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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힘들어? 그럼 십시일반 해야지!

[뉴스메이커] 인디포럼이 '채무변제 파티'를 개최하는 이유

독립영화 감독들이 직접 꾸려가는 영화제인 인디포럼이 '채무변제 파티'를 연다. '그렇다면 십시일반'이라는 부제를 달고 9월 12일 명동의 한 호프에서 일종의 일일호프를 여는 것이다. 인디밴드들의 공연도 있고 소유진, 김꽃비, 최희진, 이영훈 등의 배우들이 인디포럼을 지지하기 위해 참석할 예정이다. 그런데 '채무변제'라니, 아무리 독립영화가 어렵다지만 대체 뭘 얼마나 빚을 졌길래?

사정은 이렇다. 인디포럼은 독립영화 감독들이 인디포럼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를 결성하고 직접 프로그래밍부터 영화제 운영을 도맡아 매년 열어온 영화제다. 작가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이송희일 감독의 말대로 국내에서 연차가 가장 오래된 영화제이자 국내 대표적인 독립영화제다. 올해부터는 매달 '인디포럼 월례비행'을 개최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일정한 주제하에 독립영화를 상영하고 관객과의 대화 자리를 마련하는 등, 영화제뿐 아니라 상시적인 조직으로 독립영화와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해왔다. 이러한 경비는 작가회의에 가입한 독립영화 감독들의 회비와 인디포럼을 후원하는 후원회원들의 회비로 충당돼왔고, 인디포럼 영화제를 개최하는 데에 드는 돈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서 지원하던 단체사업 지원금을 받아 해결했다. 그간 인디포럼이 영진위로부터 받았던 지원금은 매년 1,000만원에서 1,900만원 사이에 걸쳐있다.

문제는 올해 영진위에서 또렷한 이유없이 인디포럼을 단체사업 지원 대상에서 탈락시킨 것. 인디포럼 사무국에서 밝힌 바로는, "영진위 측에서는 자기들이 요구하는 조건에 인디포럼이 몇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고만 말했을 뿐 구체적인 이유를 명확히 말해주지는 않았다." 서류가 미비하다면 보강해서 다시 내겠다고 했지만 영진위에서는 그저 "재심이 있을 것"이라고만 대답했다. 그러나 7월 16일 단체지원 대상이 발표된 직후부터 지금까지 재심 일정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그간 인디포럼이 매년 단체지원금을 받고 정산을 제출한 데에서 별다른 지적을 받은 적은 없었다. 결국 인디포럼은 영화제를 개최하는 데에 들었던 돈 중 1,000만여 원을 고스란히 빚으로 떠안았고, 이를 십시일반하자며 파티를 개최하게 된 것. 작가회의의 감독들은 그러나 "일일호프를 해서 돈을 번다면 얼마나 벌겠는가. 이 자리는 오히려 이런 일로 쓰러지지 않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다지고 이 의지를 다른 이들과 함께 공유하며 서로 힘을 주고받자는 취지"라고 말하고 있다.

▲ 올해 인디포럼은 영화제는 성공리에 치렀지만 영진위의 지원금이 끊기면서 비용을 고스란히 빚으로 떠안게 됐다. (사진제공 _ 인디포럼)

일각에서는 영진위의 조치에 대해 결국 "촛불집회 참가 단체들을 색출해 차별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며 반발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영진위 단체지원 사업에서 탈락한 곳이 인디포럼뿐 아니라 인권영화제, 서울국제노동영화제 등 하나같이 정치색을 드러내는 데에 비교적 거리낌이 없던 단체 및 영화제들이기 때문이다. 영화계에서 보수 원로들을 중심으로 한 단체인 영화인협회와 비교적 젊은 진보 인사들로 구성된 영화인회의는 모두 작년까지 지원을 받았지만 올해 영화인회의는 지원대상에서 빠졌고, 스크린쿼터연대 역시 올해 지원대상에서 제외됐다. 게다가 작년 말 국정감사 때 한나라당 의원들 입에서는 "영진위에게 지원받은 단체들이 죄다 촛불과격시위단체들이다, 불법시위 잘하라고 영진위가 후원해준 거냐"는 비난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올해 5월에는 각종 대형 영화제들까지 포함시킨 소위 '불법폭력시위단체 명단'이 경찰청에 의해 유포되며 각종 공적지원금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이 전달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다들 쉬쉬해서 그렇지 심지어 연 5백만 원 가량 정도의 소규모 지원을 받았던 작은 영화제를 포함해 온갖 영화제 및 영화단체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감사가 벌써 몇 달째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감사 결과 통보가 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 채 그저 무성한 추측만 낳고 있을 뿐이다.

반면 새로이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단체들 중 일부는 뉴라이트 문화예술재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거나 올해 초 급하게 결성된 단체도 있다. 영진위 관계자는 "딱히 촛불단체냐 아니냐와 같은 사항이 아니라 사업내용과 기금운영기획, 집행이행능력 여부 등 사업성에 대한 여러 가지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진보적'이라는 딱지가 붙은 몇몇 다른 영화제들 중 심사를 통과해 지원대상으로 선정된 곳이 없지는 않지만, 이런 상황에서 '진보적 영화단체에 대한 이념적 차별이 횡행하고 있다'는 주장은 일정 정도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념이나 정치색을 다 떠나서, 그간 사업이행에 문제를 지적받은 적이 없는 단체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탈락하는 한편, 검증받은 적이 없는 신규 단체들의 새로운 사업들이 대거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영진위의 명확한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영진위는 단체지원사업 결과를 공고하면서 밝힌 예비심사평에서 "심사는 '예산계획' 부문보다 공익성 · 기여도 · 독창성 등 '사업계획' 부문과 신인도 · 실적 등 '단체현황' 부문에 비중을 더 두었으며, 유사한 사업은 신규보다 기존 사업에, 비 영화단체보다 영화단체 사업에 더 주목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별개로, "그간 너무 정부 지원금에 의존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인디포럼의 채무변제 파티 초청장에는 "그간 인디포럼을 비롯한 다른 군소 영화제들이 정부 보조금에 길들여져 행여 자생성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치열한 사유와 반성이 함께 곁들여지기를 원합니다."라는 구절이 포함돼 있다. 인권영화제의 김일숙 사무국장 역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영진위 지원금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해온 게 사실인데, 생각해보면 반성할 점도 있다. 영화제에 대한 후원회원을 적극적으로 모으는 일을 게을리했다는 얘기"라고 피력한 바 있다. 시민단체의 사업이 국가기관 및 공공기관의 지원금 여부에 따라 존립이 흔들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으며, 지원금에 기대지 않더라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생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얘기다.

영진위 지원의 형평성이나 합리성 문제와는 별개로, 자생력을 갖추는 것은 영화단체는 물론 모든 시민단체들이 함께 공유하고 풀어야 할 숙제이긴 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찝찝한 점이 남는다. 대체 반성과 자성은 왜 하던 사람들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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