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전 어느 월요일.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뽀송뽀송하게 출근하고 싶은 욕심에 리포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차를 끌고 집을 나섰다. 그날 결국 출근하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 필자의 집은 고양시 행신동으로 집에서 출입처인 국회까지 거리는 16킬로미터. 평소 길이 안 막히면 20분, 평소 막혀도 40~50분이 걸리고, 버스와 지하철 버스를 다시 갈아타는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50분이 걸리는 출근길이다. 국회 주차장에 힘겹게 주차를 한 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시안 |
그 전에 간간이 하던 '자출'(자전거 출·퇴근)을 본격적으로 하기로 결심했다. 집에서 국회까지는 1시간이 걸리는데, 거의 모든 구간을 창릉천과 한강변 자전거 전용도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지리적 이점도 갖추고 있다. 특히 한강 자전거도로를 질주할 때 옆 강변북로에 늘어서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자동차들을 볼 때는 엔돌핀이 솟아나와 페달을 밟는 힘을 더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많게는 1주일에 4회, 적게는 열흘 가까이 자출을 하지 못하는 날도 있었지만 석 달 동안 꾸준히 자출을 한 결과 체중이 7킬로그램가량이 줄었다. 무엇보다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혈압이 20정도 떨어졌다는 것이다. 작년 말 건강검진 때 최고혈압이 148에 이르러 재검진까지 받았는데, 최근 혈압을 쟀을 때 최고혈압 수치는 124였다.
경제적 효과는 덤이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교통 정체까지 감안하면 왕복 유류비만 4000원 가량이 든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3400원이 든다. 1주일에 4일 자출하면 출퇴근 비용만 1만5000원, 한 달이면 6만 원가량을 절약할 수 있다. 이러니 베란다에 고이 모셔져 있던 자전거를 꺼내 닦고 기름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본격 자출 석 달이 된 지금. 자전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사이 세 번의 사고를 당했다. 내 부주의도 있었지만 자전거 관련 제도와 자전거 이용에 관한 문화의 미비가 가장 큰 문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자출족'들이 빈약한 자전거 통행 인프라와 문화를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을 내세우며 자전거 타기를 장려하고 있지만 '산업 육성' 측면에서만 접근하고 있다. 자전거에 대한 제도와 문화가 성숙하지 않은 자전거 열풍은 사고만 더 늘릴 뿐이다. 국회에서도 자전거에 대한 논의가 간간이 이뤄지지만 모두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위정자들이 '탁상행정'에서 벗어나는데 보탬이 되고자 사고사례와 자출을 하며 느낀 점들을 연재한다. 2009년 한국, 자전거는 '무법'(無法)지대에 놓여 있다.
#1. 횡단보도 사고
지난 여름. 한강변 자전거도로가 수시로 침수됐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시내 도로를 통해 출근을 하게 되는데, 시내 도로를 처음 타던 날 합정역 네 거리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란 불이 켜져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 등교길 여학생들이 많았는데 갑자기 한 여학생이 자전거 앞으로 툭 튀어나왔다. 간신히 핸들을 틀어 여학생을 피했지만 그 순간 뒤에서 '쿵' 하고 내 자전거 뒷바퀴를 들이 받았다. 간신히 균형을 잡고 섰는데 뒤를 돌아다보니 오토바이 한 대가 쓰러져 운전자는 나뒹굴고 있었다. 내 자전거는 자전거 뒷바퀴 브레이크가 틀어지고 뒷 라이트가 깨졌다.
쓰러진 오토바이에서는 오일이 흘러나오고 있고, 오토바이에 깔린 운전자는 다리가 긁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치인 건 난데 오토바이 운전자가 더 걱정이 됐다. 그래서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워주고 운전자의 안부를 물으니 괜찮다고 했다. 나는 자전거를 끌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오토바이 운전자도 가버렸다. 횡단보도 한 가운데여서 모두 빨리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더 급했다.
이 경우 '쌍방과실'에 해당한다. 자전거나 오토바이 모두 도로교통법상 자동차로 분류되기 때문에 자전거나 오토바이에 탄 채로 횡단보도를 건너서는 안 된다. 내가 자전거를 끌고 가던 상황이라면 피해자가 될 수 있었지만, 나도 자전거를 타고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자동차다.
#2. 인도 사고
역시 시내 도로를 달릴 때였다. 이번에는 퇴근 길. 수색에서 화전 쪽으로 넘어가는 길에 얕은 언덕이 있다. 물론 이 곳에 자전거 전용도로는 없다. 자전거도로가 없는 곳에서는 자동차도로 가장자리를 달리고는 하지만 여기는 다소 언덕이라 속력을 내기 힘들고 자동차들이 거의 70킬로미터로 달리는 구간이라 인도를 이용한다. 다행히 보행자가 거의 없어 자전거가 다니기에 좋은 곳이다.
어둠이 내린 가로수가 우거진 인도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갑자기 시커먼 물체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쿵.' 반대편에서 자전거 한 대가 내리막길에서 질주하고 있었는데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보기 드문 자전거 정면충돌이다. 난 뒤로 넘어지며 오른 손을 짚었는데 손바닥에 500원짜리만한 멍이 들었다. 자전거 핸들이 틀어졌고, 이번에는 앞 라이트가 조금 깨졌다.
당장 화가 났다. 나와 충돌한 자전거 운전자도 쓰러져서 고통스러워했는데, "괜찮으시냐"고 물은 뒤 "이렇게 어두운 길을 다니시면 라이트 정도는 달고 다니셔야죠."라고 타박을 했다. 상대편 자전거를 보니 라이트가 하나도 장착돼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뿐. 역시 툴툴 털고 일어나 자전거 핸들 틀어 방향 다시 맞추고 내 갈 길을 갔다.
이번에도 법적으로는 '쌍방과실'이다. 자동차가 그러하듯이 자전거는 인도로 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3 도로 사고
집에서 나와 자전거 전용도로까지 가기 위해서는 1킬로미터가량을 3차선 일반 도로를 주행해야 한다. 최근의 일이다. 출근길에 3차선 도로 가장자리에 붙어 달리고 있는데 3차선에 불법주차된 덤프트럭이 있었다. 인도에 바짝 대놓은 덕에 오른쪽으로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왼쪽으로 비켜 달리는데 갑자기 트럭 앞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너무 갑작스럽기도 했지만 그 순간 이미 내 왼쪽에는 승용차가 나란히 주행중이었기 때문에 사람을 피하면 내가 차에 받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시 '쿵.' 핸들이 튀어나온 사람의 옆구리를 강타했고 나도 쓰러졌다. 다행히 넘어질 때 균형을 잘 잡아 나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자전거에 받힌 사람은 데굴데굴 구르며 죽는 소리를 했다. 결국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옮겨 진단을 했다.
다행히 받힌 사람은 옆구리에 가벼운 멍만 들었을 뿐 크게 다치지 않았다. 의사도 "진단서를 끊으면 1주일"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알고보니 받힌 사람은 불법주차돼 있던 덤프트럭의 운전자였다. 차를 세워두고 노상방뇨를 하고 왔던 모양이다. 나에게 1주일치 휴업 보상금과 위자료를 요구했다. 그러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한다고 했다. 도로교통법상 내가 자동차로 사람을 친 사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꾀병도 작작 부리라"는 의사의 도움에 간신히 합의를 하긴 했지만 교통사고 피의자로 입건될 뻔한 순간이었다. 자전거 사고를 내도 범칙금에 벌점까지 받는다.
사고를 수습한 뒤 정신이 들었을 때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다행히 자동차와 충돌하지는 않았지만 세 번의 사고를 당하다보니 언젠가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프레시안 |
자전거 열풍, 늘어나는 사고
경찰청이 최근 낸 통계를 보면 2008년 교통사고 사망자 중 자동차, 오토바이, 보행자 모두 2007년에 비해 2~7%가량 줄어들었다. 반면 자전거 사고로 숨진 사람은 2007년 302명에서 310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특히 달리는 차량과 측면 충돌해 숨진 사람이 전체의 60%를 넘는 198명이었다.
그런데 이는 사망사고에 대한 경찰청의 통계일 뿐 크고 작은 자전거 사고는 이보다 훨씬 많은 것이 분명하다. 당장 나만해도 경찰의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고를 겪었다. 특히 자전거 이용 인구가 최근 급증하면서 사고도 훨씬 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가 다니는 길에도 처음 '자출'을 시도하던 6개월 전에 비해 자전거 이용자는 눈에 띄게 늘었고, 불과 3개월 전에 비해서도 부쩍 늘었음을 실감하고 있다.
"자전거가 설 곳이 없다"는 말은 오래 전부터 들려오는 주장이다.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자동차로 분류돼 자동차와 거의 같은 규제와 책임을 부여 받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에서도 자전거의 위치는 애매하다.
교통 방해? 자전거 운전자 보호?
이 법 제17조에는 "자동차의 운전자는 도로에서 운행중인 자전거의 옆을 지날 때에는 자전거운전자의 안전을 고려하여 일정한 거리를 두고 운행하여야 한다"(제17조)고 규정하고 있지만, 제15조 제1항에는 "자전거의 운전자는 도로교통에 관한 법령을 준수하여 자동차의 통행에 방해가 되거나 보행자에게 위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에서 어떤 조항은 "자동차 통행을 방해하지 말라" 그러고, 제17조에서는 "자동차 운전자가 자전거 운전자의 안전을 고려하라"고 한다.
20일 서울시와 <조선일보>는 서울 도심 차도를 막고서 '푸른 자전거 대행진'을 벌였다. 이 행사에서 오세훈 시장은 "자전거가 단순한 여가 수단에서 벗어나 진정한 교통수단의 하나로 자리 잡아야 한다"며 "서울을 자전거 출퇴근이 가능한 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2012년까지 주요 간선도로에 207킬로미터의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거 전용도로 확충은 아직 '먼 일'이고, 그나마 있는 자전거도로도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인도상 자전거도로는 보행자가 점령하기 일쑤고, 차도에 설치된 자전거전용도로도 오토바이가 수시로 질주한다.
전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실질적 캠페인을
22일은 서울시 '차 없는 날'이다. 그러나 차 없는 날이라고 자전거를 타고 도심을 질주하면 명백히 불법이다.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자동차다. 서울시가 해야 할 일은 주말에 차도 막아놓고 자전거 타게 하는 이벤트성 행사가 아니라, 평소 자출족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제도 정비와 자전거 문화에 대한 캠페인이 아닐까. '자전거운전자 보호'에 대한 의무를 위반해도 처벌할 명확한 기준도 근거도 없다. 더 심한 건 이를 아는 운전자도 거의 없다.
'취재'가 아닌, 평소 자전거 출퇴근을 하면서 보고 느낀 일천한 자전거 문화의 실태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