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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4번이나 해고당한 이유가 뭐냐고요?"

올 한 해 비정규직 구속 92명, 해고 1362명

안기호(40) 씨. 그는 천안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해 서울의 한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1992년에 울산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 뒤 2001년에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한 하청업체에 입사했다.

노동조합이 뭔지도 모르던 그는 2003년 5월 현대차 비정규노조를 만드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사업장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일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서는 노조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4차례의 해고와 3번의 복직**

안 씨는 노조를 만든 뒤 4번의 해고와 3번의 복직을 경험했다. 2003년 6월에 첫번째 해고를 당했는데, 그때 사측 관리자는 "사람이 남아돌아 계약해지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안 씨는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조치였다"고 생각했다. 같은 시기에 노조 간부들이 함께 해고됐기 때문이다. 그의 노조 활동이 지속되면서 해고와 복직이 반복됐다.

안 씨는 현재 해고자이면서 동시에 전과자다. 오랜 기간 수배자 생활을 한 끝에 결국 지난 2월 구속됐다. 7개월 간 복역하고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검찰의 기소장에는 업무방해, 폭력행사 등 5가지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돼 있다. 그렇지만 안 씨는 그게 불법행위라 해도 자신으로서는 불가피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안 씨는 "처음에는 평화적으로 여러 차례 삭발투쟁도 하고 단식투쟁도 했다. 동료들과 함께 정당하게 집회신고를 했고, 회사 밖에서 집회를 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원청은 전혀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요컨대 평화적인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을 감수하더라도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불법이라고 하지만 그의 행위라고 해봐야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고 동료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생산라인을 세운 것과 공장 안팎에서 집회를 하다가 이를 저지하려는 회사 관리자나 용역 경비대와 몸싸움을 한 것이 전부다. 폭력 혐의로 구속됐던 그이지만, 맞은 걸로 따지면 회사 측보다 자신과 동료들이 훨씬 더 많이 당했다고 한다.

***노조 인정 요구는 끝내 외면당하고**

안 씨가 해고와 복직을 반복하고 구속을 감수하면서까지 요구했던 것은 다름 아닌 '비정규직 노조 인정'과 '불법적으로 사용된 파견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이었다. 하지만 원청업체인 현대차는 "하청업체 직원들의 노조를 원청이 왜 인정해야 되느냐"면서 안 씨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끝내 수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도 안 씨 등의 주장이 지나치다고 판단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노동부는 지난해 현대차를 대상으로 불법파견 노동자 사용 여부를 조사한 뒤 현대차 울산공장, 아산공장, 전주공장에서 일하는 1만 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두 '불법파견 노동자'라고 판정했던 것.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는 범위를 한정하고 있는데, 그 범위를 넘어 파견노동자를 사용했을 경우에는 노동부가 '불법파견' 판정을 내릴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불법파견 판정은 원청이 이 하청 노동자의 사실상의 사용주라는 의미다. 결국 현대차가 불법적으로 파견이라는 형식을 빌어 안 씨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부도 인정하는 정당한 요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안 씨는 회사 측은 물론 정규직 노동자들, 그리고 이 사회로부터 외면당했고, 이에 항의하다가 해고되거나 구속됐던 것이다.

***올해 비정규직 노조활동가 중 구속자 92명, 해고자 1362명**

안 씨의 경험은 사실 비정규직 노동자 혹은 비정규직 노조 활동가들의 일반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과 불합리한 처우에 항의해 노조를 만들지만 그로 인해 해고되는 모습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전비연, 의장 구권서)가 22일 공개한 '2005년 비정규노조 탄압 현황' 자료를 보면, 안기호 씨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올해 한 해 동안 비정규노조 활동을 이유로 구속(이후 석방된 사람 포함)된 사람은 모두 92명이다. 계약해지, 즉 해고됐거나 업체의 폐업으로 자동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는 1362명에 이른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 동안 노동계로부터 '신종 노조탄압 수단'으로 지목되고 있는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 액수는 올해 약 1489억 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 내용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올해 한 해 동안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으로 부각시킨 사업장들의 이름을 만날 수 있다. 예를 들면 불법파견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폭로한 현대차의 아산공장, 전주공장, 울산공장과 하이닉스-매그나칩 공장, 11일 동안 크레인 고공농성으로 사회에 충격을 줬던 현대하이스코의 순천공장, 건설노동자들의 처참한 노동조건을 알리는 기회가 됐던 울산 건설플랜트 현장 등이 거명돼 있다.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민주정부가 들어선 지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노동 현장에는 여전히 안기호 씨와 같이 해고와 복직, 구속을 거듭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노사문화의 현주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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