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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소신과 배치되는 정책에 침묵해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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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운찬, 소신과 배치되는 정책에 침묵해선 안 돼"

[인터뷰] 김종인 "4대강-세종시 해결 못하면 명성 유지 못할 수도"

김종인 전 의원은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의 정치적 '멘토'다. 개각 발표 전날인 2일 오전 정 후보자가 자신의 입각을 비롯해 세종시 문제, 4대강 사업 등과 관련해 의견을 나눈 사람도 김 전 의원이다.

지난 2007년 '정운찬 대망론'에 불을 댕긴 주역이었던 김 전 의원은 4일 <프레시안>과 만나 상아탑을 벗어나 관직에 처음 진출하는 정 후보자에 대한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털어놨다.

김 전 의원은 정 총장이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고 "일을 한 번 하면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가끔 피력해온 터에 청와대로부터 총리직 제안이 온 만큼 "(현 정부에) 참여할 의사가 있으면 가라고 말해줬다"고 한다.

▲ 김종인 전 의원 ⓒ프레시안

특히 4대강 사업과 세종시 축소 추진 문제와 관련해 김 전 의원은 "대통령이 집착하는데 그걸 하지 못하겠다면 같이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청와대의 부인과 달리,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정 내정자의 입장에 대한 청와대의 사전 단속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김 전 의원은 "세종시를 축소한다면 충청인들이 반발할 텐데, 그에 대해 보상할 수 있는 대안도 생각해야 할 것"이라며 "그런 점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먼저 분명하게 하고 들어가라고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세종시 축소 추진 발언이 나오자마자 자유선진당과 민주당 등 야당은 '사퇴'까지 거론하며 발톱을 세웠다. 김 전 의원의 조언대로 정 후보자는 기자간담회에서 "충청도 분들이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 여러 가지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고 밝혔으나 수정 계획에 대한 정교한 설명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의원도 이를 의식한 듯 "큰 부담을 안고 들어가서 속으로는 걱정이 된다"며 "본인의 역량으로 풀어가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그는 "(4대강 사업과 세종시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면 자기 명성을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피하기 어려운 두 가지 난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총리 정운찬'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총리로서의 성공도 담보되지 않았을 뿐더러 야권과 진보적 지식인들로부터 '투항'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이명박 정부의 총리직을 맡아야 했을까?

김 전 의원은 "최근 정 후보자를 보면 서울대 총장을 하면서 조직에 대한 통솔 경험도 쌓였고 경제정책 같은 문제에 대해 시의에 맞는 글을 쓰거나 제자들과 토론도 많이 해서 현실 경제 상황과 국제경제 상황에 대해 자기 나름의 분명한 입장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고 했다. 김 전 의원은 "생각만 하면 뭘 하나. 현실에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효과를 낼 수 있다면 정부에 들어가서 하는 게 국민을 위해 좋다"고 '정운찬의 모험'을 긍정 평가했다.

김 전 의원은 특히 이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한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 사업은 어쩔수 없더라도 "자신의 소신과 배치되는 정책이 나왔는데도 묵묵히 있어선 안 된다"며 "그런 부분에 대해 (청와대에)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가는 게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 전 의원은 특히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 윤진식 청와대 정책실장 등을 거론하며 "이번에 청와대 개편을 한 걸 보니 경제 운용을 청와대가 관장해서 하려는 것 같다"면서 이들의 독주를 제어하기 위한 정 후보자의 역할에 주목하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총리의 위치가 겉보기와 달리 권한이 별로 없다는 말을 여러차례 반복하며 이 대통령과의 관계에선 철저히 '낮은 자세'를 주문했다. 김 전 의원은 "총리가 대통령보다 더 빛이 나려고 하면 안 된다. 그런 걸 잘 인식해야 한다"면서 "정운찬 성격으로 볼 때 그걸 요리해 나갈 능력은 있다고 본다"고 낙관했다.

결국 김 전 의원의 바람은 정 후보자가 모 나지 않으면서도 소신을 지키고, 정부와 국민을 위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 후보자가 실질적인 대권 주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정 후보자가 자기의 명성을 쌓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고 했다.

김 전 의원은 "차기 대권이 어떻고, 박근혜 대항마로 기른다고 하는데 이명박 대통령도 개성이 강한 사람인데 자기가 빛이 나야지 총리가 빛이 나는 걸 그대로 보겠느냐"며 "지금은 현직 대통령이 길러서 되는 때가 아니다. 국민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을 아꼈다.

ⓒ프레시안

다음은 김 전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

프레시안 : 정운찬 전 총장의 총리 발탁을 어떻게 보나?

김종인 : 본인이 이명박 정부에 같이 참여할 의사가 있어야 하고 저쪽에서도 필요하다고 해서 요청한 거겠지. 그게 맞아떨어졌으니까 성사된 것이다.

프레시안 : 청와대 발표 전에 정 전 총장이 김 의원에게 자문을 구하지 않았나?

김종인 : 그저께(2일) 아침에 찾아 왔다. 참여할 의사가 있으면 가라고 말해줬다. 그 전날 정정길 비서실장하고 만난 모양인데, 비서실장이 정 총장에게 몇 가지를 확인하려고 한 것 같더라. 그에 대한 답을 즉석으로 할 수는 없고 다음날 하겠다고 하고 나한테 물으러 온 것이었다.

프레시안 : 청와대의 확인사항은 무엇이었고 어떤 조언을 했나?

김종인 : 서울대 총장도 지낸 사람이 평교수로 고뇌만 해봐야 국가에 도움이 별로 안 된다. 본인도 사명감을 가지고 있고 '일을 한번 하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가끔 피력했다. 계기가 마침 찾아온 것이라고 본다.

세종시 문제는 이 대통령이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심대평 대표를 총리로 생각했다가 무산된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을 정 총장에게 맡기면서 총리를 준 것 같다. 충청도 민심도 달래보자는 측면에서 얘기가 나온 거 같은데 어떻게 보면 정 총장에겐 부담이다. 총리로 들어가는데 마치 세종시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처럼 가는 것 같아서 그런 문제에는 분명하게 태도를 천명하고 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줬다. 세종시를 축소한다면 그로 인해 충청인들이 반발할 텐데, 그에 대해 보상할 수 있는 대안도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먼저 분명하게 하고 들어가라고 했다.

정 총장의 생각도 크게 상충되는 것 같지 않았다. (청와대에) '바른 소리 할 테니 잘 들어달라고 했다'더라. 정부에서 자리를 제안을 받았을 때 '황공무지로소이다' 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가서 일을 하지 못한다. 자기 입장을 천명하고 나는 이런 생각하니까 이런 일을 하겠다고 천명하는 게 중요하다.

프레시안 : 4대강 문제는 특히 부담이 클 것 같다.

김종인 : 이 대통령이 4대강에 집착하는데 그러면 그건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같이 할 수 없으니까. 세종시도 마찬가지다. 그런 큰 부담을 안고 들어가서 속으로는 걱정이 된다. 본인의 역량으로 풀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노태우 정부시절 경제수석으로서 지금의 정 총장과 비근한 경험이 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조언하자면?

김종인 : 노태우 대통령은 87년 선거 때부터 모셨지만 나에게 경제수석으로 들어오라고 했을 때는 내 입장을 분명히 얘기했다. 이러이러한 일을 할 테니 이걸 받아주면 자리를 맡겠다고 했다. 서면으로까지 갖다드리고 일을 시작했다. 정운찬 총장도 그런 걸 잘 안다. 정 총장이 98년 DJ 정권 출범 뒤 한국은행 총재직을 제안 받았을 때 어떻겠냐고 물었을 때도 같은 권고를 해줬다. 가서 잘 할 자신 있으면 가고 그럴 자신 없으면 안가는 게 좋겠다고.

최근 정 총장 보면 그동안 총장을 하면서 조직에 대한 통솔경험도 쌓였고, 경제정책 같은 문제에 대해 시의에 맞는 글을 쓰거나 제자들과 토론도 많이 해서 현실 경제 상황과 국제경제 상황에 대해 자기 나름의 분명한 입장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생각만 하면 뭘 하나. 현실에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효과를 낼 수 있다면 정부에 들어가서 하는 게 국민을 위해 좋다. 내가 보기엔 자기 나름대로의 자신이 생긴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도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프레시안 : 청와대 경제팀이나 기획재정부 경제관료들과 호흡이 잘 맞을지가 걱정되기도 한다.

김종인 : 이번에 청와대 개편을 한 걸 보니 경제 운용을 청와대가 관장해서 하려는 것 같다. 강만수 경제특보, 윤진식 정책실장이나 관료출신의 경제전문가들 중심으로. 그 사람들과 일을 해야 한다. 많은 국민들이 '정운찬은 대한민국에서 경제에 대한 일가견이 있다'고 믿고 있다. 정 총장이 가지고 있는 소신과 배치되고 저리로 가선 안 되겠다 싶은 정책이 나왔는데도 묵묵히 있어선 안 된다. 수정을 가할 수 있도록 입장을 표명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정 총장이 쌓은 명성이 무너질 테니 사전에 대통령에게 말해주는 게 좋겠다고 얘기해줬다.

프레시안 : 정 총장이 경제 방향에서 큰 틀에서 대통령과 철학이 같다고 했는데, 같은 면이 어느 정도나 될지 의심스럽게 보는 시각이 많다.

김종인 : 이 대통령이 중요하게 강조한 게 4대강과 행복도시다. 그것을 정운찬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을 한 것이다. 그게 안 맞으면 같이 못한다. 하지만 경제정책에서는 언급이 없다. 그게 정 총장의 부담이기도 하다. 그걸 잘 해결하지 못하면 자기 명성을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 내가 정 총장과 20년 동안 알고 지내면서 나라를 위해 크게 기여하는 길로 갔으면 하고 관찰했다. 여기에서 성공해야 한다.

프레시안 : 이 대통령과 정 총장이 원만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김종인 : 우리가 너무 총리에 대해 기대를 많이 하는데, 우리 정부조직상 총리의 위치를 보면 권한이 참 없다. 말이 총리이고 내각 조정을 한다고 하지, 총리는 내각에 참여해서 발언할 수 있는 권한 말고 장관들 불러서 정책 조율할 수 있는 기능이 별로 없다. 의사결정 조율 과정을 모르면 총리라는 이름이 요란해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대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니다. 대통령 보좌하는 기능밖에 없다. 정 총장도 총리를 맡은 이상은 그걸 각오하고 가는 수밖에 없다.

정운찬 총장도 정부 내부 사정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총리가 상당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도 어느 정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총리로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고 할 수 없는 게 무엇인지를 스스로 잘 알아야 한다. 그것을 잘 모르면 대통령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총리가 대통령보다 더 빛이 나려고 하면 안 된다. 그런 걸 잘 인식해야 하는데…. 정운찬 성격으로 볼 때 그걸 요리해 나갈 능력은 있다고 본다. 사실 그만한 사람도 없지.

프레시안 : 이명박 대통령은 정 총장 때문에 득을 좀 볼 것 같다.

김종인 : 대통령 취임 이후에 한 인선 중에서는 최고로 잘 했다. 이 대통령으로선 그 자체로 득을 본 거지. 정운찬이라는 개인은 상당한 희생을 감수하고 들어갔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정 총장도 자기 생각을 세상에 피력해보려면 자리가 필요한 것이고, 그러려면 일정한 희생을 각오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야당은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앞으로 정 총장에 대한 공격도 많을 듯한데.

김종인 : 민주당 친구들은 정운찬이 자기들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총리로 가니까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자기들이 이런 사람 모셔다가 뭘 해보려는 능력은 없지 않은가. 자기들 밥그릇 챙기느라고.

ⓒ프레시안
프레시안 : 김 의원 이름이 언론보도에서 총리 물망에 오르다가 정운찬 총장으로 낙점 되는 과정을 보면서 김 의원이 천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김종인 : 아니다. 나는 이런 식의 인사 행태 자체가 형편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 개인적인 명예도 생각해야 하는데, 남의 이름을 하등의 접촉도 없이 후보로 압축을 했다느니 떠드는 게 형편없다. 비밀리에 사람을 잘 골라서 발표하는 날 터뜨리는 게 맞는 거지.

프레시안 : 정 총장 본인은 일단 대권 도전을 부인했지만 총리직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에 따라 더 큰 꿈을 꾸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김종인 : 정 총장이 자기의 명성을 쌓느냐에 따라 달려있는 거다. 2007년에 여권의 대통령 후보감 들여다보니 하도 없어서 내가 정운찬 총장을 후보로 띄워 간 적도 있는데, 그건 이제 지나간 상황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총리 자리란 실질적으로 자기 명성을 보존하는 자체도 힘들다. 국회에 가서 시달려야지, 어려운 질문에 모두 답을 해내야지, 그러다보면 국민 눈에는 이상하게 비친다. YS 정부 때를 보면 총리하면 다 대선후보야. 이수성, 이홍구, 이회창…. 하지만 총리만 되면 대권주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행정시스템을 모르는 얘기다. 이회창도 자기의 정치적 역량이 없으니까 기회를 두 번 놓친 것이다.

나는 정 총장이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 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도 개성이 강한 사람이다. 자기가 빛이 나야지 총리가 빛이 나는 걸 그대로 보겠나? 빛나는 일은 대통령에게 미루고 후진 일을 감당하면 국민 눈에는 형편없이 보일 것이다. 언론을 보니 차기대권이 어떻고, 박근혜 대항마를 기르네 하는데 지금은 현직 대통령이 길러서 되는 때가 아니다. 대통령이 이 사람을 후계구도로 생각하겠다는 건 옛날 사고방식이다. 국민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달려 있다. 당분간은 (대권 관련한 관측을) 안 하는 게 좋겠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정 총장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종인 : 그 정도는 알아서 잘 할 사람이다. 그동안 총장도 하고 경험을 다 했기 때문에 자기 처신을 잘 하리라고 본다. 하여튼 총리라고 하는 자리가 별 볼일이 없다. 내각제에서의 대통령이라고 보면 된다. 내가 경제수석 할 때 강영훈 총리에게 무얼 부탁했더니 일주일쯤 뒤에 '총리는 힘이 없나봐' 하더라. 그게 현실이다. 이 대통령이 정 총장에게 어떤 권한과 역할을 줬는지 모르지만, 한승수 총리를 보면 자원외교나 하는 게 총리 역할 아니었나. 이 대통령의 정부운영 행태를 보면 모든 중요한 사안은 자기 입에서 발표하는 스타일이다. 총리가 특별히 자기를 위한 이미지 메이킹을 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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