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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5 금융위기 1주년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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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5 금융위기 1주년 단상

[손호철 칼럼] MB정권, 역주행 멈추고 역사에서 배워야

세계를 흔든 월스트리트발 '9.15 금융위기'도 이제 일 년을 맞았다. 각국의 비상조치와 재정정책으로 급한 불은 끈 것 같지만 아직 불씨는 남아 있고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이런 저런 생각에 지난 파일을 뒤지다가 미국이 신경제라는 이름아래 잘 나가던 클린턴 정부 말기인 2000년 7월 UCLA에 교환교수로 나가 한 언론에 쓴 "미국 호황은 쇠락의 증거"라는, 당시로는 엉뚱하게 보였을 나의 글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다시 길지만, 이를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안식년을 맞아 보름 전에 1년 예정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UCLA에 교환교수로 왔습니다. 아직 집도 구하지 못해 짐도 풀지 못한 처지이지만 첫눈에 봐도 미국은 소문대로 유례없는 경제호황으로 흥청대고 있습니다.

80년대 유학시절 미국은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로 허덕이고 잘 나가던 일본이 건물 기업 할 것 없이 사들이던 것을 목격한 바 있습니다. 그 때와는 정반대로 한국 등 동아시아가 경제위기로 휘청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기사회생하여 제2의 황금기를 구가하는 것을 보니 묘한 느낌이 듭니다.

미국경제가 얼마나 호황인지를 실감나게 해주는 것은 아파트 임대료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뛰어 올랐고 그나마 하늘의 별 따기 식으로 아파트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로스앤젤레스 근교 주택가를 아무리 돌아다녀 봐도 '빈방 없음'이라는 표지뿐이어서 집을 구하지 못해 친구들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중략).

미국의 주류학자들은 이처럼 유례 없는 장기호황이 디지털혁명 등에 의해 경제주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신경제론'을 내세우며 미국의 호황이 계속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론적 논쟁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역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략) 결국 긴 인류 역사 속에서 판단해 볼 때에만 신경제론도 타당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긴 역사적 관점에서 주목할 것은 시장경제 400년 역사 동안 미국에 앞서 세계를 지배했던 제노바, 네덜란드, 영국의 경험입니다. 특히 미국의 호황을 주도하고 있는, 그리고 동아시아의 경제위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국제투기자본 및 금융자본의 팽창과 관련해 이들의 경험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연구자가 잘 지적했듯이, 금융자본의 팽창은 기존의 패권체제 그리고 이에 기반한 세계경제가 황금기를 지나 조락(凋落)의 계절로 가고 있다는 증거라는 점입니다. 경제가 쇠퇴기에 접어들어 생산적 부문에 투자할 곳이 없어짐에 따라 돈이 주식 등으로 몰려 금융자본이 번창하게 됐다는 얘기입니다. 제노바, 네덜란드, 영국의 쇠퇴기에도 지금처럼 금융자본이 기승을 부린 바 있습니다.

섬뜩한 것은 그 다음 얘기입니다. 이같은 경제쇠퇴설에 대해 미국의 주류학자들은 현재의 호황을 증거로 콧방귀를 뀌고 있지만 제노바, 네덜란드, 영국 역시 현재의 미국처럼 패권 붕괴기에 위기가 계속되다가 갑자기 경제가 다시 살아나 상당기간 호황을 누리는 '좋은 시절(벨 에포크)'이 있었습니다. 죽기 전 모든 것을 불사르는, 일종의 황혼의 마지막 몸부림이라고나 할까.

역사에 의하면 일반적 통념과 달리 현재의 호황이야말로 미국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인 셈입니다. 바로 이 점들 때문에, 세계경제사의 권위자들은 동아시아의 위기는 한낱 지나가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며, 시대적 대세는 중국 일본을 축으로 하는 동아시아로 세계경제의 패권이 넘어가는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거시적인 역사적 관점에서 현재를 분석하고 이에 대응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특히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라는 미국경제 모델의 추종을 조심해야 합니다. 역사에는 흥망성쇠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집조차 구하지 못한 설움 속에 로스앤젤레스의 밤 언덕에서 미국의 흥청거림을 바라보며, 자연과 역사의 섭리를 어떤 사회과학 이론보다도 더 탁월하게 형상화한 우리의 옛 노래를 흥얼거려 봅니다. '달도 차면 기우나니, 차차차.'




▲ 지난해 9월 패닉 상태에 빠졌던 월스트리트ⓒ로이터=뉴시스

역시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금융자본의 득세는 역시 "가을이 왔다"는. "하나의 사이클이 끝나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한국에서 온 이름 없는 학자가 미국의 호황을 보면서 오히려 "호황은 쇠락의 증거"라는, 엉뚱한 글을 쓴지 채 10년이 되지 않아 미국중심의 세계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극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이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미국경제 모델의 추종을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 모델을 추종했고 그 결과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민생파탄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 결과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묻지마 지지'를 초래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주목할 것은 금융위기가 발생한 뒤 경제전문가들에게 누가 이에 대한 책임이 있느냐는 설문조사를 하자 클린턴 전 대통령이 상위권을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즉 클린턴은 금융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해 거품을 만들고 이를 통해 일시적인 미국경제의 부활과 호황을 선물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금융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다시 말해, 클린턴 시기의 미국경제의 호황은 금융규제 완화에 기초한 거품에 크게 의존했던 것이었던 셈이다. 마치 김대중 정부가 카드발급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해 일시적인 경제호황을 유도했지만 결국 카드대란을 자초한 것과 마찬가지였던 꼴이다.

안타까운 것은 9.15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역사에서 전혀 배우지 못하고 금융에 대한 규제를 오히려 완화하고 신자유주의를 강화하는 청개구리 정책을 펴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이 같은 정책을 비판해온 정운찬 총리 내정자가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 나아가 자신의 소신을 발휘해 이명박 정부의 위험한 역주행에 제동을 걸어줄 수 있을지, 비상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정 내정자가 잘 지적했듯이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한 뉴딜은 이명박 정부가 생각하듯이 단순한 토목공사를 통한 노가다 경기부양책이 아니라 와그너법 등을 통해 노동조합을 보호하고 소득재분배를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따라서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신자유주의나 4대강 죽이기 같은 토목공사로는 일시적인 경기부양에는 성공할지 모르지만 위기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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