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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복판에 져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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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위기의 한복판에 져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DJ를 기억하며]斷想들, 고인을 보내며

김대중 선생께서 저 멀리로 돌아가셨습니다.

강 건너, 언덕 너머, 하늘 저편에서 진짜 별이 되어 반짝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신을 믿는 분이셨으니, 아마도 그 분의 하나님의 품 안에서 편히 쉬시고 계실겁니다.

새삼 되돌아 보건대 다시 오기 힘든, 참으로 큰 인물이었습니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유명한 분이라, 항상 거기 그렇게 있 는줄만 알고 있어 찬찬히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막상 자리를 뜨고 나니 그리 허허로울 수 없는 게 참으로 크긴 큰 인물이었습니다. 천수를 누리셨으니 호상이려니 하며 덤덤하다가도, 어느 순간순간 왈칵 밀려드는 감정의 파고가 만만치 않습니다.

문득문득 머리 끝을 스치우는 생각들이 없을리 만무하지요. 비록 지금은 喪中이라, 조용히 고인의 명복을 빌어드리는 게 도리겠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버려, 사방이 조용한 새벽에 그런 생각들을 적어두는 것도 괜찮다 싶어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1. 메멘토 모리

이것이 가장 먼저 든 생각이고, 가장 나중에 들 생각이겠지요. 거인이었지만 그도 인간이었습니다.

3개월 전에도 그러했지만, 다시 한 번 한 인간의 죽음을 진지하게 마주하며 죽음의 숙명을 이고사는 인간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는 시간의 숲 속에서 매일매일 아둥바둥 사느라 그 흐름 조차 망각하고 살고 있는 듯 합니다. 소소한 것들에 아둥바둥대며 아집을 보이다가도, 내게 주어진 시간이 영원할 것처럼 나와 내 사랑하는 이들에게 함부로 때로는 모질게 대합니다. 죽음을 잊으면 안되겠다, 나의 한계에 대해 분명히 인식하고 내 주어진 바 안에서 게으르면 안되겠다, 이런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항상 내 안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을 잊지 않고, 앞으로 갈 길 보다 내 뒷모습과 발자국을 살펴볼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가질 수 있기를 빌어보기도 했습니다. 부엉이 바위 섰던 노무현의 마음과 병상에서 삶의 마지막을 관조했을 김대중의 마음에 대해서 더 곰곰히 생각해 볼 것입니다. 저도 언젠가 분명히 죽을테니깐요.
▲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2. 잊고 있던 것들

이번 喪에서 가장 충격적인 이미지는 김 전 대통령의 첫째 아들인, 김홍일 전 의원의 모습이었습니다.

군사정권 시절의 고문후유증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지만 호남형의 풍채좋던 사람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던 나에게 몰라볼 정도로 수척해지고 불편해 보이는 현재의 모습은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조작된 것으로 밝혀진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당시 아버지가 '빨갱이'라고 인정할 것을 강요받을 적에 받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파킨슨씨병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와 고인의 영정이 앞에서, '아...버...지'라고 말을 더듬었다는 이야기는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습니다. 비록 긴긴 야인 시절을 겪었지만, 끝내는 정권까지 쟁취한 최고권력자의 아들이고 스스로 국회의원까지 한 사람이 이런 모습으로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나니 충격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고인이 생의 마지막까지 현 정권과 날 선 모습으로 맞선 것이 물론 자신의 민주주의와 조국통일에 대한 신념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자신의 트라우마(그것도 무의식 아래 은폐된 것이 아닌 눈 앞에 생생히 보여지는) 앞의 숙명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느 누가 자신의 아들을 저렇게 만들어 놓은 반민주독재와 그 징후가 현저한 모습으로 보여지는 사회현실에 대해서 무감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컨대, 김대중 선생은 자기 때문에 고생한 아들과 가족들에 대해 평생 죄인의 심정을 떨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 아들이 비리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가게 됐을 때, 한 인간으로, 한 아버지로, 대통령의 역할 사이의 굴레 속에서 그리 괴로워 했겠지요. 그것은 김대중 선생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비록 저는 억울하게 들씌워진 누명이라고 믿고 있지만)도 마친가지겠지요. 그것이 결벽에 가까운 도덕주의자에게 다가온 위기라면 더욱 더.

▲ 빈소를 찾은 김영삼 전 대통령은 맞은 김홍일 전 의원.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제가 이 사진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다름 아닌, 독재의 그늘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느 사이 그 때의 아픔들에 대해서 망각하고 무감해진 나를 발견하며 소스라치게 놀라곤 합니다. 전태일도, 5.18도, 박종철도, 이한열도, 김의기도 모두 잊고 편히 잘 지내는 저의 모습. 그 아픔들은 이렇게 현재의 시공간에 엄존하며 편재하고 있는데, 나는 어떻게 그렇게 자유로웠을까요. 잊고 있던 것들이 두둥 떠오르는 어떤 느낌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3. 부부애

이번 서거를 두고 여러 이야기가 흘러나왔지만, 그 중에 가장 가슴 찡했던 것이 고인의 관 속에 동봉한 이희호 여사의 마지막 편지였습니다. 입관한 고인의 가슴팍에는 이희호 여사가 펴낸 '동행'이라는 책과 그 앞에 적은 이 여사의 마지막 편지, 이 여사의 손수건과 고인이 마지막에 덮었던 작은 이불이 놓여졌다고 합니다.

이 여사는 고인보다 두 살 연상입니다. 그렇다면 여든일곱의 고령이신데, 써내려간 글씨가 믿을 수 없게 꼬장꼬장하여 필자의 성정을 짐작케 합니다. 반백년의 세월을 함께 보낸 동반자를 떠나 보낸, 이 여사의 심정을 어떻게 가늠이나 하겠냐만 한 문장, 한 문장 소리내어 읽다보면 그녀가 얼마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비록 한평생 고생이 심하셨겠지만,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이런 부부간의 정을 보면서 난 참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인간의 삶에서 평생을 동반할 반려자를 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한 일이고, 부부애가 서로에게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결혼을 한다면, 대문 앞에는 김대중 선생과 이희호 여사처럼 명패를 나란히 걸어놓고 배우자에게 언제든 들어와 기대 쉴 수 있는 넉넉한 품을 내어줄 것입니다. 물론 그녀가 저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자랑스러워 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제가 아프고 병들었을 때, 벙어리 장갑을 떠 제 손에 끼워준다면 더 바랄 것이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한평생 잘 살아냈노라고 가히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4. 독서

고인을 추모하며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 속에는 꼭 한 명이 언급됩니다. 평생의 경쟁자이자, 동지이며 온갖 애증이 점철된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 사람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골적인 언사로 비난을 하던 그가 고인이 병상에 눕자 감동의 화해를 연출한 것이 좀 의아스럽긴 했으나, 그 진정성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연유야 어찌 됐든, 고인을 앞에 든 노정객의 눈길엔 오래된 친구를 대하는 측은함이 엿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두 정치인 비교될 때, 꼭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YS를 탁월한 感의 정치인이라고 한다면, DJ는 智의 정치인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김대중 선생을 이야기 할 때, 그의 적이든, 동지이든 꼭 언급하는 것이 그의 광폭한 독서 편력입니다.

숱한 감옥생활과 금고생활, 외국생활으로 비롯된 것이 그의 엄청난 독서량이라고 합니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로는 그의 서재에 가면 삼만권에 가까운 책의 방대함에 한 번 놀라고, 그 책들을 모두 정독했음을 암시하는 자잘한 메모들이 책마다 가득함에 두 번 놀란다고 합니다. 어떤 기사에서 인용된 그의 주치의의 말로는 고인은 열 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한 번도 자리를 눕히지 않고 같은 자세로 독서에 몰두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참으로 경탄할만한 독서에의 열정과 지적욕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의 정치적 카리스마는 물론 그의 정치역정과 대항적 지역주의에 기반하고 있다고 봐야겠지만, 그의 남다른 독서편력에 기반한 지적인 우월성도 어느 정도는 빚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엉덩이가 가벼워 책 한 권 읽어내기도 힘든 요즘의 저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부분입니다.

지금까지 고인을 보내며 들었던 사적인 단상들을 적어보았습니다. 물론 이 외에도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고인의 빈소 앞에서 다시 만난, 이제는 아마도 다시 보기 힘들 동교동계의 낭만적 동지애 같은 것도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고인에게는 功도 있고, 過도 있을 것이고, 고인에 대한 好惡도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고인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평화발전에 기여한 바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고인이 마지막까지 힘주어 말한 바도 거기에 있고, 고인의 유고도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이는 완성형이 아니라,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이기에 더욱 중하게만 느껴집니다.

옛시대의 막내를 자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한시대를 상징하던 거인이 떨어졌습니다. 옛것이 가면 새것이 올 것입니다. 새것의 모습이 과연 아름다울 것이냐의 여부는 온전히 우리의 몫일 것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누군가는 호상이라고 말하지만, 꽃 피는 봄시절에 가셨더라면 좋았을 것을, 갈수록 엄혹해지는 위기의 한 가운데에서 져버린 것입니다. 허나 "피끓는 마음"으로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다만 악의 편이다"라고 말한 당신의 떨리는 입술은 숱한 청년들에게 아름다운 영감을 줄 것입니다.

다시 바라건대, 이제는 모두 놓으시고 좌도, 우도, 남도, 북도, 수구반동도, 빨갱이도, 전라도도, 경상도도, 이명박도, 김정일도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세요. 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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