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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존 딜린저의 러브스토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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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존 딜린저의 러브스토리인가?

[뷰포인트] <퍼블릭 에너미>를 통해 진화한 마이클 만의 세계

존 딜린저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많다. 시카고를 근거지 삼은 전설적인 갱이었고, 은행 강도, 탈옥, 경찰관 살해혐의 등으로 FBI로부터 '공공의 적 1호'로 지명된 수배자였으며, 동료를 죽음으로 몰고 간 조직원을 매몰차게 처단하는 냉혈한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시민의 돈은 노리지도 않고 인질 삼지도 않는 신사적인(?) 행동으로 미국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일종의 의적이었다.

마이클 만의 <퍼블릭 에너미>는 존 딜린저의 행적을 다룬 논픽션 <공공의 적들: 미국의 최대 범죄 증가와 FBI의 탄생>을 원작 삼았다. 앞서 언급한 사실들은 모두 이 책이 기술하고 있는 것들이다. 다만 <퍼블릭 에너미>는 존 딜린저를 설명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일화들을 극 초반 30분 안에 모두 묘사한다. 그러니까 마이클 만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을 주제료 삼아 영화를 만들 생각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가 가장 관심을 쏟는 부분은 존 딜린저(조니 뎁)와 빌리 프리쳇(마리온 코티아르)의 러브스토리다.

▲ 퍼블릭 에너미

사실 갱스터영화 계보에서 러브스토리는 대개가 사치였고, 잉여였으며, 곁가지였다. <퍼블릭 에너미>는 갱스터영화치고 흔하지 않게 러브스토리가 중심축에 자리한 경우다. 흔히 마이클 만을 언급할 때 떠오르는 대표작 <히트>(1995) <콜래트럴>(2004)에서처럼 두 남자의 대립, 즉 존 딜린저와 그를 쫓는 연방요원 멜빈 퍼비스(크리스천 베일)의 대결구도가 등장하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그들의 심리가 극을 이끌어가는 것은 아니다. (멜빈 퍼비스와 관련한 이야기가 이 영화에서는 잉여며 곁가지다!) 대신 <퍼블릭 에너미>는 존이 빌리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빌리는 그런 존에게 끌리며 결국 그들의 관계가 존 딜린저의 흥망성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따라가는데 주력한다. (마이클 만은 둘의 러브스토리가 이 영화의 중심축이라고 인터뷰를 통해 여러 번 밝혔다.)

마이클 만의 필모그래프에서 러브스토리는 생소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지는 않았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전작 <마이애미 바이스>(2006)에서 강력계 형사 소니(콜린 패럴)와 마약조직 보스의 여자 이사벨라(공리)의 러브스토리는 영화의 정체성을 드러낸 중요한 이야기 축 가운데 하나였다. <마이애미 바이스>를 통해 도시와 범죄의 상관관계를 그리고 싶었던 만은 파국이 쉽게 점쳐지는 이들의 즉흥적인 사랑을 수단 삼아 낭만의 도시에서 쾌락의 도시로 급전직하한 마이애미의 지역적 속성을 끌어낸 바 있다.

마이클 만은 <마이애미 바이스>의 화술을 <퍼블릭 에너미>에서 다시금 활용한다. 단,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존과 빌리의 사랑이 1930년대 당시 범죄가 횡행했던 시카고의 지역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퍼블릭 에너미>를 <마이애미 바이스>와 구별하는 가장 결정적인 차이인데, 만은 여기서 당대 대중이 존 딜린저를 사랑했듯 지금의 관객이 존 딜린저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게끔 연출의 목표를 둔다.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러브스토리가 영화의 수단이었다면 <퍼블릭 에너미>에서는 수단이자 목적인 셈이다.

▲ 마이애미 바이스

풀어서 얘기하자면, 마이클 만이 관심을 두는 것은 존 딜린저라는 인물보다 존 딜린저에 매혹된 그 시대의 분위기다. 더 정확히는 존 딜린저가 대중을 매료시킨 영웅적 환상성이다. 그런 의도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위기에 몰리자 납치를 제안하는 동료에게 존 딜린저가 "경찰을 적으로 돌리면 살아남을 수 있지만 대중을 적으로 돌리면 살아남지 못해"라고 말하는 대사는 이 영화가 지향하는 바를 단적으로 압축한다.

그런 점에서 존 딜린저 역에 조니 뎁을 캐스팅한 감독의 감식안은 탁월하다. 조니 뎁은 맡은 역할에 대해 자기 식으로 소화하는 연기에 탁월하지 몸소 체화하는 연기와는 거리가 먼 배우다. 예컨대, 팀 버튼의 일련의 영화를 통해 상처받기 쉬운 내면을 가진 캐릭터 연기에 탁월함을 보여줬던 그는 <퍼블릭 에너미>와 같은 부류의 갱스터영화 <도니 브레스코>(1997)에 출연, 갱으로 위장한 FBI 역할을 맡아 자신 때문에 생사여부가 불투명해진 중간보스 레프티(알 파치노)때문에 고뇌하는 연기를 선보인 적이 있다.

이렇게 갱스터 장르의 전설적인 대선배 배우인 에드워드 G.로빈슨(<리틀 시저>(1930))이나 제임스 캐그니(<공공의 적>(1931)), 폴 무니(<스카페이스>(1932))와는 정확히 반대 지점에 위치한 조니 뎁은 <퍼블릭 에너미>의 존 딜린저를 갱스터 영화사를 통틀어 가장 로맨틱한 악당으로 연기해낸다. 정말이지 존 딜린저는 사리사욕을 위해서가 아니라 연인 빌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남자로 그려진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던 존이 주변에 매복하고 있던 경찰들의 기습으로 목숨을 잃는 장면에서는 전통적인 선과 악의 개념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존이 죽으면서 빌리에게 남긴 '안녕 검은 새, 나 먼저 떠나'라는 마지막 말이 전해지면 그 순간 우리는 빌리의 심정이 되어 함께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 퍼블릭 에너미

존과 빌리의 관계를 존과 관객의 관계로 전이함으로써 마이클 만 감독은 그 시대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체험하게 만든다. 이는 만 감독이 HD카메라를 고수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마이클 만은 <퍼블릭 에너미>를 HD카메라로 촬영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동시대'(contemporary)라는 말을 써야 할 것이다. 그게 정확히 내가 관객과 맺고자 한 관계다. 가령 나는 1933년을 '보기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1933년에 '있기를' 원했다. 관객도 그렇게 느끼기를 원했다." (씨네21 715호 "진짜 남자인 조니 뎁이 필요했다' 중 발췌)

그의 지론은 촬영 장소 선정에서도 여실히 입증된다. 마이클 만은 존 딜린저가 수감되고 탈옥했으며 FBI와 일대 총격전을 벌였던 실제 '그 장소'인 인디애나 주립교도소, 인디애나 크라운 포인트 교도소, 리틀 보헤미안 트래블로지를 어렵게 섭외해 촬영했다. 그래서 시카고의 지역적 특색을 드러내는 언급은 우연이라고 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영화에서 배제돼있다. 대신 존과 빌리가 처음 만나는 클럽처럼 이들의 사적인 장소가 될 수 있는 공간에 더욱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지역성보다 낭만성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중 존 딜린저가 최후를 맞이하는 바이오그래피 극장은 영화의 낭만성이 가장 최고조에 이르는 장소다. (이곳은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세트로 재현됐다!) 여기서 존 딜린저는 W.S.반다이크가 연출하고 클라크 게이블이 출연한 <맨해튼 멜로드라마>(1934)를 보는데 그가 가장 관심을 보이는 장면은 극중 범죄자 블래키(클라크 게이블)가 사형을 앞두고 보여주는 태도다. 바로 이 지점에서 <퍼블릭 에너미>는 존 딜린저의 미묘한 표정변화에 주목한다. 존 딜린저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것일까? 아니면 죽음을 앞둔 블래키의 태도에서 자신의 면모를 엿본 것일까? 이는 존 딜린저 자신을 제외하면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대목이다.

다만 마이클 만은 영화를 보고 나온 존이 극장을 나서는 즉시 경찰에게 사살 당하는 장면을 통해 존 딜린저와 에드워드 '블래키' 갤러거를 동일시하는 태도를 취한다. (블래키는 존 딜린저를 모델로 창조된 인물이라고 전해진다!) 사형을 앞두고 당당한 블래키와 달리 사형집행을 선고한 주지사이자 형제인 제임스(윌리엄 파웰)는 고통스러워하는 것처럼 죽음에 당당한 존 딜린저와 달리 그의 뒤를 급습한 FBI에게서는 곤혹스러운 태도를 포착하는 것. 극중 존 딜린저의 비극적 최후가 <맨해튼 멜로드라마>와 포개지듯 마이클 만은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당시 대중이 존을 바라본 시선 그대로 관객이 존을 사랑하게끔 <퍼블릭 에너미>를 구성한 것이다.

마이클 만은 (<A.I.>(2001) 이후의)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할리우드에서 오락성과 예술성을 가장 절묘하게 결합하는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다. <퍼블릭 에너미>의 러브스토리는 그 자체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오락적인 볼거리이면서 영화의 태도를 구현하는 작가적 야심이다. 마이클 만은 <퍼블릭 에너미>를 통해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수단에 불과했던 러브스토리의 기능성을 확장하는 동시에 그의 최고 걸작인 <히트> 이후 형성된 세계관에 균열을 가하는 기염을 토한다. <퍼블릭 에너미>가 마이클 만의 최고 걸작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의 필모그래프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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