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로 예정된 정기국회가 정상적으로 열릴 경우 법안 통과 여부를 두고 정부와 여당, 야당 간 치열한 입법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25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09년 세제개편안'은 '경기회복세를 뒷받침'하되, 서민·중산층을 지원하고 '재정건전성도 제고'한다는 일견 상충되는 듯한 목표 달성을 위해 마련됐다. 정부는 △민생 안정 △지속 성장 △과세정상화 △건전 재정을 4대 중점 추진 방향으로 잡았다.
특히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정부는 감세로 대표되는 기존 세제방향을 일부 틀었다. 사실상 지난해 출범 이후 지속된 'MB식 세제철학'에 문제가 있었음을 스스로 자인한 셈이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이번 세제개편으로 인해 내년도 이후 세수가 총 10조5000억 원 정도 증가할 것"이라며 "부분적으로는 고소득자와 대기업이 증가분의 80~90%를 부담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정책은 △고소득자·대법인에 대한 비과세·감면 축소 △부동산 양도소득 예정신고세액공제 폐지 △금융기관 이자소득에 대한 법인세 원천징수제 부활 등이다. 윤 장관은 "기업 프렌들리라는 원칙 하에 '감세를 통한 경제회복'이라는 구상이 희석된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기본적으로 그렇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더 깎아야 한다"는 정부 철학이 비상 경제로 말미암은 재정확장 기조에 따라 발생한 '돌발상황' 대응책일 가능성이 높다. 여전히 감세정책 기조 포기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세금감면 조치가 동시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추가 감세조치는 '미래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이뤄졌다. 올해 세제개편안의 핵심 사항들을 정리해봤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42차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 참석했다. 그는 올해 세제개편안이 성장과 재정균형이라는 목표를 둘 다 잡아야 하는 만큼 어려움이 많았다는 뜻을 표했다. 돌발상황에 정부 철학이 정면으로 부딪힌 결과이며, 이런 정부의 고민은 이번 세제개편안에 묻어난다. ⓒ기획재정부 제공 |
1. 재정 확충
부자 혜택 축소
고소득 근로자와 대기업에 주던 세금 감면 혜택 규모가 줄어든다. 앞으로 총급여 1억 원이 넘는 근로자(총 16만 명, 전체 근로자의 약 1%)는 근로소득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한다. 또 총급여 1억 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근로소득공제율이 종전 5%에서 1%로 축소된다.
종전에는 총급여 수준에 관계없이 연 50만 원까지 근로소득세액이 공제됐다. 근로소득공제율은 급여 수준에 따라 80~5% 수준이었다.
대기업에 주던 혜택도 줄어든다. 앞으로 과표기준 100억 원을 초과하는 기업(약 1000개)은 당초 11%에서 10%로 인하하려던 최저한세율 인하 구간을 지난해 이전 기준인 14%→13%로 환원하기로 했다. 1000억 원 초과 기업 역시 지난해 이전 수준인 15%로 되돌린다. 쉽게 말해 대기업에는 최저한세(기업에 매기는 세금 최저액 한도)를 더 받겠다는 얘기다. 그만큼 세수는 더 늘어난다.
이미 예고된 대로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는 올해 말(일몰)을 기준으로 종료된다.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는 기업이 기계설비 등에 투자할 때 투자액의 일정분을 법인세와 소득세에서 공제해주는 제도다.
윤 장관은 "(임시투자세액공제 도입 후) 20년 넘게 상시 운영되면서 기업설비투자에 대한 단순 보조금으로 변질된 측면이 있다"며 "대신 앞으로는 법인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라고 밝혔다. 달리 말하면 "법인세 인하 기조가 바뀐 것은 아니다"라고 해석 가능하다.
부동산 세수도 확충
부동산부문 세제도 일부 개편된다.
먼저 양도소득에 대한 예정신고세액공제가 폐지된다. 또 예정신고를 의무화했다. 이번 개정안은 내년 초 양도분부터 적용된다. 그 동안은 부동산 양도 후 2개월 이내 예정 신고한 경우 인센티브로 10% 세액공제해줬다.
3주택 이상 다주택자에 대한 전세보증금 소득세 과세도 예정대로 시행한다. 그 동안은 월세임대에 대해서만 2주택부터 과세했으며, 전세임대는 주택수와 관계없이 소득세를 매기지 않았다.
이 대책은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져 자산소득자에 대한 과세형평문제, 세입자 부담 가중 문제 등 논란을 낳았다. 이에 대해 윤 장관은 "전세보증금 합계가 3억 원 이상인 부분에서 60%만 과세한다"며 "과세 강화의 영향을 받는 부분은 약 20만 호 정도로 예상한다. 나름대로는 세입금 인상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제한적으로 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 그 동안 교육용역의 범주에 포함시켜 면세해 왔던 영리목적 사설학원도 부가가치세 대상에 포함시켰다.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정부는 내년 7월 1일부터 무도학원과 자동차운전면허학원 등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영리학원부터 제도를 적용키로 했다.
또 중고차 매입세액공제율과 공제대상을 지금보다 축소하고 영세 자영업자로 보기 어려운 유흥주점 등을 부가가치세 의제매입세액공제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현재는 영세자영업자의 세부담 경감을 위해 매입액의 일정비율 만큼 의제매입세액으로 규정해 공제하고 있으며 이 혜택을 유흥주점도 모두 누려 왔다.
금융 이자소득 징수제 부활
그 동안 소득세와 법인세에 대해 원천징수를 면제받았던 금융기관이 일반법인과 마찬가지로 원천징수 대상에 포함됐다. 앞으로 금융기관이 수령하는 채권이자소득은 개인이나 일반법인과 마찬가지로 14%의 원천징수율을 적용받는다. 다만 내년 원천징수가 이뤄지더라도 내후년(2011년) 법인세 신고시에는 이를 공제받기 때문에 실질 세부담은 없다고 정부는 덧붙였다. 당장 내년 세수를 더 채우고 보자는 계산인 셈이다.
해외펀드의 이점 중 하나였던 소득세 비과세 혜택이 사라진다. 현재는 개인투자자가 국내펀드를 이용해 해외 상장주식에 간접투자할 경우 소득세를 비과세 받았다. 공모펀드와 연기금은 증권거래세 면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ETF(주가연계펀드)는 증권거래세를 부담하게 된다. 이 밖에 장기주식형·회사채형펀드에 대한 세제지원도 일몰종료되며, 장기주택마련저축에 대한 소득공제도 폐지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투자상품들의 실질수익률이 더 낮아지게 된다.
2. 추가 감세 조치
연구개발비 세액공제 신설
앞으로 정부는 신성장동력산업과 원천기술 분야(추후 대통령령에서 규정)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연구개발비(R&D) 세액공제를 신설키로 했다. 이에 따라 신성장동력산업의 경우 20%, 원천기술 부문은 25%의 세액공제율을 적용받게 된다.
또 연구시험용시설과 직업훈련용시설 등에 투자할 경우, 투자액의 10%를 공제해준다. 이들 제도는 오는 2012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녹색감세' 시행
정부가 신성장동력으로 선정한 이른바 '녹색성장'을 위해 세제지원을 실시한다.
앞으로 녹색기술 혹은 녹색프로젝트로 선정된 산업에 조달자금의 60% 이상을 투자하는 녹색펀드, 녹색예금, 녹색채권에 각종 세금 감면혜택을 준다. 녹색펀드는 투자금액의 10%를 소득공제하고, 배당소득은 비과세한다. 녹색예금과 채권은 이자소득을 비과세한다. 오는 2012년 말까지 가입분에 한해 적용된다.
에너지절약시설에 대한 투자금액의 20% 세액 공제 제도를 2011년 말까지 2년간 연장하고, 공제 대상품목에 LED와 플라즈마조명을 추가한다. 다만 일부 대기업에 세제혜택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산출된 세액의 30% 내에서만 공제한다.
이와 반대로 △에어컨 △냉장고 △TV △드럼세탁기 등 4개 '에너지 다소비품목'은 개별소비세를 부과한다.
기업구조조정 촉진
세금감면을 통해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한다고 정부는 밝혔다. 각종 새로운 인수합병(M&A) 유형에 대해 합병 지원세제를 적용, 법인세와 소득세 과세이연, 증권거래세 면제 등의 혜택을 준다.
또 현행 합병·분할 과세체계를 개선한다. 합병·분할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자산의 양도차익에 대해 완전히 과세이연 혜택을 부여한다. 현물출자를 통한 기업간 전략적 제휴와 자본확충도 지원한다. 각각의 기업이 보유한 부동산·기술·자금 등을 공동으로 투자한 법인 설립이 쉬워질 것으로 정부는 전망했다.
윤영선 재정부 세제실장은 "현재는 자본금을 투자할 때 주로 현금을 기반으로 하는데, 앞으로는 기술이나 특허 등에도 시가를 평가해 기업 설립이 원활하게 추진되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조조정기금 사업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매기지 않는다. 구조조정기금은 자산관리공사(캠코)에 설치됐으며 오는 2014년 말까지 약 40조 원 규모로 운영된다.
이 밖에 지방이전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 기간을 현행 '5년간 100%, 2년간 50% 감면'에서 '7년간 100%, 3년간 50%'로 확대한다. 또 서비스산업, 사회간접자본(SOC) 등에 대한 혜택도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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