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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학' 타령이 어리석은 네 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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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학' 타령이 어리석은 네 가지 이유

[철학자의 서재] 조안 시울라의 <일의 발견>

올해도 대학 수시 지원이란 바람이 거칠게 몰아닥쳤다. 서로가 좋은 대학이 가려고 난리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한 번 더 물어보자 좋은 대학이란 무엇인가?

대부분의 입시생들은 사회적으로 명문이라는 소문난 대학을 좋은 대학이라 여기고 가능하면 그곳에 지원할 수 있기 바란다. 하지만 "가능하다면"이란 조건을 고려해 보면 사실 자신이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은 한정되어 있다. 할 수 없이 주어진 조건 안에서 보다 더 좋은 대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보다 더 좋은 대학은 또 무엇인가?

여기서부터 대한민국의 입시생들은 일 또는 취업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앞으로 뭐하고 살래", "어떻게 먹고 살래" 등 취업에 대한 온갖 위협에 이미 충분히 노출된 대한민국의 학생들에게 대학은 이 지상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관문인 것이다.

좋은 대학은 취업률이 높은 학교, 좋은 전공은 취업이 잘되는 학과. 이처럼 대학의 '좋음'의 관계는 '일을 얻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는다. 하지만 도대체 일이란 무엇이며 일은 왜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생계를 위해 돈을 벌 필요가 없어질 경우에도 일은 해야 하는가? 이미 충분한 돈을 가진 부자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은 아직 돈이 더 필요해서일까?

▲ <일의 발견>(조안 B 시울라 지음, 안재진 옮김, 다우 펴냄). ⓒ프레시안
시울라의 <일의 발견(Working Life)>은 이처럼 일에 대한 근본적은 물음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시울라가 주장하는 바는 일에 대한 우리들의 일상적인 태도가 일종의 문화적 산물이며 특정한 가치에 대한 선호도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핵심을 찾는 것 못지않게 핵심에 이르는 과정을 좇아가는 것도 책 읽는 재미 중에 하나인데 시울라의 책은 그런 재미를 갖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이 가진 또 다른 매력은 주제와 대척 관계에 있는 것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일과 대척 관계에 있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여가이다. 하지만 그녀는 "평화나 적당한 미덕, 교육 없이는 여가도 가질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 말을 인용함으로써 일의 대한 성찰 못지않게 여가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일에 대해 성찰하는 것은 많은 지혜를 주는 가치 있는 일이라 해도 현실은 항상 그런 것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치나 의미를 떠나서 '그냥' 해야 할 일도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대학 입학시 취업이 잘되는 또는 취업 전망이 좋다고 하는 학과나 전공을 좋은 대학으로 '그냥' 꼽을 것이다. 물론 그런 학과는 있다. 하지만 다음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① 학부 4년을 졸업해서 정규직으로 취업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졸업생 83%(2007년기준)가 4년제 대학교를 진학한다. 이러한 수치는 대부분의 고등학교 졸업생이 대학을 간다는 것이고 그래서 대학은 이제 일종의 대중교육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많은 대학 졸업생들 중에서 사회는 어떤 사람을 원하고 있을까? 바로 전문가다.

사실 대부분의 한국 대학이 교육 목적으로 삼는 것은 "전문인 양성"이다. 대부분의 4년제 대학 교육 과정 중 약 70%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전문 교육, 즉 학과 교육(전공 교육)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4년간 공부를 하면 전문인이 될 수 있느냐? 혹은 전문인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냐 하는 것이다.

② 학부 4년 졸업으로 전문인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어렵다.

사실 취업이란 것이 단순히 일자리를 얻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리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 무슨 일이라도 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말입니다.

문제는 더 좋은 일자리를 얻는 것인데 그런 일자리는 전문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자리는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도 더욱 전문가 필요하다고 하고 더 많은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도 한다. 그게 우리나라 대학 교육 추구하는 목적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 대학 교육은 4년간 학부 교육만으로 전문인을 양성하기에는 힘든 환경에 놓여 있다.

첫째 이유는 많은 인원을 전문인으로 교육하는 데 필요한 시설과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대학의 80%가 사립대이고 사립대 운영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등록금이다. 따라서 한국의 사립대는 대학 운영에 필요한 안정적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보다 많은 정원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의 대학들의 정원에 비해 한국 대학의 정원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인원을 모두 전문인으로 양성할 수 있는 시설과 전문 교수 인력을 갖추고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대학에 입학하는 인원이 늘었다는 것은 그것과 비례하여 이 인원 모두를 전문가로 교육할 많은 시설과 인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한국의 대학들은 이 부분에서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의 기초 교육 수준이 너무 낮다는 것이다.

전문인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의 전문 교육이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지원자가 갖추고 있는 능력도 중요하다. 그런데 대학입학을 정상적 사회인이 되기 위한 필수 과정 혹은 일종의 신분 상승 기회로 여기는 한국 사회 풍조는 자신의 정석과 능력을 고려하여 학과와 대학을 선택하기 보다는 가능한 사회적 평판이 좋은 대학과 취업이 유리하다는 학과를 선택하는 경향을 낳았다. 이러한 현상에는 대학입시를 위해 수능 성적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둔 고등학교 교육도 한 원인이 된다.

이러다 보니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 중에는 고등학교 시절에 읽어야 할 책도 읽지 않는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때 익혀야 할 지식과 가치관 그리고 건강한 인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신문도 읽지 않아서 사회에 대한 지식과 상식도 부족한 경우가 많다. 정상적인 전문가 교육을 위해 갖추어야할 인성과 가치관 , 기본 자질 등 한마디로 기초 지식과 능력이 너무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수님들은 학생들에게 전문 교육을 본격적으로 실시하기에 앞서 전문 교육을 위한 기초 교육을 다시 하는 경우가 많다. 4년간의 전공교육이 2~3년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래서 대학 4년간의 교육으로 전문인을 양성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게 된 것이다.

③ 4년간 대학에서 전공한 전문 영역으로 취업하기가 어렵다.

2007년 학술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인문계 학과나 전공을 졸업한 4년제 대학생들 중 30% 정도가 4년간 배운 전공과 일치하여 취업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공계는 70% 정도.

이러한 통계는 전체 대학을 조사한 평균치이다. 소위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취업율은 생각보다 그 차이가 훨씬 크다. 4년간 비싼 등록금과 경비를 지출하고 하나의 전문학과, 전공을 공부했는데 그 분야로 사회에 진출할 수 없다면 4년간 투자한 그 돈은 어떻게 되는 건가?

설사 대학 4년간 특정한 전공, 학과를 졸업한 후 그 분야로 취업한다고 해도 여전히 또 다른 문제가 남아 있다.

④ 한국 노동 인구의 평균 이직 회수는 3회 이상이다.

한마디로 하나의 전공을 살려 평생 직업으로 삼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직이라는 것도 동일업종으로 한다는 보장이 없고 오히려 전혀 낯선 일은 해야 할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적이다.

현대 사회는 그 만큼 변화의 속도가 빨라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문인 수요도 급격하게 변한다. 그러니 지금은 잘 나갈 것 같은 전공도 10년 후를 장담하기 어렵고 반대로 지금은 별다른 전망이 없는 전공이 10년 후에도 여전히 그럴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거나, 하지 않을 수 있는데 하는 것은 자신의 신념이나 의지에 따른 가치 있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할 수 없어서 못하거나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일반적인 행동이다. 그런데 할 수 없는 것인데 하려고 하고 할 수 있는 것인데 하지 않으려는 행동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현재 우리나라의 고등교육의 현실을 고려하면서도 여전히 좋은 일, 좋은 직업을 위해 대학을 꼽는 경우가 있다면 이 세 번째 행동에 속하는 것이라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할 수 없고 얻을 수 없는 것을 공연히 시도하기 보다는 그것을 그토록 원하는 자신에 대하여 반성하는 것이 오히려 남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희망하는 그 '일' 자체와 그러한 '일'을 바라는 자신에 대하여 성찰하는 것은 보다 더 가치 있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현실적이기도 하다.

'철학자의 서재'는 <프레시안>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서평 연재입니다. 매주 주말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자들이 심사숙고해 선정한 책을, 철학자가 직접 심혈을 기울여 쓴 서평으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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