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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왜 '박원순'을 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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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왜 '박원순'을 쐈나?

[홍성태의 '세상 읽기'] 박원순을 위하여

국가정보원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상대로 명예 훼손에 대한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배상하라고 요구한 돈이 무려 2억 원에 달한다. 30억 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한 부유층인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에게 2억 원은 별다른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을 것도 같지만 변호사 일은 이미 오래 전에 제쳐두고 시민운동에만 몰두하고 있는 박원순 상임이사에게는 엄청나게 큰돈일 것 같다.

아무튼 참으로 희한한 손해 배상 소송이다. 최고의 정보기관이자 최강의 권력기관인 국가정보원이 일개 시민단체의 상임이사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정말로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정보원이 명예 훼손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박원순 상임이사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국가정보원이 희망제작소를 돕거나 희망제작소와 함께 일하는 개인과 지방자치단체에 압력을 행사해서 희망제작소의 활동조차 대단히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자신의 말에 대해 국가정보원에서 문제로 삼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자기가 기다리는 바라고도 얘기했다. 이 말이 보도되고 얼마 뒤에 참여연대에서 박원순 상임이사와 간담회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박원순 상임이사는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 있다는 말까지 했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시대를 역행하는 국가정보원의 사찰과 압력에 대해 많은 자료를 수집했고, 이 사실을 밝혔다는 이유로 국가정보원이 자신을 투옥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가정보원은 박원순 상임이사를 투옥하는 대신에 거액의 명예 훼손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이에 대해 영광이라고 또 다시 직격탄을 날렸지만 아마 그도 국가정보원이 이런 식으로 대응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국가정보원이 명예 훼손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국가정보원도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이미 여러 비판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예 훼손 죄는 개인의 인격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 단체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지적과 국가기관인 국가정보원이 개인을 상대로 명예 훼손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국가기관의 존재 이유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법학자들의 지적을 보노라면, 아무래도 국가정보원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소송을 제기한 것 같다.

▲ 17일 오전 국가정보원의 명예 훼손 손해 배상 소송을 정면 비판하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그는 대한민국의 명예 훼손은 내가 아니라 국가정보원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시스

그렇다면 국가정보원은 왜 무리한 소송을 제기했을까? 국가정보원의 문제를 새삼 국민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해서일까? 우리는 여기서 '위축 효과'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박원순 상임이사의 말이 잘못된 것이라면 국가정보원은 그 사실을 철저히 밝히면 된다. 그렇게 하면 박원순 상임이사의 신망은 크게 낮아질 것이고, 국가정보원의 신뢰는 크게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은 그렇게 하는 대신에 거액의 명예 훼손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렇다고 해서 물러날 박원순 상임이사가 아니지만 일반 시민들은 역시 국가정보원이 무섭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될 것이다. 국가정보원에 대해 비판하고 나서면 박정희, 전두환 시대처럼 강제 연행돼 고문당하고 투옥당하지는 않을지라도 그보다 더 무서운 손해 배상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위축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위축 효과'를 노리고 무리한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면 그것은 그 자체로 국가정보원의 큰 잘못이 아닐 수 없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맞서서 민족·민중사회학의 길을 열고 실천한 고 김진균 교수는 일찍이 '유언비어의 사회학'이라는 논문을 써서 문제는 유언비어 자체가 아니라 유언비어를 만드는 사회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독재 정권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기초인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억압하고 일방적인 홍보를 강화해서 국민들을 세뇌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사람은 진실을 알아낼 수 있는 지적 동물이고, 독재 정권의 홍보와 세뇌는 결국 무너지고 만다. 유언비어는 독재 정권의 홍보와 세뇌에 맞서는 하나의 방책이고, 또한 유언비어는 결국 독재 정권의 홍보와 세뇌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말 유언비어가 문제라면 그것을 만들어내는 독재 정권을 개혁해야 한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참여연대를 창립자이자 대표자로서 많은 활동을 펼쳤다. 그는 장하성 교수와 함께 소액주주운동을 펼쳐서 재벌개혁운동의 새로운 길을 열었고, 총선시민연대를 주도해서 정치개혁운동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참여연대는 한국을 대표하는 시민단체로 우뚝 서게 되었다.

이런 성과 위에서 그는 2002년에 참여연대를 그만두고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설립해서 시민운동의 새로운 길을 열었으며, 더욱 최근에는 희망제작소를 설립해서 지역과 생활에 밀착된 새로운 시민운동을 적극 펼치기 시작했다. 한때 박원순 상임이사의 활동은 직접적인 정치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대단히 강력한 정치적 폭발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희망제작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그의 활동은 정치로부터 상당한 거리를 두고 이 사회의 기초를 다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쩌면 박원순 상임이사의 활동은 정치적인에서 탈정치적인 것으로 옮겨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더욱 더 분개하고 있는 것 같다. 지역과 생활에 초점을 맞춘 자신의 탈정치적 활동조차 이명박 세력은 정치적 활동으로 규정하고 억압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에 대한 흉흉한 소문은 이미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시작되었다. 청와대와 국정원에서 최열 대표와 박원순 상임이사에 대해 샅샅이 뒤졌고, 그 결과 최열 대표는 미숙한 회계 처리 때문에 부당한 혐의로 걸려서 고생하게 되었으나, 박원순 상임이사는 회계도 잘 처리해서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보수 세력은 내심 박원순 상임이사를 괴롭히고 싶었으나 결국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자 한편으로 몹시 분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놀랐다는 식의 얘기도 돌았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한국의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인물이다. 그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국가정보원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나섰을 것으로 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신뢰도로만 따지자면 아마도 박원순 상임이사가 국가정보원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무턱대고 박원순 상임이사를 믿을 이유는 없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정보원이 소송을 제기한 것은 어쩌면 큰 다행일 수 있다. 이제 법정에서 누가 거짓말을 하고, 정말 명예 훼손을 하고 있는가가 낱낱이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국가정보원이 거짓말을 하고 박원순 상임이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면, 국가정보원은 박원순 상임이사에 대해 얼마나 큰 손해 배상을 해 줘야 할 것인가?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정보원의 신뢰가 땅을 파고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국가정보원이 시민을 감시하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이에 대해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공개적으로 밝힌 시민사회의 지도자를 대상으로 국가정보원이 거액의 명예 훼손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도 희한한 일을 넘어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루빨리 모든 사실이 있는 그대로 밝혀져서 잘못이 바로잡히기를 바랄 뿐이다.

박원순 상임이사의 활동과 언행에 비추어 보았을 때, 국가정보원과 관련해서 그가 느꼈을 분노와 우려는 대단히 컸을 것이다. 그와 같은 시민사회의 지도자가 더욱 자유롭게 활발히 활동할 수 있어야 이 나라의 미래도 더욱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정보원이 박원순 상임이사에 대한 소송을 철회하고 진정으로 소통하는 방식으로 잘잘못을 밝히기를 바란다. 국가정보원이 위장 전입 문제나 열심히 다룬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시대의 어둠은 폭력으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홍보나 세뇌의 방식으로도 오고, '삽질 경제'의 대대적인 강행으로도 오고, 명예 훼손 손해 배상 소송의 방식으로도 온다. 이 나라의 '진정한 선진화'를 위해서 우리가 겪고 있는 희한한 일들은 하루빨리 끝나야 할 것이다. 더욱 더 큰 문제는 시대의 어둠을 틈타서 이익을 챙기는 부패의 무리들이 벌써부터 준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시대의 어둠을 더욱 짙고 넓게 확산시키고자 한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시대의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오랫동안 애써온 이 나라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다시 시대의 어둠에 맞서는 길에 나선 그를 위해 김광석의 '일어나'를 전한다.

검은 밤의 가운데 서 있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봐도 소용없었지

(…)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 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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