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 재판이 계속해서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1일 철거민 피고인 변호인단이 사임한 데 이어서 8일 열린 재판에서는 재판부가 국선 변호인을 동원해 공판을 강행했다.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한양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용산 참사 공판에서 피고인들은 "사선 변호인을 새로 선임할 때까지 재판을 연기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에 앞서 7일 피고인들 중 불구속 기소된 이들이 재판정에 공판 연기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피고인 이충연 씨는 "구속 기간 내 변론 마무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게 더 중요하다"며 "오늘 공판에 나오는 철거 용역들은 (이와 관련된) 비중이 크다"고 주장했다.
"대화 한 번 하지 않은 사람이 우리 변호사라니…변호사 선임 시간 달라"
이충연 씨는 "이곳에 나온 국선 변호사는 우리와 대화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이라며 "우리에게 어떤 변론을 하겠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아 걱정이 크다"고 재차 사선 변호사를 선임할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법이 한도 하는 내에서 충분히 기회를 제공했다. 더 이상 방어권 남용은 용납하지 못한다"며 "국선 변호인도 충분히 이 사안을 파악하고 있기에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재판을 강행했다.
그러자 이충연 씨는 "재판에 응할 수 없다"며 "재판부와 반대로 돌아앉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투쟁의 장으로 재판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돌아앉게 될 경우 불이익을 받게 되니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행동이) 지시나 사주에 의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더 이상의 용납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1일 피고인들은 재판 연기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의 항의로 반대로 돌아앉았다.
사실상 첫 재판, 하지만 실질적인 변호사 없이 진행돼
이날 열린 재판은 용산 참사 관련 사실상 첫 재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검찰이 철거민들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혐의로 기소한 이후 7개월 동안 7차례 공판이 진행됐지만 유·무죄를 다투는 본격 법정 공방은 고사하고 증인 진술 심리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재판부는 이날 용산 4구역 철거 용역들이 검·경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심리했다. 이 자리에서 검찰과 변호인단은 진술서를 두고 철거 용역 직원에게 실체 확인을 위한 여러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이 사건을, 맡은 지 얼마 안 된 한 명의 국선 변호사가 날선 질문을 던지기엔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국선 변호사는 다른 사건들도 맡고 있다.
검찰과 변호인의 심리 공방을 지켜보다 못한 피고인 이충연 씨는 "가만히 들어봤는데 변호인의 질문 내용이 너무 부족하다. 무력했다"며 "우리도 제대로 방어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공판 연기를 재차 요구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진술된 내용은 조서로 작성되고 있으니 추후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이후 선임되는 사선 변호사가 추가 질문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범대위 "다음 재판 때는 새 변호인단이 변론"
재판부는 앞으로 1주일에 2번씩 재판을 열기로 결정했다. 집중 심리를 요구한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변호인단의 사퇴에 이어 피고인들이 정치적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재판을 방해하고 있다"며 "구속 기간 내에 선고를 하지 못할 경우 또다시 불법 행위를 자행할 우려가 있고 철거민이라 주거지가 불분명하기에 추후 소환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다음 재판은 15일에 열릴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피고인 변호사가 선임되지 않은 상황이다. 피고인들은 7일 새로 선임될 예정인 변호인단을 처음 접견했다. 아직 변호사 선임계는 법원에 접수되지 않은 상황이다.
홍석만 '이명박정권용산철거민살인진압범국민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재판과 관련해 범대위 내부에서 여러 이야기가 오간 것은 사실이지만 이젠 정리됐다"며 "다음 번 재판 때는 새로 선임된 변호인단이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롭게 변호를 맡은 변호인단이 제대로 변호를 진행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수사 기록 3000쪽이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급하게 선임된 변호인단이 날선 변론을 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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