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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이후' 한국 정치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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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이후' 한국 정치의 과제

[의제27 '시선'] '대안적 민주대연합'을 위하여

지난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고인을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내게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억은 각별하다. 1986년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참여했다가 구속되어 추운 겨울 서대문 감옥에 수감되어 있을 당시 낯선 이름으로 보낸 영치금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돈을 보낸 사람이 누군지 듣고 나는 크게 놀랐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에게 왜 그런 성의를 보낸 것일까? 그 후 감옥에서 나온 대학생들에게도 '동지'라고 부르던 그 정치인이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1992년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를 은퇴한 후 영국 캠브리지에 왔을 때 다시 만났다. 그 때 나는 캠브리지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학생회에서 초청한 강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남북관계에 대한 식견과 통일에 대한 신념에서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후 김대중 전 대통령은 풀리지 않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카터 전 대통령이 특사로 평양에 방문할 것을 제안했다. 결국 카터 전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을 만나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정치지도자가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었다.

민주주의, 인권, 평화의 지도자

한국 현대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발자취는 매우 크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상고 졸업의 학력으로 정치에 뛰어든 이후 국회의원 6선을 거쳐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고인의 삶의 역정이 역사에 남긴 유산은 그의 경력의 성취보다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가치와 목표이었다. 그의 전 생애는 한국의 민주주의, 인권,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것이었다.
▲ ⓒ연합

1998년 15대 대통령에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국정지표로 삼고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여성부를 설치해 인권과 민주주의의 실질적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생산적 복지'를 내걸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국민건강보험, 고용보험, 국민연금을 도입해 복지국가의 기초를 만들었다. 초고속정보통신망을 확대하고 정보통신산업의 성장과 벤처기업의 붐을 일으켜 정보통신강국을 만들었다.

'햇볕정책'이라고 불린 대북포용정책은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결실을 맺었다. 이는 냉전의 최고절정에 이르렀던 시절부터 '3단계 통일방안', '4대강국 교차승인', '공화국연방제'를 제안했던 원대한 비전이 맺은 결실이기도 하다. 2009년 8월 12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장 잘한 일로 남북관계 개선(27.7%)을 꼽았다.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평양을 방문한 것이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적대적 상태로 대립했던 남북관계를 변화시키고 햇볕정책의 추진으로 남북 교류와 협력을 확대한 것을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햇볕정책이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었다"(52%)는 의견이 "도움이 안되었다"(36%)는 의견보다 훨씬 많았다. 이는 대북 지원이 김정일 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기여했다는 '퍼주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이 높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렇게 햇볕정책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많은 것은 최근 남북관계가 악화된 현실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DJ와 한국 정치의 유산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 정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정치지도자이다. 그는 수십 년 동안 군사정부의 탄압을 뚫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고난의 역정으로 '인동초'와 비유된다. 평생 현실정치에 몸을 담그면서도 민주주의, 인권,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킨 강인한 신념의 인물로 평가를 받는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후에도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며 이명박 정부를 향해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6월 11일 6.15 남북공동선언 9돌 기념 특별연설에서 "과거 50년 동안 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가 위태로워 걱정"이라며 "행동하지 양심은 악의 편"이라며 국민의 행동을 촉구했다.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민주대연합을 위해 "야4당의 단합"과 "민주시민사회와 연합"을 부탁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용공' 사상을 가진 위험한 정치인이라고 매도했다. 그리고 지역주의의 피해자인 동시에 지역주의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사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에서 '빨갱이'와 '전라도'라는 수식어는 평생 그림자처럼 쫓아다녔다. 이러한 '낙인'은 그가 수많은 좌절과 박해를 받았던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켰다는 점에서 보면 그의 사상이 '용공'이라는 주장은 억측에 불과하다. 오히려 관치경제와 재벌을 비판한 '대중경제론'이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질서자유주의를 표방했지만) '디제이노믹스'(DJnomiics)로 바뀌어 경제민주화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른 한편 그가 지역주의의 수혜자라는 말도 진실과 동떨어진 말이다. 이는 마치 감옥에 억울하게 구속된 사람에게 당신은 감옥에서 주는 밥을 먹고 이불을 덮고 있으니 감옥을 이용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지역주의의 피해자였던 호남 사람이 뭉쳐 지역주의에 저항한 것도 다 같은 지역주의라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조지 오웰이 말한 '뉴스피크'(Newspeak)와 뭐가 다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국 정치에 남긴 정말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그는 군사독재라라는 괴물과 맞서 싸우면서 바로 그 괴물과 닮아가는 야당을 만들었던 것이다.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제왕적 총재가 되고, 그의 측근들이 의사결정과정을 장악하고, 그의 전권을 위임받은 사무총장이 공천과 자금을 장악하는 정당은 그야말로 가신주의 정당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대통령만 바라보다 역사 속에서 명멸했던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의 비극적 운명과도 겹쳐진다.

1998년 정권 교체 이후에도 정당의 현대화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의 주요 정책은 정당이 아니라 청와대의 비서들과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결정했다. 노무현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때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고의 힘을 발휘했다). 한국의 정당은 자생력이 없고 단순히 선거를 위한 기계에 불과했다. 모름지기 민주적 정당은 지지자와 깊이 연결되어 민심을 대변하는 한편,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생산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현대 정당의 조직은 싱크 탱크와 미디어 센터 중심을 개편되었다. 당원의 상향식 공천을 강화하고 풀뿌리 차원에서 정책결정의 참여를 확대하려고 노력한다. 국회의원 중심의 원내정당을 강화하고 국회의 효율적인 입법과정에 많은 힘을 쏟는다. 하지만 한국의 정당은 행정부에 비하면 너무 왜소하고 시민사회의 일상생활과도 너무 동떨어져 있다.

'대안적 민주대연합'이 시급한 과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민주당은 고아가 되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 노무현이 없는 민주개혁세력이 방향감각을 잃을 것"이라고 걱정한다. 실제로 한국의 민주개혁세력은 기로에 서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리더십의 불안으로 국민의 신뢰를 충분히 받고 있지 못하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정당은 아무런 비전도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뚜렷한 정치지도자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정치 리더십이 불안할 때 의회정치보다 거리정치가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뉴욕대학교 클레이 서키 교수가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에서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을 강조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급변했다. 한국에서도 사회는 현대화되었는데, 정당은 아직도 현대화되지 못했다. 한마디로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최근 민주당이 민주정부 10년 평가 작업을 추진하고 '통합혁신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제2창당' 또는 '친노신당'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1980년대 정치민주화와 직선제 개헌을 내걸고 민주진영이 투쟁했듯이, 지금이야말로 장기적 비전과 구체적 정책목표를 국민에게 제시하는 '대안적 민주대연합'이 필요한 시점이다. 야당 4당, 시민사회, 진보적 지식인, 온라인공동체를 망라한 대연합의 정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민주당과 진보세력이 제대로 국민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일자리, 교육, 복지, 삶의 질 등 국민이 바라는 절실한 요구를 의회에서 대안으로 제시하고 시민사회에도 호소해야 한다. 지금 민주당과 진보세력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정당의 현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국민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대변하려는 노력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국민이 바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는 것이다. 국민과 같이 가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고 말했다.

* 이 글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서 발간하는 월간 '동향과 분석' 134호(2009년 8월 27일)에 게재된 기고문의 일부를 인용했으나, <프레시안> 게재를 위해 대폭 수정, 보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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