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법안 처리를 놓고 국회 안팎의 논란이 하나의 쟁점으로 모아지고 있다. 기간제 근로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사유제한' 규정을 둘 것인가 여부가 바로 그것이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경영계와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은 사유제한 규정의 도입에 반대하는 입장인 반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보호를 위해 '사유제한' 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유제한은 무엇을 말하는가?**
현재 비정규직은 84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기간제 근로자가 380만 명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노동계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기간제 근로의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사유제한 규정은 바로 '기간제 근로의 규모를 줄이는 방법' 중 하나다. 사유제한이란 기간제 근로를 사용할 수 있는 '사유'를 범주화해 규정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사유제한의 구체적 항목으로는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이 내놓은 것이 유일한데, 그것은 △출산휴가 및 질병, 부상 등에 의한 결원을 대체하는 경우 △계절적인 사업의 경우 △일정 기간을 정한 사업의 경우 △그 외 일시적 임시직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경우 등 4가지다.
또한 사유제한을 둔다는 것은 기간제 근로, 즉 비정규직을 예외적인 경우에만 쓰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즉 정규직을 일반적 근로형태로 보고 특별한 사유가 발생했을 때만 기간제 근로를 허용하는 것이 경제정의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사유제한에 대해 왜 반대하나?**
기간제 근로를 제어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조처로 사유제한 규정이 도입돼야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그동안의 입법논의 과정에서 사유제한 규정의 도입에 반대하는 입장인 경영계,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한국노총조차도 적극적인 반론을 펴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들은 사유제한 규정의 도입은 매우 큰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제한적'인 이유에서 그 도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우리당에서 노동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이목희 제5정조위원장은 "사유제한이 도입되면 현재 존재하는 다수의 기간제 노동자들이 해고의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주장하고 있다. 이 역시 사유제한 규정의 도입에 따를 수 있는 부작용 중 하나를 거론하는 주장이다.
또한 경영계를 중심으로, 사유제한이 도입되면 노동시장이 더욱 경직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비정규직 법안의 입법취지와 충돌하는 것이기에 경영계도 노골적으로는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사유제한이 필요한 이유**
한편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사유제한'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들은 비정규직 관련 법안 중 다른 내용들은 모두 양보한다 하더라도 사유제한만큼은 관철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을 정도다.
이들이 사유제한에 집중하는 것은 기간제 근로의 남용을 제어할 수 있는 방안으로 현재로서는 사유제한만한 것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 중 하나가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정규직의 규모가 너무 크다는 것인데, 그 규모를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사유제한을 통해 기간제 근로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상시적 업무에 대해서는 정규직을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적 시각도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유제한 규정이 빠지게 되면 사실상 일정 기간 동안 모든 직종과 업무에 대해 기간제 근로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사실상은 현재의 정규직 일자리가 비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마저 열어놓게 된다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기간 제한만으로는 기간제 근로 남용 해소 어렵다"**
사유제한이 힘들다면 기간제한을 통해서라도 기간제 근로의 남용을 제어할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다. 특정 기간 이상 기간제 근로를 사용하고 난 뒤 해당 노동자를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내용이 '기간제한'을 통한 기간제 근로 제어방안이다. '2년+고용의제'로 요약되는 한국노총의 '최종안'도 같은 맥락에 서있다.
하지만 이같은 입장은 여러 측면에서 허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가까운 예로 현재 기간제 노동자의 상당수의 근속연수가 1.8년에 머물고 있다. 이는 한국노총 안이 입법됐을 경우 2년 미만의 기간제 노동자가 양산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노총 역시 기간제한이 사유제한만큼 기간제 근로의 남용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사유제한' 도입될 수 있을까?**
사유제한 규정이 이번 입법에 반영될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의회 다수의석을 점유하고 있는 우리당과 한나라당 모두 사유제한 규정의 도입에 반대의사를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동당이 최근 내놓은 '단계적 처리방안'이 주목되고 있다. '단계적 처리방안' 이란 비정규직 법안의 내용 중 노사 간 의견 접근이 이뤄진 차별금지 항목은 연내에 처리하고, 나머지 항목은 내년으로 논의를 유보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단병호 민노당 의원이 사유제한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우리당 등을 설득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단 의원의 노력이 사유제한 규정의 도입 문제를 놓고 교착상태에 빠진 국회의 논의에 활로를 열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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