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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사관계가 꼴찌인 진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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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사관계가 꼴찌인 진짜 이유는?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국가경쟁력 높일 방법은 따로 있다

지난 8일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 발표가 있었다. 2009년 한국의 순위가 19위로 6계단이나 내려앉았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잘나갈 때는 11위(2007년)였던 국가경쟁력 순위가 '기업 프렌들리'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 2년을 지나면서 19위로 곤두박질 쳤으니, 정부와 재계 그리고 보수언론이 느끼는 당혹스러움이 오죽할까 싶다.

언제나 그랬듯이 보수언론과 우익집단은 노동조합 때문이라며 혹세무민(惑世誣民)을 한다. "국내 노동시장 효율성이 2008년 41위에서 2009년 84위로 곤두박질쳤으며, 노사협력 부문도 95위에서 131위로 최하위 수준에 머물렀다"는 WEF의 주장을 들이댄다. 한마디로 노사관계가 꼴찌라서 국가경쟁력이 떨어졌다는 거다.

'좌파' 정부보다 못한 성적표를 받은 '우익' 정부는 멋쩍었는지 세계은행이 낸 '기업하기 좋은 국가 순위'를 홍보한 기획재정부의 보도자료에서 횡설수설이다. "WEF는 설문방식을 3분의 2나 사용하여 설문 대상자의 주관적인 의견을 반영시키는 비율이 높다. (…) WEF의 설문조사가 주로 실시된 5월 당시의 경제, 사회상황 악화도 국가경쟁력 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 ⓒ뉴시스
WEF의 국가경쟁력 평가 지표 가운데 설문조사를 통한 응답으로 개인의 편견이 가장 많이 반영되는 분야가 노동 영역이다. 편파성으로 가득 찬 인사들에게 설문을 돌려 그 답을 받았으니 노동 분야 평가가 바닥을 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가경쟁력 순위와 관련된 해외 단체의 발표가 얼마나 황당하게 이뤄지는 지는 필자가 "삼성이 준 자료라는 얘기는 왜 쏙 뺐니?: '세계 경쟁력 순위'의 실체"라는 제목으로 소개한 국제경영개발원(IMD)의 사례를 참고하면 된다.)

사실 WEF나 IMD 두 기관 모두 노동 분야의 문외한들이라 제대로 된 정부나 기관이라면 이들의 노동 분야 분석을 중시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통계나 법제도 그리고 전문가들의 평가는 제쳐두고 특정 성향이 두드러진 인사들의 편협한 의견을 수집해 전체 의견인양 포장하는 수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노사관계는 세계 꼴찌가 아니라는 말인가. 물론 필자도 한국의 노사관계가 세계 꼴찌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선진국과 비교한다면 확실하게 꼴찌다.

각국 정부가 정식으로 참여하는 국제기구들 가운데 노동 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기관으로 국제노동기구(ILO)가 있다. 유엔 산하 기관인 ILO는 국제노동기준을 만드는 것을 자기 임무로 한다. 한마디로 국제 수준의 노동법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 정부도 1991년 가입한 ILO는 협약(Conventions)의 형태로 국제노동기준을 만드는 데, 2009년 9월 현재 188개의 협약이 만들어져 있다.

ILO협약은 결사의 자유, 단체교섭, 아동노동, 강제노동, 차별 금지, 노사정 대화, 노동행정, 근로감독, 고용안정, 사회보장, 임금, 노동시간, 직업안전보건, 모성보호 등 노사관계의 다양한 영역을 포괄한다.

국제법의 효력을 갖는 ILO협약은 회원국 의회의 비준을 거쳐 국내법적 효력을 발휘한다. ILO협약을 비준한 정부는 관련 법제도와 관행을 협약의 정신에 맞게 개선하거나 신설할 의무를 지닌다. 국제 비교를 해보면,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경제가 발전한 나라일수록 ILO협약을 더 많이 비준하는 경향을 띤다.

이는 WEF 2009년 국가경쟁력 지표에서 10위권 안에 든 나라들을 보더라도 분명히 드러난다. ILO협약 188개 가운데 10위권 정부들의 비준 협약수를 보면 스위스 47개, 미국 14개, 싱가포르 20개, 스웨덴 77개, 덴마크 63개, 핀란드 82개, 독일 72개, 일본 41개, 캐나다 28개, 네덜란드 82개다. 19위인 한국은 24개의 협약을 비준했다. WEF 지표 상위 10개국 가운데 한국보다 적게 ILO협약을 비준한 나라는 미국과 싱가포르뿐이다.

21세기 들어 세계 경제를 주름잡고 있는 브릭스(BRICs) 국가들도 대부분 한국보다 비준 협약수가 많다. 브라질 81개, 러시아 53개, 인도 40개, 중국 22개로 중국을 뺀 모두가 한국보다 많았다.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0개 회원국으로 넘어가면 이러한 경향은 더 분명해 진다. OECD 회원국이 비준한 ILO 협약의 평균 개수는 63개로 한국의 2배를 훌쩍 넘는다. 한국보다 비준 개수가 적은 나라는 미국과 아이슬란드에 불과하다.

ILO 협약을 통해본 국제노동기준의 측면에서 한국의 노사관계는 세계 꼴찌 수준이다. ILO협약은 국제 수준의 노동법인데 188개 협약 가운데 24개밖에 비준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국제 기준에서 볼 때 노사관계 법제도가 그만큼 미약하다는 말이다.

▲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연일 '노동유연성'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강변하고 있다. ⓒ뉴시스
사정이 이러한 데도 노사관계의 국제경쟁력을 이야기하면서 노동문제와 관련하여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기관인 ILO가 만든 국제노동기준을 거론하는 정부 당국자나 언론인은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의 수준이 그렇다 보니 공신력도 별로 없는 외국 기관이 한마디 하면 정부부터 언론까지 온 나라가 호들갑을 떠는 천박함이 만연해 있다.

세계 꼴찌 수준인 노사관계 때문에 국가경쟁력이 정말 걱정된다면 장날마다 약장수처럼 찾아오는 WEF나 IMD같은 사설 기관의 상술에 놀아나는 행태를 반복해선 안 된다. 유엔 산하의 공식 국제기구인 ILO의 노동기준 협약에 관심을 갖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더 많은 협약을 비준하기 위해 노사정 3자가 머리를 맞대는 게 유일한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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