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가 대통령에 출마-여러 번이었지만- 했을 때 항시 나오던 소리가 있었다. "어떻게 다리 저는 놈을 대통령을 시키냐."
71년 박정희와 대결했었던 대통령 선거전 당시 유세를 위해 승용차를 타고 비포장 시골길을 달리던 그에게 반대편에서 검은색 승용차가 달려들어 덮쳤다. 차는 비탈 옆으로 구르고, 그는 부상을 입어 그날 이후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 증거는 없다. 그러나 누구나 다 알고 인정하는 바, 도주한 그 차량은 중앙정보부의 것이었다.
1994년 1월 18일, 문익환 목사가 돌아가셨다. 통일운동에 일생을 바친 목회자로서, 박정희 정권하에서의 압제와 협박, 회유, 투옥, 고문에 굴하지 않는 분이었다. 김대중과는 절친한 사이는 아니어도 통일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동지로서 연대감이 있었을 것이다.
▲ 늦봄 문익환 목사 장례식에서 유족 문성근 씨의 손을 잡고 오열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노하우 |
그를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평해서는 옳지 않다. 다섯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일생의 절반을 감옥과 가택연금 상태로 보낸 사람은 감성적이라고 해서 울 수 없다.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 당하여 배에 태워져 일본으로 가는 바다에서 던져질 운명에 처했던 그가 지인의 죽음 앞에서 감성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징징'대며 울 수 있겠는가.
그의 소리내는 울음은 그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를 그 긴 시간동안의 고난에 굴하지 않고 질기게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인동초'처럼 견디게 한 것은 철갑의 심장이 아니라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고 열린 마음이었다.
언제라도 필요한 순간에 자신이 입고 있어야 하는 것, 무장해야 하는 것을 버리고 맨 몸으로 설 수 있어야, 그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그 어려움을 진정으로 극복해 낼 수 있다.
사리 하나를 맨 몸에 걸치고 뼈만 앙상한 채로 물레를 젓던 간디를 강하게 만든 것은 강철의 심장이 아니라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위해 사람들 앞에 발가벗고 설 수 있는 용기였다.
힘의 논리에 경도된 자들-그들의 정치적 스펙트럼에 어디에 속하는 사람이건 간에-은 그가 징징대며 우는 것을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김대중은 벗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석달전 노무현의 장례식에서 유족들의 손을 잡고 그는 또 다시 울었다. 소리 내어 울었다. 그 장면을 보면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TV 앞에서 한 없이 눈물 흘리는 내 자신을 보았다.
대한민국의 정치사에서 사람들 앞에서 '눈물 흘리는' 정치인을 본 적이 있는가. 있다. 박정희는 총 맞아 죽은 아내의 운구를 보내며 흰장갑 낀 손으로 눈을 훔쳤다. 떠나는 이는 그의 아내였고 가족이었다. 정치적 동지도, 마음의 동반자도 아니었다.
또 한 사람. 노무현. 그도 자주 우는 정치인이었다. 대통령 후보 시절, 자신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며 피맺힌 사자후를 토하는 문성근의 연설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 청와대에 노사모 회원들을 불러 밥을 먹으며 회원들의 성원에 길게 울었다.
그 중에서도 떠나는 민주화 친구들의 장례식에서 징징 소리 내어 우는 대통령이 우리에게 있었다. 이제 그가 간다. 그의 장례식에 '소리 내어' 우는 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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