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1924년 1월 6일~2009년 8월 18일)은 김구 선생(1876년 7월 11일~1949년 6월 26일), 장준하 선생(1918년 8월 27일~1975년 8월 17일)의 뒤를 잇는 민주화 지도자이다. 김구 선생은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애쓰다가 반민족 독재 세력의 흉탄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장준하 선생은 김구 선생의 뒤를 이어 반민족 독재 세력에 맞서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가 뿌리를 내린 대한민국을 이룩하기 위해 애쓰다 역시 반민족 독재 세력의 흉수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 번의 암살 시도와 한 번의 사형 시도를 극적으로 넘기고 결국 대통령이 되어 본격적 민주화의 길을 열었다. 여전히 반민족 독재 세력을 대표하는 박정희와 전두환이 그를 죽이려고 했던 장본인들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그 자체로 한국 민주화운동의 한 정점을 상징했다. 그것은 그를 '빨갱이'라고 부르며 그를 모욕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화운동 전체를 적대시했던 반민주 독재 세력의 힘이 그만큼 약화된 것을 뜻했다. 여기서 나아가 그것은 한국 사회가 반민주 독재 세력의 지배에서 상당한 정도로 벗어나서 합리화되고 정상화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그가 살았을 때 그를 '빨갱이'라고 부르며 모욕했던 자들은 '우뻘'(우익 뻘짓꾼)이라고 불려야 할 비정상적 무리들이다. 이들은 그의 서거에 대해서도 침을 튀기며 욕설을 퍼붓고 있다. 이 비정상적 무리들이 '보수 세력'의 대표로 여겨지는 것은 '보수 세력'을 위해서도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임해서 '보수 세력'에게는 자기정화야말로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와 전두환이라는 두 무시무시한 독재자에 의한 살해의 위기를 천행으로 벗어났기 때문만이 아니라 탁월한 논리와 연설의 능력으로 이 나라를 대표하는 민주화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민주주의는 현대 사회의 정치적 근간이며, 이 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지도자였다.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이론과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김구 선생과 장준하 선생을 잇는 대표적인 민주화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는 다시금 심각한 위기를 맞고 말았다. 여기에는 정치, 경제, 언론, 교육, 문화를 여전히 장악하고 있는 반민족 독재 세력의 영향이 무엇보다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우리는 민주화운동 세력의 무지와 무능에 대해서도 깊이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민주화는 근대화의 정치적 핵심이다.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근대화는 결국 왜곡되고 만다. 그러므로 반독재 민주화는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의 현대사는 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의 역사였다. 민주화운동이 끊임없이 펼쳐져서 결국 민주화에 성공했기에 오늘날 우리는 세계적인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다.
한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신생국들 중에서 고성장과 민주화에 모두 성공한 유일한 나라이다.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앞서 있던 여러 나라들이 이제는 모두 한국보다 뒤진 나라가 되었다. 그 나라들은 민주화에 실패했기 때문에 결국 경제적으로도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독재는 폭력과 부패의 체제이다. 따라서 독재를 통해 일시적으로 고성장을 할 수 있어도 결국은 망하고 만다. 민주화는 근대화의 정치적 핵심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핵심이기도 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무엇보다 반독재 민주화의 지도자로서 중요했다. 그는 박정희와 전두환의 철권통치에 맞서서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국민들을 결집시킨 지도자였다. 물론 그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끈 지도자로서도 중요했다. 그는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복지주의에 대해서도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그야말로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 민주주의, 민족주의, 복지주의의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는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에 비해 복지주의에서는 사실 큰 업적을 이루지 못했다. 노태우가 매표전략으로 강행한 무모하기 짝이 없는 새만금 개발 사업을 중단해서 토건국가를 개혁하고 그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정을 복지와 교육으로 돌려서 '진정한 선진화'의 기틀을 다지기를 기대했으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은 무엇보다 남북관계에서 두드러졌다. 그가 평양에 가서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는 장면은 그 자체로 통일을 향한 남북관계의 새로운 정립을 상징하는 역사적 장면이 되었다. 그러나 반민족 독재 세력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고, 북한의 착오적 행태도 여전히 강고하다. 남북관계의 실질적 개선은 참으로 험난한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도 한국의 개혁이 중요하다. 재벌국가, 토건국가, 투기사회, 학벌사회 등의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남북관계의 실질적 개선을 위한 길도 더욱 단단해지고 넓어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한계도 잊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실질화를 위해서도 복지주의를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재벌국가, 토건국가, 투기사회, 학벌사회 등의 고질병을 시급히 철저히 치유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참으로 험난한 삶을 살았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민주화에 헌신했으며 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민주화는 결코 완료되지 않으며 언제나 새로운 과제를 낳는다. 더욱이 반민족 독재세력의 위력이 여전히 대단한 한국과 같은 곳에서는 민주화에 대한 영속적 관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지난 5월 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때 오열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김 전 대통령의 영혼도 지금 이렇게 오열하고 있을지 모른다. ⓒ사진공동취재단 |
민주화의 성과 위에서 민주화의 진척을 추구하는 '민주화의 민주화'라는 관점을 확립하고 민주주의의 위기에 적극 대처하는 동시에 민주주의의 심화를 이룩해야 한다. 지난 6월에 이명박 독재의 위험을 지적하며 민주화운동의 중요성을 다시금 설파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이 가슴을 파고든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마음으로부터 피맺힌 심정으로 말씀드립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근심하며 영면에 들었다. 그러나 아마도 민주주의의 위기가 해소되고 민주주의의 심화가 제대로 이루어질 때까지 그의 영혼은 안식을 취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다. 그러나 환경 질, 사회 질, 삶의 질은 여전히 개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비정상적 격차를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선진화'의 과제이다. 재벌국가, 토건국가, 투기사회, 학벌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민주화의 민주화'를 이룰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고대한다. 그러나 사실 지도자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주권자인 시민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외쳤듯이, 시민들의 각성과 실천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치 일정을 잊지 말고 우리의 주권을 성실히 올바로 행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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