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대한 첫 번째 열쇳말은 영화의 원작으로 알려진 <공공의 적들: 미국의 최대 범죄 증가와 FBI의 탄생>이다. 이 논픽션은 존 딜린저뿐만 아니라 1930년대 당시 미국을 주름잡았던 주요한 갱들을 통틀어 다룬다. (공공의 적이 아니라 공공의 적'들'임을 주목하자!) <퍼블릭 에너미>에는 존 딜린저 외에도 당대를 대표했던 갱들이 다수 등장한다. 예컨대, 연방요원 멜빈 퍼비스의 소개와 함께 프리티 보이 플로이드가 등장하고 앨빈 카피스, 베이비 페이스 넬슨과 같은 갱이 존 딜린저의 동료로 역할을 수행한다.
▲ 퍼블릭 에너미 |
전설적인 갱들 중에서 마이클 만은 왜 하필이면 존 딜린저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것일까. 잘 알려졌듯, 존 딜린저는 대중을 열광시킨 스타였다. 그런 현상은 존 딜린저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중 알 카포네는 선과 악의 개념이 희박해진 사회 분위기를 틈타 매스컴 노출을 꺼리지 않고 도리어 언론을 자기 입맛에 따라 의도해 존 딜린저 이전 스타의 지위를 획득했다. 문제는 <퍼블릭 에너미>가 다루고 있는 시기(1931~1935)에 알 카포네는 이미 수감상태(1932~1937)였던 것.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로 유명한 '보니와 클라이드'도 그런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대중을 매혹시킨 경우였지만 1967년 이미 아서 펜 감독에 의해 뛰어나게 영화화됐다는 점에서 마이클 만에게 존 딜린저는 원작의 방대한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었던 셈이다.
갱들을 향한 대중의 열광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생명줄을 조인 결과가 됐다. 공권력의 입장에서 이는 자신들을 향한 반감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그 결과,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간동안 '공공의 적들'은 FBI에 의해 대부분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퍼블릭 에너미>는 존 딜린저의 실패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갱들의 실패의 역사로 치환해도 별 무리는 아니다. 안 그래도, 영화는 탈옥에 성공한 존 딜린저가 동료를 잃는 반(半)실패의 순간으로 시작해 그 자신이 목숨을 잃는 최종적인 실패로 마무리 짓는 구성을 취한다.
스타의 죽음은 곧 대중의 절망을 의미한다. <퍼블릭 에너미>를 읽는 두 번째 열쇳말이다. 존 딜린저가 활약하던 당시는 악명 높은 대공황시기로, 물가는 치솟고 실업은 만연했으며 그로 인해 정부를 향한 국민의 반감이 최고조에 이르던 때다. 대중은 공권력을 유린하는 존 딜린저의 일거수일투족에 대리만족했다. 더욱이 그의 내적 배경은 약자가 감정이입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시민의 돈은 건드리지 않고 인질 삼지도 않는 의적다운 면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연인 빌리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상류층 인사들의 코트를 맡아주는 사환이었다.
지난 기사에서도 밝혔지만 빌리는 당시 대중, 그리고 오늘날의 관객을 대리하는 인물로 기능한다. 그래서 빌리에게 어서 옷을 달라며 함부로 구는 신사에게 존이 한방 날리는 대목에서는 어떤 쾌감이 존재하고,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고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선 스릴이 느껴지며, 존 딜린저가 FBI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 연민의 감정이 강하게 피어오른다. 그것은 <퍼블릭 에너미>가 존 딜린저를 영웅으로 칭송했기 때문이 아니라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다뤘기 때문에 생긴 결과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존 딜린저와 멜빈 퍼비스, 두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마도 그런 점 때문에 이 영화의 로맨틱함이 부각되는듯하지만 그런 낭만조차도 극중에서는 그들의 사랑에 관객을 동참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그러니까 영웅의 시대에 대한 향수처럼 보이는 낭만성은 함정으로 봐도 무방하다. 마이클 만은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인디애나 주립교도소, 리틀 보헤미안 트래블로지와 같은 실제 장소에서의 촬영을 통해 관객을 그 시대의 한복판에 위치시키고 촬영자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HD카메라로 이미지를 감각하고 체험토록 한다. <퍼블릭 에너미>는 한마디로 유튜브 시대가 창조한 갱스터물이다.
마이클 만의 HD카메라는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지운다. <퍼블릭 에너미>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열쇳말이다. 존 딜린저가 바이오그래프 극장에서 <맨해튼 멜로드라마>를 관람하는 장면은, 그래서 중요하다. <맨해튼 멜로드라마>에서 클라크 게이블이 연기한 블래키는 존 딜린저를 모델로 한 캐릭터다. 마이클 만은 특별히 존 딜린저가 블래키의 사형 장면에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 장면에서 블래키는 사형을 앞두고 당당한 것과 달리 이를 선고한 주지사는 굉장히 곤혹스러워한다. 곧이어 지명수배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영화를 보고 극장 입구를 나선 존 딜린저는 비겁하게(?) 뒤에서 급습한 FBI에 의해 사살 당하는데 이 상황은 블래키의 사형 장면과 정확히 포개진다.
존 딜린저는 현실이 영화가 되고 영화가 현실이 된 세상에 살았던, 아니 주도했던 첫 번째 인물이다. 나는 이 점이야말로 마이클 만이 존 딜린저를 영화화한 결정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존 딜린저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영화와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세상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퍼블릭 에너미>를 보고 있자면 1930년대와 2000년대의 시대적 상황이 전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에 따른 혼돈의 시대, 빈익빈 부익부의 간극이 커져갈수록 선과 악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현실은 영화를, 영화는 현실을 모방하기에 이른다.
불안한 시대는 징후를 부른다. 이제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는 쾌락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할리우드의 최근 영화적 전략은 시대의, 사회의 징후를 포착해 혁신적인 대중영화로 체화하고 이를 체험하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다. 마이클 만은 오락성과 예술성을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하는 할리우드의 가장 중요한 작가다. 그는 이전부터 장르영화를 다루면서도 영화의 현실성(reality)에 대한 자각을 결코 놓지 않으면서 필모그래프를 발전시켜왔다. <히트>로 생생한 거리 총격전의 신기원을 이룩했고 <콜래트럴>과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HD카메라를 도입해 전쟁 뉴스릴과 같은 총격 장면을 선보인 후 <퍼블릭 에너미>에서 시각적 체험을 넘어 감정의 체험까지 그대로 재현하기에 이르렀다. 할리우드 대중영화의 첨단을 이끄는 마이클 만이 이후 작품에서 도달하게 될 영화의 경지가 어디일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