 호응을 얻었다. 잠수교는 도로의 반을 사람과 자전거에 내줘 역시 찬사를 받고 있다. 나머지 다리들도 서둘렀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예산과 기술적 문제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더 신경 쓰면 공사가 안 된 다리들도 간선도로 진출입로에 과속방지턱이나 보행자가 건널 때 버튼을 누르는 식의 신호등만 설치해도 보다 안전한 통행이 가능할 텐데 이런 세심한 배려가 부족하다.
▲ 마포대교 자전거도로. 도로다이어트를 통해 공간을 확보했다. 양끝단에는 경사로도 설치돼 있다. 양화대교는 통행로 폭이 마포대교의 절반 수준이다. ⓒ프레시안 |
#3. 목동 자전거 도로
자전거 장려 정책과 맞물려 요즘 기초단체들은 인도를 갈아엎어 한켠에 자전거도로 만드는데 분주하다. 그냥 기계적으로 인도 절반 나누어 반쪽을 포장해 자전거도로를 만드는 지자체도 있지만, 좀 더 무성의한 지자체는 블록형 인도 중앙에 흰 선 하나 그어놓고 한 쪽에 자전거 모양 그려 자전거도로라 생색을 내며 '우리 구 자전거도로 현황'에 포함시켜 놓는 뻔뻔한 곳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인도 분리형 자전거도로'의 모범적인 사례는 목동 자전거도로다. 인도를 절반 나누어 자전거도로를 포장했을 뿐만 아니라 중간에 관목과 가로수를 심어서 인도와 자전거도로를 완전히 분리했다. 중간에 횡단보도나 버스 정류장 등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는 자전거도로를 안쪽으로 우회하게 하는 설계도 돋보인다.
▲ 인도와 자전거도로를 완전 분리한 목동. 그러나 인도와 높이가 같아 자전거도로로 통행하는 보행자가 많다. ⓒ프레시안 |
하지만 이렇게 잘 깔아 놓은 자전거도로도 한계를 지닌다. 자전거도로의 높이가 인도와 같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를 자전거도로라 인식하지 않고 인도로 인식한다. 더구나 나무로 분리돼 있기 때문에 자전거도로에서 사람과 자전거가 마주치면 피할 곳도 마땅하지 않다. 도로 쪽은 스텐레스 펜스로 가로막혀 있다.
어차피 이 정도 길을 내어 자전거도로를 만들 것이었으면 자전거도로는 차도와 같은 높이로했어야 사람들이 자전거도로라는 인식이 더 강해졌을 텐데 말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인도에 '생명을 위협하는' 장애물들도 간혹 있다. 이는 주로 군부대에서 갖다 놓은 바리케이트 구조물이다. 자전거가 인도로 다니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 군용 바리케이트. 자전거에 뿐만 아니라 보행자에게도 위험한 구조물이다. 양화대교 초소에도 이런 구조물이 인도를 향해 삐죽 솟아 있다. ⓒ프레시안 |
오세훈 시장은 가끔 수행원 없이 혼자 한강 자전거도로를 달린다고 한다. 핼멧과 선글라스를 끼면 아무도 알아보는 이가 없어 일종의 암행을 한다는 것인데, 아마도 자신이 추진한 '한강 르네상스'로 인해 깔끔하게 탈바꿈되는 한강 공원의 모습이 뿌듯할 것이다. 온갖 잡초가 무성하던 한강 공원이 계획된 식재로 인해 멋진 공원으로 탈바꿈되고 있다.
하지만 보기에는 그럴 듯 하지만, 시민들이 편안하게 이용하기에는 부족한 구석이 많다. 그가 진짜 '자출족'이었다면 꽃밭에만 만족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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