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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계 고3 현장실습생들의 '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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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계 고3 현장실습생들의 '신음'

학교와 정부당국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돼

"우리가 어디 있는지 학교에선 몰라요." "어떤 업체인지 몰랐어요." "서약서 쓰래요." "계속 말을 바꿔요."

17만 명 정도인 것으로 추정되는 실업계 고등학교 취업반(3학년) 학생들이 법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고 있다. 직업교육훈련이란 명목으로 짧게는 34시간, 길게는 6개월 동안 '현장실습'에 나선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이 사회의 '쓴맛'을 보는 정도를 넘어 인권침해까지 당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실업계 고교생 현장실습 실태 발표**

민주노동당, 인권운동사랑방, 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 등으로 구성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14일 지난 8월부터 5개월 동안 실업계 고등학생들의 현장실습과 관련해 문헌자료 분석 및 심층 인터뷰을 실시한 결과를 공개했다.

실업계 고등학생들의 현장실습 실태는 2003년 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가 전국에 걸쳐 755명의 실업계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벌인 실태조사를 통해 일부 드러난 바 있다.

이번에 인권네트워크는 현장실습 중 최근 급증하고 있는 간접고용 형태의 현장실습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간접고용 형태의 현장실습이란 인력파견업체, 용역업체, 사내하청 등을 통해 실습을 하는 경우를 뜻한다.

***"학교는 학생을 파견업체에 떠넘기고…"**

인권네트워크에 따르면 사내하청으로 실습을 나간 학생들의 경우에는 실습장소가 어디인지를 학교에서 파악하고 있었지만, 인력파견업체로 실습을 나간 학생들의 경우에는 학교에서 인력파견업체의 주소와 연락처만 알고 있었을 뿐 실습을 나간 학생들이 실제로 어디에서 일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지 못했다.

인권운동사람방의 배경내 상임활동가는 "학교가 현장실습이 실제 이뤄지는 업체의 사정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학생들을 무책임하게 인력파견업체에 떠넘겨버리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학생은 어디서 일하는 건지도 모른 채 짐을 싸고…"**

학교는 학생들이 어디서 일하는지 모르지만, 학생들은 일할 곳이 어떤 곳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현장실습을 나가고 있었다. 인권네트워크와 인터뷰에 응한 36명의 학생 중 24명은 실제 근무지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답했다.

"학교 취업지도실에서 소개문을 보고 o업체(인력파견업체)에 실습을 신청했어요. 어디서 일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실습나간 거예요. 짐 싸들고 학교(광주 소재) 앞으로 모이라고 해서 학교 정문 앞에 가서 버스 타고 ㅅ식품(실습업체)으로 갔어요"(ㄱ공고, 김 아무개)

"학교 직업보도실에서 실습업체로 소개된 (주)ㄷ테크 이름을 봤어요. 제조업체라고 생각했죠. 이름부터 그렇잖아요. 전공이 기계 쪽이니까 관련 있는 업체겠다 싶어 신청했죠. 나중에 보니 '인력파견업체'였지 뭐에요"(ㄱ전자고, 박 아무개)

***계약서가 없는 경우도 태반, 쓰더라도 잘 안 지켜져**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일반적인 취업의 경우 근로기준법에 따라 근로계약을 맺지만, 이들 현장실습생의 태반은 '현장실습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대개의 경우 실습의 조건도 모르고 일을 시작하거나, 구두로만 계약조건을 통보받는다는 것이다.

"시급이 얼마인지만 알고 신청했어요. 어디서 근무하는지도 몰랐고, 야간근무를 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담임선생님은 주5일 근무라고 했는데, 막상 와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주야 2교대였죠. 일주일에 하루, 주야 근무조가 바뀌는 날에만 쉬는 거에요."(ㅊ고, 진 아무개)

"아직 월급을 안 받아봐서 얼마인지 몰라요. 기숙사에 같이 있는 사람들한데 들은 말로는 한 80만 원 정도 된대요."(ㅍ고, 고 아무개)

계약서를 쓰지 않았지만, 구두라도 실습조건을 통보받는 경우에도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는 없었다. 실습교육생들은 업체가 "계속 말을 바꿔요"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ㅇ업체(인력파견업체)에서 점심시간이 1~2시간 될 거라고 했어요. 근데 막상 ㅅ업체(실습업체)에 가보니 점심시간이 20분밖에 안 되는 거에요. 점심시간이 1시간인 줄 알고 밥 먹고 쉬고 있는데 감독 아저씨가 빨리 안 오냐고 막 소리를 질렀어요. 진짜 황당했어요."(ㄱ공고, 김 아무개)

"학교로 보낸 소개서에는 한 달에 100만 원에서 110만 원 정도 된다고 써 있었어요. 학생인데 100만 원 정도 받으면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신청했죠. 그런데 막상 가보니 하루 일당이 2만5000원이고, 한달 기본급이 75만원이지 뭐에요."(ㄱ전자고, 박 아무개)

***"학교에서 전화 한 통도 없었어요"**

상황이 이 정도이지만, 일차적으로 학생들을 관리할 책임이 있는 학교당국은 이같은 사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인력파견업체'가 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학교마저 있다고 한다.

"인력파견업체요? 그게 뭡니까? 아~ 아웃소싱 같은데 말이군요. 요즘엔 워낙 아웃소싱 업체에서 의뢰를 많이 해와서 그쪽 아니면 내보낼 곳도 찾기 힘들어요. 그쪽도 괜찮은 곳인데, 뭐가 문제예요?"(실업계 교사, 전남)

학생들은 사후관리를 하지 않는 학교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

"실습제도가 있는 건 좋은데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전화 한 통 하지 않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해요. 회사에서 하기 싫어도 잔업해야 한다고 협박하고 그러는데, 학교에서 나서주면 좋잖아요?"(ㅅ공고, 허 아무개)

"실습 나온 지 두 달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학교에서 한 번도 찾아온 적 없어요. 시험 때문에 우리가 직접 담임한테 전화한 것 빼고는 학교에서 전화 한 통도 없더라구요. 전혀 신경을 안 써주니까 서운하죠."(ㄴ고, 민 아무개)

***교육부 "우리 소관 아니다"…그럼 어디?**

현장실습 나가서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고 있는 실업계 고등학생들에 대해 정부당국은 어떤 태도를 갖고 있을까?

인권네트워크에 따르면, 일선 학교에서 현장실습이 애초의 취지에 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지도감독해야 할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은 기본실태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들은 △간접고용 현장실습 실태 △산하 학교에 대한 지도감독 여부 등을 알기 위해 지난 8월 교육부와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을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소관 자료가 아니다"며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고, 교육청도 일부만 제외하고 "해당 학교에서 자료를 받아라"고 답했다.

사실상 교육당국이 실업계고 학생들의 현장실습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셈이다.

인권네트워크는 "실업계 고등학생들의 현장실습이 파행을 거듭하고, 그 과정에서 인권침해 수준이 심각한 것은 학교와 정부당국이 책임을 방기하기 때문"이라며 "정부당국이 책임을 지고 현장실습생 인권 보호를 위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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